최영애 전 국가인권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국가인권위 전·현직 위원 및 사무총장들의 인권위 앞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박경서 전 상임위원, 오른쪽은 서미화 전 비상임위원.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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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위원장 계신 기간 인권위의 전통과 가치가 추락했다는 오명을 남기지 않으시기 바란다.”(최영애 전 위원장)
“대통령과 국무총리 비호하려고 인권위를 만들지 않았다.”(정문자 전 상임위원)
“인권위의 입을 빌려 윤석열 변호인단을 대리하려고 하는가.”(문경란 전 상임위원)
“인권위가 난장판이라는 말 많이 들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안건을 상정해 너무 수치스럽다.”(문순회 전 비상임위원, 법명 퇴휴)
최영애 전 위원장 등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를 거쳐 간 위원과 사무총장 20여명이 10일 오후 안창호 위원장을 만나 쓴소리를 건넸다. 인권위 전원위원회에 비상계엄을 합리화하고 ‘내란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을 골자로 한 안건이 상정된 사실이 전날 알려진 뒤 인권위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15층 인권위원장실을 찾은 거였다.
앞서 9일 인권위 김용원·한석훈·김종민·이한별·강정혜 위원은 오는 13일 열리는 2005년 1차 전원위원회 공식 의결안건으로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을 발의·상정해, 안창호 위원장은 이에 대한 결재를 마쳤다. 이 안건은 탄핵 심판을 맡은 헌법재판소장과 내란 사태 수사를 하는 수사기관장들을 대상으로 내란죄 피의자들의 구속·체포 자제 등을 권고하고, 헌법재판소장에게는 윤석열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심리에서 방어권을 철저히 보장할 것 등을 권고하는 내용이다.
전직 인권위원 및 사무총장들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 청사 15층 인권위원장실을 찾아 안창호 위원장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안건을 다음주 전원위에 올리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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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인권위원들의 호소는 절절했다. 초대 인권대사와 대한적십자사 회장을 지닌 박경서 전 상임위원은 “이 안건을 상정하지 말라고 부탁하려고 86살 노인네가 왔다. 인권위의 25년 전통은 오로지 인권과 평화, 국민이 목표라는 것”이라고 했다. 비상임위원을 지낸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만간 국회 운영위원회 현안질의에 안 위원장을 부를 텐데, 거기 나와서 문제의 안건을 폐기했다고 당당하게 말하시라. 그 명분을 주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창호 위원장이 헌법재판관을 지내던 시절 헌법연구위원으로 재직한 이준일 전 비상임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안 위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건 인용 결정할 때 용감하게 참여한 일을 기억한다”며 “이번 사건은 박근혜 탄핵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한 법 위반이다. 이번 사건의 반헌법적 중대성에 주목하시길 감히 바란다”고 말했다.
10여명의 전직 상임 및 비상임위원, 사무총장들은 한목소리로 “문제의 안건이 상정될 경우 인권위가 존폐의 기로에 처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들의 발언을 40여분간 조용히 듣고 있던 안 위원장은 “이 사태를 엄중하게 보고 있다. 사안 결정할 때 말씀 참고해서 고민하겠다. 인권증진을 위해 최종판단을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인권위 청사 15층 인권위원장실에서 최영애 전 인권위원장이 안창호 위원장에게 “내란수괴 비호하는 어용 국가인권위원 사퇴하라”는 제목의 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가운데는 조영선 전 사무총장.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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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전직 인권위원과 사무총장들은 안창호 위원장을 만나기에 앞서 오후 2시 연 기자회견에서 “내란수괴 비호하는 어용 국가인권위원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문제의 안건은) 인권위의 책무를 망각한 번지수가 아주 틀린 망발이며, 내란 수괴와 그 공범자들을 비호하는 어용적 결정이며, 불법 계엄과 내란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른 윤석열의 심기 경호처가 되겠다고 자임하는 격”이라며 “어용 인권위원들이 윤석열 변호인단의 하청업자로 전락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했다. 이어 “인권위가 해야 할 일은 ‘계엄선포로 야기된 국가 위기 극복 대책에 대한 권고’가 아니라 ‘불법 계엄과 내란으로 침해된 국민의 인권보호에 대한 권고’여야 한다”고 했다.
사회를 본 조영선 전 사무총장은 이번 안건발의에 참여한 김용원·한석훈·김종민·이한별·강정혜 5명의 위원을 1905년 을사늑약 당시 나라를 팔아넘긴 ‘을사5적’에 비유하며 “내란 선동 인권위 을사오적 즉각 사퇴하라”, “인권위 독립성 침해 안건상정 즉각 철회하라” 등의 구호를 참석자들과 함께 외쳤다. 이 자리에는 전직 인권위원 등뿐 아니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권위지부 회원 20여명도 함께 했다.
전직 인권위원 및 사무총장들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 청사 앞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권위지부 회원들과 함께 “내란수괴 비호하는 어용 인권위원 사퇴하라“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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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전직 인권위원 및 사무총장들의 성명서 전문
“내란 수괴 비호하는 어용 인권위원 사퇴하라”
기본권 수호와 약자의 권리를 대변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인권위원들은 인권위를 떠나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전직 인권위원과 사무총장들은 오는 13일(월) 전원위원회에 상정된 긴급 안건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의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품고 이 자리에 섰다. 안건의 제출자는 김용원 상임위원, 한석훈 위원(국민연금 기금수탁자책임전문위원장), 김종민 위원(법명 원명·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주지), 이한별 위원(북한인권증진센터 대표), 강정혜 위원(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다.
이들이 제출한 긴급 안건은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심판 시 방어권 보장 및 헌법재판소의 심판절차 정지 검토 ▶국무총리 한덕수에 대한 탄핵소추 철회 ▶계엄 관련 형사사건 재판에 있어서 적극적 보석 허가의 공감대 형성 ▶계엄 관련 범죄 수사 시 불구속 수사 ▶국회의 탄핵소추 남용 금지 등을 담고 있다.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며 공권력의 남용으로부터 시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약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야 할 인권위원들이 위헌적 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시민을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한 대통령을 인권위원회의 이름을 동원해 비호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인권위의 책무를 망각한 번지수가 아주 틀린 망발이며, 내란 수괴와 그 공범자들을 비호하는 어용적 결정이며, 불법 계엄과 내란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른 윤석열의 심기 경호처가 되겠다고 자임하는 격이다. 한 달 이상 계속된 국민의 불안과 공포,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더구나 긴급안건이 나열하고 있는 계엄 상황에 대한 이해나 판단 근거를 보면 어용인권위원들이 윤석열 변호인단의 하청업자로 전락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인권위가 챙길 일은 윤석열의 방어권이 아니라 불법 계엄과 내란으로 침해된 국민의 인권이다. 불법 계엄을 선포하며 윤석열과 공범자들이 준비했던 포고령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신체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집회 시위의 자유 및 언론 출판의 자유 침해, 파업 태업 등 단체행동권 금지와 같은 국민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중대한 인권유린 행위가 줄줄이 열거돼 있다. 인권위는 이같은 윤석열과 공범자들의 인권유린 행위를 준엄하게 꾸짖고 다시는 이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게 본연의 일이다. 인권위가 해야 할 일은 ‘계엄선포로 야기된 국가 위기 극복 대책에 대한 권고’가 아니라 ‘불법 계엄과 내란으로 침해된 국민의 인권보호에 대한 권고’여야 한다.
이들은 인권위원으로서 대통령의 위헌적 계엄 선포와 포고령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고 공권력의 남용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임무는 저버렸다. 지금은 오히려 내란범을 비호하고 인권위의 독립성마저 의심케 하는 안건을 제출하였다. 이는 인권위의 정체성을 부정한 것으로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다. 이를 결재하고 상정한 안창호 위원장에게도 규탄의 목소리를 멈출 수 없다.
그 사이 우리 위원들은 인권위의 파행을 보면서도, 인권위가 자정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인권의 원칙에 따른 변화와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인권위원으로서 자격은 물론이거니와 민주시민으로서의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인권위원들의 퇴장을 명령한다. 안건을 제출한 인권위원들은 당장 인권위를 떠나라. 인권위의 이름을 동원하여 내란범을 비호하는 행위를 멈춰라.
안창호 위원장은 전원위 안건을 폐기하고 지금의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에 대해 사과하라. 인권위의 존재 이유인 기본권을 수호하고 인권보장의 최후의 보루로서의 본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라.
2025. 01. 10.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인권위원 및 사무총장
김기중, 김수정, 김칠준, 문경란, 박경서, 박진, 박찬운, 배복주, 법안스님, 서미화, 석원정, 송소연, 안경환, 유남영, 유시춘, 윤석희, 이경숙, 이준일, 임성택, 장명숙, 장주영, 장향숙, 정강자, 정문자, 정인섭, 조영선, 최경숙, 최영애. 퇴휴스님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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