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유효기간 만료일인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한남대로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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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승 |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다 안다.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문구를. 그러나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이 된 것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제6공화국이 출범하면서부터였다. 그 이전 제1공화국부터 제5공화국까지는 사실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독재공화국’이었다. 이승만의 민간독재,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부독재가 이어지면서 한국은 ‘민주공화국’과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다행히도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한민국은 점진적인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공화국으로 한걸음 한걸음 전진해왔다.
그런데 2024년 12월3일 밤 난데없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하여 민주공화국은 순식간에 위기에 처하였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국회의 신속한 계엄 해제 의결로 민주공화국의 역사가 단절되는 상황은 모면하였고,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로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국회에서 의결되어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또 계엄 준비와 실행 과정에 참여했던 군 장성들도 검찰에 체포되어 조사받고 있다. 일단 윤 대통령의 시대착오적인 친위 쿠데타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계엄 선포의 주역인 윤 대통령은 내란죄 혐의로 법원에서 발부한 체포영장을 거부하고 경호처 인력을 방패 삼아 대통령 관저에서 농성 중이다. 그의 체포영장 거부는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전면 부정한 것으로, 계엄 선포에 이어 또 한번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는 또 극우 유튜버와 시위대에 자신은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 자신을 응원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극우 시위대는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내란이 아니라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그를 옹호하고 나섰고, 국민의힘 의원 일부도 이에 동조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말끝마다 ‘자유민주주의’를 언급하면서, 이를 위협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는 ‘반공반북’을 자유민주주의라고 생각한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는 영어로 ‘리버럴 데모크라시’(liberal democracy)라 부르는 것으로, 서구식 민주주의 제도를 가리킨다. 서구식 민주주의는 주권재민, 삼권분립, 권력의 견제와 균형, 대의(의회)민주주의, 복수정당제, 다수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중시, 인권의 중시, 법치주의 등을 핵심 원리로 한다. 대한민국은 1987년 이후 이러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고, 그 결과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칭송받았다.
그런데 12월3일 계엄 선포 때 나온 포고령에는 국회와 정당의 정치활동 금지,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 집회·시위의 금지 등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군인들에게 국회에 들어가 국회의원들을 끌어내 계엄 해제 결의를 막고, 주요 정치인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또 국회를 해산하고 전두환의 국가보위입법회의와 같은 것을 구상한 듯한 흔적도 있다. 그의 계엄 선포는 ‘자유민주주의’와 결별하고 독재의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그는 ‘민주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독재공화국’을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계엄 선포와 포고령 발포는 한마디로 ‘민주공화국’에 대한 정면 도전 행위였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헌법기관인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키려 한 것이기 때문에 형법상의 ‘내란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당시 온 국민은 계엄군이 국회를 침탈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다 지켜보았다.
당시 일부 시민은 민주공화국이 위기에 처했음을 직감하고 바로 국회로 달려가 계엄군이 국회로 들어가려는 것을 온몸으로 막았다. 또 국회 건물 내에 진입했던 일부 계엄군도 국회 직원들이 복도에서 필사적으로 가로막자, 더 이상 무리한 행위를 하지 않고 자제하여 본회의장까지 들어가진 않았다. 그 결과 신속하게 국회에 집결한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한밤중에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 국회 직원들, 국회의원들이 위기에 처한 민주공화국을 간신히 구해낸 것이다. 1987년 이후 축적되어온 한국 시민의 민주주의 역량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국민의 열망은 일거에 폭발하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의 백만명이 넘는 군중의 집결로 나타났고, 결국 국회도 국민의 뜻을 받들어 12월14일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을 의결하였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반쯤은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의 대다수는 탄핵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이후에도 계엄은 내란이 아니라면서 윤 대통령을 비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늦추려 애를 쓰고 있다. 며칠 전에는 국민의힘 의원 40여명이 대통령 관저 앞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들은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보다 어떻게든 정권을 지키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은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고, 세계 10대 경제강국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가요, 드라마, 영화 등에서 한류 붐을 일으켜 한국은 세계 속의 문화선진국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최근에는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음으로써 한국의 높은 문화수준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사회적으로도 한국은 비교적 중산층이 두텁고, 교육 수준도 높고, 치안도 안정된 사회를 유지해왔다.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한국이 이같이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측면에서 비교적 안정되고 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의 민주화가 이를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원리는 어느덧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문에 스며들어, 한국은 자유롭고 민주화된 선진국가의 반열에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는 계엄령이라니! 시대착오도 이런 시대착오가 없다. 민주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독재공화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우리 국민이 수십년 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단숨에 무너뜨리겠다는 것과 같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계엄을, 내란을, 윤석열을 옹호하여 수십년 전의 한국으로 되돌아가고 싶은가. 당신은 어느 나라에 살고 싶은가. 민주공화국인가, 아니면 독재공화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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