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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전기차 배터리 수난시대 [크리스토프 앙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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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전기차는 지구 온난화 저지에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전기차는 동급 내연기관(ICE) 자동차보다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더 많다. 그러나 주행 시 발생하는 배출량이 훨씬 적어, 수명 주기에 걸친 탄소 발자국은 훨씬 작은 편이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하면서 절감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자동차의 크기, 사용도, 수명, 전기차에 필요한 전력 생산 방식에 좌우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일반적인 중형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15년간 매일 42km씩 운행할 경우, 수명 주기 동안 온실가스배출량이 같은 등급의 휘발유 자동차 대비 전세계적으로 평균 32% 더 적다. 300km를 주행 가능한 배터리 전기차의 경우, 54%가 더 적다. 게다가, 전기차는 전력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 감축, 스마트 충전, 배터리 소재 재활용 등 환경 발자국을 더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각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지금까지 전기차 보급을 장려해 왔다. 보조금, 세액 공제는 물론이고 전용 차로 운영, 주차 요금과 도로 사용료 할인 등 각종 혜택을 제공했다. 내연차 생산을 단계적으로 중단하는 목표를 세운 나라도 있다. 세계 배터리 전기차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판매는 2019년 220만 대였다. 그러던 것이 2023년에는 1370만 대, 2024년에는 약 1700만대(추정)로 급증했다. 한국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차와 기아는 선두에 속한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중국의 BYD, 미국의 테슬라에 훨씬 밀리지만 말이다. 이런 전기차 시장이 지금 수난 시대를 맞고 있다. 2024년 첫 3분기, 미국에서는 전기차 판매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하락했다. 같은 기간 한국과 유럽에서는 판매가 감소했다. 유럽의 경우, 인플레이션과고금리의 여파로 소비자의 구매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일부 국가가 세제 혜택을 축소 혹은 폐지하면서다. 중국은 해외 시장에서 의외로 선전하고 있다.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은 경쟁력 있는 전기차를 만들지 못해 고전하는 한편, 전통적인 내연기관차 시장에서도 실적 저조로 수익이 급감하고 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전기차에 대한 정부 지원을 대폭 축소하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배터리 산업을 보자.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데다, 기술적 난관도 산적해 있다. 지정학적 경쟁 구도 또한 무역 및 투자 정책에 영향을 주고 있다. 배터리는 전기차의 경쟁력과 구매 여력을 좌우하는 핵심이다. 대개 전기차 생산 비용의 30~40%를 배터리가 차지한다. 배터리 제조는 매우 정교하며, 복잡한 공급망에 의존한다. 대부분의 배터리 생산지는 수요와 인접한다. CATL, BYD 같은 중국 기업이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생산 능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거대한 내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덕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기업은 전 세계 생산 능력의 약 20%를 차지하며, 유럽과 미국에서 탄탄한 입지를 갖고 있다.

정부의 든든한 지원 아래, 중국 배터리 업계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전기차와 전기차 공급망에 막대한 투자를 해 왔다. 이 전략을 채택한 배경에는 대기 오염 문제를 해결하고 석유의 수입 의존도 등을 낮추려는 목표가 깔려 있다. 중국 지도부도 중국 기업이 비록 해외 유수의 내연차 제조사를 따라잡기는 어려워도, 미래가 유망한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앞설 수 있는 자산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전기차는 현재 중국 신차 판매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유럽의 15% 미만, 한국과 미국의 10% 미만과 대조된다. BYD는 세계 전기차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다. 아직 대부분의 매출이 중국에서 나오고 있지만, 앞으로 아시아, 유럽, 남아메리카로 뻗어 나갈 의욕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 이 외에도 여러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가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핵심 광물의 채굴과 정제, 양극재와 음극재 및 배터리 셀 생산에 이르기까지 배터리의 가치사슬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 제조업체들은 규모의 경제와 공급망에 대한 지배력을 갖고 있다. 더불어 주요 경쟁 업체가 생산하는 리튬 니켈 망간 코발트 산화물(NMC) 배터리보다 생산 비용이 20% 이상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덕분에 중국 업체들은 시장에 저렴한 전기차를 내놓을 수 있다. 첨단기술 혁신 역시 중국 안팎의 구매자들에게 매력적인 부분이다.

유럽 전기차 시장은 침체기다. 유럽은 전통적 자동차 산업에서는 리더지만, 전기차에서는 성능, 소프트웨어, 사용자 경험 어느 모로나 뒤처져 있다. 유럽 자동차 제조업계는 지금껏 대중 시장을 겨냥한 저렴한 차종보다는 선도 소비자를 위한 고가 모델 개발에 주력해 온 편이다. 이들은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는 상당한 점유율을 갖고 있다. 그러나 판매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갈수록 중국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유럽 배터리 산업을 육성하려는 시도 역시 큰 난관에 부딪혔다. 스웨덴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의 파산이 그 예다. 유럽 자동차 업계는 여전히 아시아산 배터리 의존도가 높다. 2023년 기준, 한국 기업들이 유럽 배터리 생산 능력의 약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의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지만, 중국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 전기차 시장은 오리무중이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 공약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IRA에 따르면 핵심 부품을 미국 혹은 동맹국에서 조달한다는 규정을 충족할 경우, 미국에서 조립된 전기차에 대해서는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미국 내 배터리 생산에 대해서는 보조금이 지급된다. 대다수 분석가는 소비자에 대한 세액공제는 폐지될 가능성이 크며, 그럴 경우 전기차 판매가 4분의 1가량이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도록 유도했던 IRA의 생산 보조금은 이보다 더 불투명하다. 투자는 미국에서 고용을 창출하며, 주로 공화당이 지배하는 주에 몰려 있는 데다, 핵심 제품의 해외 생산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국가 안보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은 2023년, 미국 배터리 생산 능력의 29%를 차지했다. 예상보다 저조한전기차 수요에 축소되긴 했어도 과감한 확장 계획을 갖고 있다. IRA 보조금이 축소되거나 폐지되면 한국의 대미 배터리 투자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세계 전기차 시장은 당초 예상보다는 느리더라도 계속 성장해 나갈 것이다. 녹색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고,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경제적으로 실행 가능한 전기차의 대체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전기차 보급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는 경제성이 될 것이다. IEA에 따르면 리튬이온 배터리 비용은 2010년과 2023년 사이 90% 하락했으며, 2030년까지 40% 더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면 전기차 비용은 전세계적으로 내연기관차에 근접할 것이다. 이미 중국에서는 현실화하고 있다. 기술이 더 발전하면 전기차의 주행거리, 신뢰성, 안전성도 개선될 것이다. 전기차 보급률이 더 높아지면 충전 인프라 개발이 촉진되어 보급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정책 인센티브는 전기차 채택을 가속할 수 있다. 인센티브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전기차 간에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편차가 큰 만큼 배출량이 더 적은 차를 겨냥한다면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어떻게 경쟁력과 혁신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중국과의 경쟁에 대응할 것인가. 각국 정책 입안자들에게이것은 골치 아픈 문제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중국산 전기차에 각각 100%, 최대 45%의 관세를 도입했다. 막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무장한 경쟁자들에게서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 정책으로 국내 자동차 산업은 숨통이 트일 수 있다. 그러나 전기차 보급 속도는 둔화할 것이다. 또 중국 자동차 제조사들은 투자 장벽이 없다면,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나 관세가 더 낮은 국가로 생산시설을 옮길 수도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무역 및 투자 장벽은 자국 산업의 경쟁력, 특히 신흥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 첨단 IT 기능, 자율주행 시스템, 차세대 배터리 같은 혁신이 앞으로 세계 전기차 시장의 성패를 판가름할 것이다. 그러니 R&D 투자는 필수다. 특히 지금처럼 불확실한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는 자동차 제조사들도 시장과 자원 공급처를 다각화해야 한다. 특히 전기차 공급망에 속한 일부 부품의 지나친 중국 의존도를 해결해야 한다.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과 협력을 강화한다면 미국과 유럽의 전기차 업계도 경쟁력과 회복 탄력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 경제 안보, 환경 모두 그 수혜자가 될 것이다.

※본 칼럼은 필자 본인의 의견이며, OECD 혹은 그 회원국의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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