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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수)

[유종일 칼럼]‘키세스’ 시위가 인류의 희망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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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한국의 민주주의가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시도로 인해 하루아침에 위기에 빠졌다.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우리가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내면 한국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시대에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품어본다. 눈 내리는 밤을 지새운 ‘키세스’ 시위가 인류의 희망이 될 것인가?

윤석열의 계엄 선포는 그 발상부터 실행까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무속에 빠지고 극우 유튜브 방송에 빠지더니 결국 자폭을 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아직도 버티고 있다. 내란세력 일당은 어차피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으로 그럴 수 있겠다. 문제는 노골적 동조 혹은 은근한 비호 세력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 결집의 흐름 속에 윤석열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단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작년 12월14일 국회 앞에서 두번째 표결 결과를 들었다. 탄핵안 통과의 기쁨 한편에서 찬성표가 204표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상식과 법이 억지와 정치적 계산에 밀리고 있구나 싶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 불행한 사태는 크게 보면 세계사적 민주주의 위기와 맥락이 맞닿아 있다.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 시도는 황당한 해프닝으로 치부해도 되겠지만, 그 이후 벌어지고 있는 버티기와 진영 대결은 사회과학적 분석을 요구한다.

아마르티아 센은 한 인터뷰에서 20세기 인류에게 일어난 수많은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확산이라 했다. 냉전이 끝나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다. 이념과 체제를 겨루는 경쟁은 끝났고, 모든 나라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나아갈 것이란 주장이었다. 세기말 지구촌엔 장밋빛 전망이 넘쳐났다. 하지만 21세기 초입에 전대미문의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다. 세계화의 이익을 독점하며 천문학적 부를 쌓아가던 경제엘리트, 그중에서도 정점에 있던 금융엘리트가 초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이들이 자유시장과 세계화를 찬양하며 그 부작용엔 눈감는 동안 세계화의 그늘로 내몰린 많은 이들은 앵거스 디턴이 말한 ‘절망의 죽음’을 택했다. 극단적 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던 자유시장 논리는 월가 붕괴와 구제를 통해 그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를 목도한 대중은 분노했다.

포퓰리즘과 보호무역주의가 거세지고 반이민 정서가 퍼져나갔다. 기성정당과 기성언론을 포함해 제도권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타협의 정치와 관용의 문화는 사라지고 극단적 대결이 만연하게 되었다. 더 이상 사실도 진실도 상관없이 자기편 주장에만 귀 기울이는 ‘에코 체임버’가 여론을 갈라놓았다. 부정선거론을 비롯해 각종 근거 없는 음모론이 난무하게 되었다. 미국이 위기의 진원지였지만 이러한 현상은 세계로 확산되었다.

기성정치에 대한 혐오와 함께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대한 믿음도 흔들렸다. 2023년 퓨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조사 대상 24개국 중 18개국에서 민주주의 작동에 만족한다는 답보다 불만족한다는 답이 많았다. 불만족 비율은 남아공이 76%로 가장 높았고, 프랑스 73%, 미국 66%, 한국도 61%로 높은 편이었다. 이러한 불만족의 바탕에는 민주적 제도가 결국은 엘리트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깔려 있었다.

우리나라 정치가 극단적 대결 정치가 되어버린 배경에도 민주주의 외피를 쓴 엘리트 지배와 그에 따른 양극화 심화 및 정치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생산적 정치와 타협이 사라진 자리에 권력투쟁만 남았다. 승자독식 선거제도와 제왕적 대통령제가 이를 부추긴 것도 사실이나, 더 크게 보면 위와 같은 세계적 민주주의 위기 현상의 한 표출이기도 하다.

작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저서 <좁은 회랑>에서 민주주의는 제도를 잘 설계해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사회적 투쟁에 의해서만 지킬 수 있다고 했다. 노벨상 수상 발표 이후 인터뷰에서도 아제모을루는 민주주의가 지금 힘든 시기를 맞이했다면서 “더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약속을 전달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구와는 달리 민주화 투쟁의 생생한 경험이 살아 있는 우리나라가, 고강도 경쟁의 압박을 뚫고 자라 오히려 연대에 능숙한 우리의 젊은이들이 지금 위기에 빠진 지구촌의 민주주의를 살려내는 사회적 투쟁의 첨병이 되었다. 승리하여 더 잘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는 것이 인류의 희망이다.

경향신문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명예교수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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