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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수)

[김월회의 아로새김]땅강아지의 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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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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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의 하나인 묵자는 한 사람이 있으면 한 가지 정의가 있고, 열 사람이 있으면 열 가지 정의가 있다고 통찰했다. 부모자식 간이라도 정의관이 다르면 다툰다고도 했다. 나에게는 정의인데 내가 속한 공동체 차원에서는 정의가 아니고, 공동체 차원에서는 정의인데 나에게는 정의롭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는 사람이 사회를 이루고 사는 한 불가피한 일 중 하나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나와 사회 간의 이해 충돌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나에게는 이익인데 사회 차원에서는 불이익이고, 사회 차원에서는 이익인데 나에게는 불이익인 일이 곧잘 벌어진다. 그렇다고 사회를 떠나서 저 홀로 살 수도 없다. 개개인의 삶도 중요하지만 사회의 유지도 그만큼 중요한 이유다. 이때 늘 경계해야 할 바는 사회적 강자의 발호이다. 사회는 어느 힘센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것이다. 사회적 강자라고 하여 자신이 지닌 힘을 바탕으로 자기에게만 이익인 것을 마치 사회 전체의 이익인 양 호도하면,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목도되듯이 그런 사회는 반드시 결딴나고 만다.

불세출의 역사서 <사기>를 쓴 사마천은 정의를 소의와 대의로 나누고, 소의를 따르는 이를 두고 땅강아지 같은 벌레라고 단언했다. 오자서라는 인물의 삶을 평가하는 대목에서 한 말이다.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이었던 오자서는 못난 군주에 의해 무고하게 처형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멋들어지게 해냈던 인물이다. 그는 복수 과정에서 못된 군주의 부당한 명을 따르지 않고 오나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중신이 되어 오나라를 눈부시게 발전시켰던 그는 오나라 국력을 이용해 초나라를 정벌함으로써 부친의 복수를 완수했다. 덕분에 그는 살아생전뿐 아니라 역사 무대에서도 위대한 인물로 칭송되었다.

사마천은 오자서를 평가하면서 그가 만약 정당치 못한 군주의 명을 따랐다면 그의 삶은 땅강아지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삶을 거부했기에 큰 공을 세우는 대의의 삶을 빚어낼 수 있었다고 상찬했다. 자기 이해관계에 매몰된 못난 군주의 명을 따르는 것은 그저 소의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대의를 위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사람의 삶을 살자는 얘기다. 버러지 같은 삶이 아니라.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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