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7일 열린 제93차 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에서 박선영 위원장(맨 앞)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의례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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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전체위원회에서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에 관한 질문에 끝까지 답변을 거부했다. 박 위원장은 신년사에 이어 새해 첫 전체위에서도 법 개정을 통한 조사 기간 연장 의지를 밝혔으나, 12·3 내란 사태 이후 임명돼 자격 논란을 겪는 데다 그에 대한 입장도 명확히 내놓지 않아 국회 협조가 필요한 조사 기간 연장을 외려 어렵게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진실화해위는 7일 오전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 6층 대회의실에서 제94차 전체위원회를 열고 보고·의결 안건을 심의했다. 이날 회의가 시작하자마자 야당 추천 허상수 위원은 의사진행 발언을 자청해 “우리 위원회는 지금도 비상계엄과 내란에 관련된 사안을 다루는 유일한 정부 기구인데, 여야 7개 정당 의원들이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까지 했다면 ‘유감스럽다’, ‘불행한 일이다’ 정도의 언급을 하고 가야 하지 않나. 명쾌한 해명을 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선영 위원장은 “자연인 박선영은 여러 가지 판단도 할 수 있지만, 이 자리는 독립된 조사 기관 진실화해위다. 개인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답변했다. ‘내란죄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내란 사태 사흘 뒤인 지난해 12월6일 임명돼 논란이 된 박선영 위원장은 비상계엄에 관한 기자들의 기본적인 질문에조차 답을 피해왔다. 외려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임명을 반대하는 이들을 “내란 행위”라는 표현으로 비난해 논란이 됐다.
박 위원장 답변에 앞서 여당 추천 차기환 위원은 “민주당을 대변하는 국회 소추위원장이 내란 부분은 탄핵 소추 사유에서 빼겠다고까지 지금 이야기되고 있고, 평소에 지지부진하던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계엄선포 이후에 이례적으로 2배 이상 급반등을 해 국민들 사이에서 의견이 상당히 배치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위원회가 이를 공적으로 판단하는 기관도 아닌데 법적 평가를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회 측 대리인단이 “형법상 내란죄 판단은 심판 범위에서 뺀다”고 한 것을 마치 ‘내란죄 판단’을 철회한 것처럼 해석하는 한편, 편향된 문항으로 구성돼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군소 여론조사업체 조사를 들어 윤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했다고 과장한 것이다.
이날 전체위에선 조사 기간 연장과 관련 법률안 검토 보고와 논의도 있었다. 박선영 위원장은 지난 2일 신년사를 통해 법 개정을 통한 조사기간 연장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박선영 위원장의 원활한 국회 소통이 먼저라는 지적이 나왔다. 박선영 위원장이 임명된 뒤 조사연장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대세였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의원들이 회의적으로 돌아섰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상희 위원은 전임 김광동 위원장이 신정훈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국회 행안위 강제퇴장 관련해) 공수처에 형사고발 한 사실을 언급하며 “진실화해위 주무위원회가 행안위인데 행안위와 협력관계를 유지해야지만 기간연장이 가능하다. 이런 형사고발 건이 위원장 활동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적절히 조치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김광동 전임 위원장의 (신정훈 위원장을 상대로 한) 공수처 고소는 언론을 통해 봤다”면서 김광동 위원장님의 고소 건은 제가 어떻게 왈가왈부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고 저를 많이 신뢰하시는 민주당 쪽의 다선 의원들이 여러 가지 노력을 해 주시는 것으로 알고 있고 제가 여러분을 찾아뵈었다”면서 “마음 열고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페이스북에 김 전 위원장의 고소 관련 언론보도를 올리며 “인과응보”라는 표현을 써, 신정훈 위원장을 겨냥한 바 있다. 앞서 지난달 23일 박선영 위원장은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 출석했다가 “내란범에 의해 임명돼 자격이 없다”며 신정훈 위원장에 의해 강제퇴장 당했다.
22대 국회엔 더불어민주당 양부남·이개호·이훈기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진실화해위 기본법 일부개정안 10건과 기타법안 2건이 계류돼 있다. 한성원 기획운영관은 이날 보고에서 “7건의 개정안에 조사기간 연장 내용이 있고, 이들은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안과 더불어 추가로 조금 더 연장하자는 의견들”이라면서 “일부 법안은 신청기간 연장도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2기 진실화해위는 올해 5월26일 조사를 마치고 6개월 뒤인 11월에 모든 활동이 종료된다.
이와 관련 이상훈 상임위원은 “기간 연장은 어떤 형식이든지 필요하지만, 과연 현재의 위원회 구조에서 적절한지는 자신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위원장의 ‘자격’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박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오는 4~5월에 상임위원과 비상임 여섯 분의 임기가 만료되는 만큼 이분들의 임기가 연장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다 쏟아붓겠다”고 했으나 이상훈·이상희·오동석 등 4월에 임기를 마치는 야당 추천 위원들이 임기 연장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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