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구속기소, 무기징역 확정…24년 만에 석방
위법한 증거 수집, 수긍할 범행동기 없다고 판단
광주지법 해남지원 "범죄사실 증명이 없어 무죄"
[해남=뉴시스] 박상수 기자 =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재심이 결정된 무기수 김신혜씨가 28일 오전 열린 공판준비기일을 마친뒤 광주지법 해남지원을 나오고 있다. parkss@newsis.com 2023.0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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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뉴시스]변재훈 기자 =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25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 김신혜(48·여)씨가 재심 재판서 무죄를 선고받아 '억울한 옥고'에서 풀려난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박현수 지원장)는 6일 존속살해·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형이 확정된 김씨에 대한 재심 선고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현재 장흥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씨는 개인 신상 이유로 법정에는 출석하지 않았다. 무죄 선고가 내려지면서 김씨는 곧바로 이날 안에 석방된다.
재판부는 "김씨에 대한 공소사실은 범죄 사실의 증명이 없어 무죄"라고 밝혔다.
김씨는 2000년 3월7일 오전 1시께 전남 완도군 완도읍에서 수면제(독실아민 30알)를 탄 술을 마시게 해 아버지를 살해한 뒤 렌터카에 태워 돌아다니다 버스정류장에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2001년 3월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당초 사건은 뺑소니 의심 사고로 시작됐다. 2000년 3월7일 새벽 전남 완도의 한 외딴 버스정류장 앞 도로에서 김씨의 아버지인 5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는 차량의 부서진 전조등 조각이 발견되는 등 당초 뺑소니 사고로 추정됐다.
그러나 검시 과정에서 교통사고에서 나타나는 외상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에서는 시신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303%와 함께 수면유도제 성분인 '독실아민' 13.02㎍/㎖가 검출됐다.
경찰은 누군가 남성에게 수면유도제 30알을 탄 양주를 마시게 해 살해한 뒤 교통사고인 것처럼 위장, 사체까지 유기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틀 뒤 경찰은 피의자로 숨진 남성의 큰딸 김신혜(당시 23세)씨를 검거했다.
당시 경찰은 김씨의 고모부의 진술을 토대로, 김씨가 이복 여동생과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성추행에 앙심을 품었고 보험금을 노린 범죄로 결론지었다.
보험설계사로 일했던 김씨가 같은 해 1월 아버지 명의로 상해·생명보험 7개(9억대)에 가입한 사실도 확인, 김씨의 범행 동기가 충분하다고 경찰은 봤다.
체포 직후 김씨는 수사기관에 범행 사실을 자백했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자 김씨는 자백 진술을 번복했다. 고모부의 진술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며 "이복 남동생을 대신해 감옥에 가겠다고 했을 뿐이다. 죽이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아버지 명의로 가입한 보험 중 상당수는 이미 해약됐고 나머지 보험들도 가입 2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없다며 짜맞추기식 수사라고도 주장했다.
진술 번복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발생한 해인 2000년 8월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김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심에 이어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무죄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김씨에게 무기징역형을 확정했다.
그러나 뒤늦게 경찰의 위법 수사 의혹이 불거졌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영장 발부 없이 김씨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폭행과 가혹행위로 자백을 종용한 정황이 제기됐다.
2인1조 압수수색 규정을 어겨놓고 압수 조서에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허위로 꾸몄고, 김씨가 현장검증을 거부했는데도 영장 없이 장소를 옮겨가며 범행을 재연토록 했다는 것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김씨의 머리를 치고 뺨을 때리면서 서류에 지장을 찍을 것을 강요하고, 날인을 거부하자 억지로 지장을 찍었다고 김씨 측은 주장했다.
이 같은 경찰 수사의 위법성과 강압성이 인정되면서 법원은 2015년 11월 재심 개시 결정을 했다. 다만 재심 결정을 하면서도 김씨 측이 주장한 무죄 주장만큼은 인정하지 않았다. 김씨 측이 요구한 형 집행정지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법률 대리인 교체, 재판부 기피 신청 등으로 7년여 공전하다가 최근에야 재심 심리가 본격 재개됐다. 지난해 10월 열린 결심 공판에서까지도 검찰과 김씨 측은 팽팽하게 맞섰다.
검찰은 재심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고 허위 진술을 일삼고 있다"면서 당초 확정 판결과 같은 무기징역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반면 김씨 측 법률대리인 박준영 변호사는 "양주에 수면제를 탔다는 수사기관 주장과 달리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직접 증거는 없고 나중에 스스로 번복한 자백과 관련자 진술뿐이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증언과 진술은 새롭게 밝혀진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며 거듭 무죄를 주장했다.
재심 재판부는 이날 선고 재판에서 "당시 수사경찰이 영장 없이 김씨의 집에서 노트 등 증거를 압수, 위법 수집 증거에 해당한다. 이를 기초로 한 2차 증거 역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김씨가 수사기관에서 진술하게 된 경위나 상황에 비춰볼 때 다른 동기에서 허위로 자백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김씨 자백에 대한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친척들의 진술 역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특히 공소사실은 피해자인 아버지가 숨지기 2시간 전 독실아민 30알 분량을 복용했다고 하지만, 부검 당시 피해자 위장 내에서는 어떤 형태든 많은 양을 복용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망 당시 피해자가 혈중알코올농도 0.303%의 고도명정(의식 희미·혼수 직전) 상태였던 점은 독립적인 사망원인이 될 수도 있다. 검찰이 주장하는 '사후재분배'(사망 후 약물이 혈액 속으로 재분포돼 약물 혈중 농도가 변화는 현상)도 신속한 부검이 이뤄진 점으로 봤을 때 의문"이라고 했다.
[해남=뉴시스] 변재훈 기자 = 존속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이 선고돼 25년째 복역 중인 김신혜씨에 대한 무죄가 선고된 6일 오후 광주지법 해남지원 1호 법정 앞에서 김씨의 법률 대리인 박준영 변호사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5.01.06. wisdom21@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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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재판부는 수긍할 만한 범행 동기가 없어 보인다고 봤다.
피해자의 김씨 등에 대한 성적 학대를 인정하기 부족하며, 보험금을 노린 범죄라는 동기 역시 보험설계사 자격이 있었던 김씨가 계약 2년 내 보험금을 받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봤다.
나아가 김씨가 범행 직후부터 피해자인 아버지가 발견된 3시간20분 사이 김씨가 친구를 만나려했던 행적 역시 무죄 판단의 근거로 봤다.
당시 친구들이 나오지 않았지만 만약 실제 만났다면 범행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김씨의 행적은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행동으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다는 논리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 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다. 비록 김씨가 동생들을 이용해 허위 진술을 교사하고, 진술에 일관성이 없는 등 의심스러운 점이 많지만 이러한 사정 만으로 유죄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김씨의 남동생은 선고 직후 "진실을 찾아준 재판부에 감사하다. 이 판결로 누나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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