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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화)

[조용헌 살롱] [1477] 동물이 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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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가면 김유신 장군의 묘지 둘레석이 특이하다. 묘지 둘레석에 12지신(支神)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열두 마리의 동물이다. 쥐·소·범·토끼·용·뱀 등이다. 여기에서 질문을 해야 한다. 왜 이 동물들을 묘지 둘레석에 새겨놓았는가? 한마디로 수호신의 역할이다. 김유신 장군의 사후세계와 영혼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고대인들은 믿었다. 뱀띠 해에는 뱀이 자기를 지켜주는 수호신이라고 여겼다.

동물을 숭배했던 전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1만2000년 전의 유적으로 평가받는 튀르키예의 괴베클리 테페 돌비석이 있다. 높이가 5~6m 정도 되는 T자형의 석조물이 200여 개 발견됐다. 나는 아직 여기를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이 돌비석들은 적어도 1만 년 전 사람들이 믿었던 종교 신앙과 관련 있다고 본다. 그 돌비석에는 동물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사자, 황소, 파충류, 독수리 등이 새겨져 있다.

왜 동물들을 새겨 놓았을까? 동물에 대한 숭배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12지신은 괴베클리보다 적어도 수천 년 이후에 목성의 12년 공전 주기를 알아내면서 생겼지 않았나 싶다. 여러 동물 중에서 12년에 맞춰 12마리만 간추린 것이다.

석기시대 사람들이 동물을 신으로 여겼다는 근거를 괴베클리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의 쇼베동굴(Grotte de Chauvet)에 그려진 동물 그림을 꼽고 싶다. 사자, 코뿔소, 곰, 표범 등 12종류다. 그림의 연대는 2만7000년에서 3만2000년 전으로 추정한다. 부처님과 예수님도 없었던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이 동물 그림을 왜 그렸을까? 신으로 섬겼다고 보는 게 필자의 결론이다.

쇼베 동굴의 위치도 대단하였다. 꼭대기까지 200m 높이쯤의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 있었고, 그 절벽의 중간 아래쯤, 즉 지상으로부터 60여m 높이에 쇼베동굴이 있었다. 3만 년 전에는 이 동굴 앞으로 강물이 차 있어서 뗏목이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 그림에만 집중하지만 나는 그 동굴이 자리 잡은 터가 더 의미 깊다고 보았다. 어떤 터이길래 3만 년 전 사람들이 여기를 그렇게 소중히 여겼단 말인가! 그 입지조건은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 자리였다. 동굴 주변을 청룡, 백호, 주작, 현무처럼 바위산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그 가운데를 S자로 강물이 돌아가면서 흘러가는 명당이었다. 기(氣)가 응집된 지점이었다.

쇼베는 3만 년 전 원시인들의 신전이었다. 동물 그림은 그 신들을 표현한 신전벽화였다. 열두 띠로 상징되는 동물신(動物神)의 개념은 인류 역사에서 적어도 3만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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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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