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진영 |
입술을 댈 듯 말 듯 서운히 보낸 어깨
돌아서고 나서야 없는 너를 만질 때
귓전에 연해 밟히는 중저음의 느린 여음
끝동을 길게 두다 서운해진 노을처럼
말 없는 말 그리며 사족사족 매만지네
자판에 자그락대는 자모음을 깨물어보듯
-정수자(1957-)
누군가와 헤어진 연후에 쓴 시 같다. 이별한 이가 사모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만, 다정다감한 사람인 듯은 하다. 정이 많은 이였지만 정작 듣고 싶었던 말을 듣지 못하고 떠난 사람이 아닐까 한다.
그 사람을 보내고 나서 시인에게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만만찮다. 마음에 모자라게, 아쉬워하게, 섭섭한 느낌이 있게 떠나보낸 게 아닌가 염려하고, 귓전에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메아리처럼 맴돈다.
저고리의 소맷부리에 덧댄 천처럼 노을이 지는데, 의중을 밝히는 일에 미적댄 일이 꼭 노을의 끝자락 같고, 종국엔 아름답지 않았던 것 같고, 그 사람을 서운하게 하지 않았나 후회스럽다. 그래서 이제야 시인의 마음을 몇 자 적어보는 것인데, 쓸데없는 군짓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애가 타서 입술을 깨물고 있는, 작별 이후에 처해 있는 한 사람의 참 인간적인 모습과 됨됨이를 여린 감성의 시행에 담아냈다고 하겠다. 만남이든 작별이든 남김없이 훌쩍 단숨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갖고 오고, 또 마음을 두고 간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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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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