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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화)

“연애하러 ‘러닝 크루’ 모임 하냐”는 이들은, 대부분 달리지 않아요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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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날씨가 쌀쌀해져도 달리기에 여념 없는 러닝 크루 회원들. 한강 주변은 러닝 크루들의 달리기 명소다. 이우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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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콘텐츠 제작사 미남컴퍼니 이우성 대표는 스스로를 ‘미남’이라고 칭합니다. 그가 자신하는 ‘미남’이란 관점엔 외모가 아닌, 내면을 단단하게 하는 다양한 시도를 서슴지 않는 자기 자신이 있습니다. 달리기도 그중 하나입니다. 2010년대 중반 한국에서도 발매를 시작한 세계적인 마라톤 잡지 ‘러너스월드’ 편집장도 지낸 그가 20여년간 이어온 달리기 이야기를 한달에 한번 전해드립니다.





저는 달리기를 신성시합니다. 무겁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제게는 달리기가 그만큼 특별합니다. 3년 전, 저는 큰 사건을 겪었고, 혼자 남겨졌습니다. 모두가 저를 떠났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한가지를 확신하게 되었는데, 달리기는 저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달리기는 제가 저를 위로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달리기에 대한 예찬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게 해주는 방식이 있을 테니까요. 저에겐 그것이 달리기였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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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고 있는 콘텐츠 제작사 미남컴퍼니 이우성 대표. 이우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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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한번 해볼래?” 저는 이런 권유를 많이 합니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달리기가 아니어도 괜찮으니, 너의 최고로 멋진 모습을 발견하게 해줄 무엇인가를 찾아봐, 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달리기, 혹은 달리기와 비슷한 어떤 것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내면의 자신과 대화하는 방식에 대해서요.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은 첫 시간이니 최근의 달리기 이슈를 살펴보겠습니다. 달리기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오해도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달리기를 신성시하는 러너로서 제 의견을 나눠봐도 괜찮겠죠?



동네 동생 하영이는 여름에 달리기를 시작했고, 가을에는 10㎞ 마라톤 대회에 두번 나갔습니다. 첫 대회는 1시간3분, 두번째 대회는 58분에 완주했습니다. 제가 물었어요. “빠르네! 러닝 크루 모임에 나가고 있어?” 하영이가 대답했습니다. “아뇨. 요즘 러닝 크루 나간다고 하면 연애가 목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진짜로 달리기가 좋아요.” 이십대 중반인 하영이는 주에 2~3회 혼자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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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을 마무리하고 찍은 사진. 이우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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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려고 러닝 크루 모임에 가는 거 아니야?” 저도 최근에 이런 말을 몇번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대답하죠. “앞만 보고 달리는데, 연애를 어떻게 해?” 아니라고 해도 이렇게 되묻기도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연애할 기회가 많지 않겠어?”



저는 20년 넘게 러닝을 해왔고, 8년째 크루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크루 모임에서 만난 사람과 연애한 적은 없어요. 운동복을 입고 땀을 흘리며 달리는데, 그 순간에 어떻게 연애 감정이 생길 수 있을까요? 얼굴이 빨개지도록 달리면 잘생긴 저도 평범해지던데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러닝 크루’라는 말을 들으면 연애를 떠올립니다. 잠깐, 다시 생각해보니, 저희 크루 모임에서 만난 커플이 다섯쌍이나 있네요. 아, 다들 하는 거야? 연애, 나만 안 한 거였어?



하지만 여전히 저는 러닝 크루가 연애를 위한 모임이라는 인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그런 내용을 풍자한 영상 하나를 봤는데, 황당했어요.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할 사진 몇장 찍고 단체로 술을 마시러 간다는 내용이었거든요. 그런 러닝 크루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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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쌀쌀해져도 달리기에 여념 없는 러닝 크루 회원들. 이우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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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 어이없는 댓글도 달려 있었어요. ‘달리기나 열심히 하면 되지, 왜 비싼 러닝복을 입느냐?’ 좋아하면 입을 수 있죠. 달리기를 열심히 하려면, 안 비싸고 안 예쁜 옷을 입어야 하나요? (저 화내는 거 아니에요! 하하!) 자기 스타일대로 옷을 입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그리고 옷은 러닝 기록에 영향을 미칩니다. 추운 날씨에는 체온을 유지하면서도 가벼운 옷을 입어야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어요. 이런 옷은 물론 비쌉니다.



이런 댓글도 있었습니다. ‘10만원 넘는 러닝화를 왜 신느냐? 아무 운동화나 신으면 되지.’ 다쳐요. 체형과 뛰는 자세에 맞는 러닝화를 신고 달려야 해요. 대회에서는 짧게는 10㎞, 길게는 42.195㎞를 달립니다. 운동화 무게가 1g만 차이 나도 기록에 영향을 미칩니다. 풀코스 마라톤을 4시간 이내에 달리는 게 목표인 러너라면 1초 차이로 3시간59분59초에 완주할 수도 있고 4시간00분00초에 완주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러닝화는 중요하죠. 아무 운동화나 신고 달릴 수가 없다고요.



러너는 그저 달릴 뿐인데, 최근에는 러닝 크루가 희화화되고 있습니다. 상관없어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달리지 않아요. 저는 달려요. 이건 반복해서 말할 가치가 있습니다. 러너들은 달리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매일 행복하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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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쌀쌀해져도 달리기에 여념 없는 러닝 크루 회원들. 이우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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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기 위해 러닝 크루 모임에 가는 게 아니라는 제 주장의 이유를 말해보겠습니다. 달리기를 하면, 진지하게 달리게 됩니다. 러닝은 꾸준히 작은 목표를 달성하고, 마침내 큰 목표를 이루는 과정입니다. 10㎞를 달리면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고, 하프 마라톤을 달리면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게 되죠. “나는 절대 42.195㎞를 달릴 수 없을 것 같아”라고 말하던 친구들이 결국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해 완주하는 걸 여러번 보았어요. 러닝 크루에 가는 이유가 연애였다면, 이런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요?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최소 3개월을 준비해야 합니다. 사실 대회 당일 뛰는 42.195㎞는 긴 거리라고 할 수 없어요. 준비 기간 동안 300~500㎞ 이상을 달리니까요. 이렇게 달리려면 진지해야 합니다.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고, 평일 저녁 약속을 취소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내가 완주할 수 있을까?” 의심하며 초조해하고요. 이 과정 역시 달리기의 일부입니다. 러닝 크루 모임에 나가는 목적이 연애라면, 이런 과정을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스타트 라인에 서면 저는 늘 혼잣말합니다. ‘이제 42.195㎞밖에 안 남았어.’



누군가는 연애를 하기 위해 러닝 크루 모임에 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은 곧 달리기와 연애를 하게 될 겁니다. 물론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목적은 분명히 달라질 것입니다. 연애에서 러닝으로. 러닝 크루 모임엔 달리기에 진심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달리기를 시작한다면, 그런 동료가 생기는 것이죠.



혹시 궁금하세요? 왜 달리기에 빠져드는지.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혼자 남겨졌다고 느낄 때, 우리에겐 달리기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달리기는, 스스로에게 위로받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달려서 어디에 도달하는 걸까요? 저는 궁극적으로 달리기의 지향점은 자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고, 그렇게 스스로의 강함을 발견하는 거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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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쌀쌀해져도 달리기에 여념 없는 러닝 크루 회원들. 한강 주변은 러닝 크루들의 달리기 명소다. 이우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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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각을 경험한 뒤에는 멈출 수 없어요. 저녁에 두꺼운 패딩을 입고 공원에 나가보세요. 얇은 재킷을 입고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왜 영하의 날씨에 달리기를 하고 있을까요? 따라서 달려보세요. 금방 더워져서 패딩을 벗게 될 거예요. 숨이 차면 걸으세요. 괜찮아지면 다시 달리세요. 혼자 달려도 좋고, 여러 사람과 달려도 좋습니다. 느리게 달려도 좋고, 빨리 달려도 좋고요. 함께 달리는 친구와 연애를 해도 좋고요, 달리기와 연애를 해도 물론 좋아요. 중요한 건 계속 달리고 있다는 그 감각입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우성 콘텐츠 제작사 미남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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