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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수)

경호처를 대통령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 [권태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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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에서 차량이 이동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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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청와대(현재는 ‘용산 대통령실’) 실제 주인은 경호처’라는 말이 예전부터 있었다. 대통령실 직원이 1천명가량 되는데, 이 중 경호처 직원이 절반을 넘고, 청와대 관련 건물·시설 등은 대부분 경호처가 관리한다. 대통령이 바뀌면 수석·비서관은 물론 말단 사무직원, 심지어 식당·청소 담당 직원까지 바뀌기도 하는데, 경호처 직원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경호처 실세는 대통령과 함께 들어온 경호처장이 아니라, 정권이 바뀌어도 대통령실을 떠나지 않을 경호처 출신 차장인 경우가 많다.



경호는 ‘단 한번의 실패’도 허용되지 않는다. 경호처 입김이 센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청와대 여러 기관은 자주 경호처와 다퉜다. 경호처는 무조건 ‘안 된다’가 많다. 대통령도 어떻게 못 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대통령 일정’은 극비 사항이다. 2008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은 인천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시구할 예정이었지만, 한 신문이 이를 보도하자 경호상 문제로 취소됐다. 해당 기사는 스포츠부 기자가 썼는데, 영문도 모르던 해당 신문 청와대 출입기자가 1주일간 출입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많은 대통령들이 취임 때는 ‘국민과 함께’라며 대민 접촉을 편하게 자주 하겠다고 하지만, 얼마 안 가 ‘경호상’ 이유로 빈말이 되곤 한다. 청와대 출입기자로 있을 때, 경호처가 사사건건 ‘경호’를 앞세우는 건 어쩌면 자신들의 위상 확립 차원 아닌가 하고 의심할 때도 많았다. 경호처장은 국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대통령 공식 행사에 동행하는 등 늘 붙어 다닌다. 따라서 대통령이 못 믿거나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을 순 없다. 경호처장은 대통령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다. 굳이 ‘심기 경호’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동선은 물론 마음까지 읽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호처장(실장)의 역사는 아름답지 않다. 이승만 대통령 때에는 ‘경무대 경찰서’(400여명)가 있었다. ‘경호실’이란 이름도 ‘경찰이 대통령을 호위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4·19 혁명 때, 시민을 향해 발포 명령을 내린 곽영주 경무대 경찰서장은 사형당했다. 현 경호실 구조는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때 구축된 것이다. 노태우 정부 때까지 줄곧 군인(장군) 출신들이 경호실장을 맡았다. 홍종철·박종규·차지철은 5·16 쿠데타 세력이다. 정동호·장세동·안현태·이현우·최석립은 12·12 쿠데타 세력으로, 모두 하나회 출신이다. 윤석열 정부 경호처장인 김용현·박종준은 ‘12·3 내란’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현재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막고 있는 박종준 경호처장은 20번째 경호처장(실장)이다. 20명 중 절반인 10명이 ‘쿠데타·내란’과 관련돼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충암고 동문 선배인 김용현 경호처장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계엄도 이야기했을 것이다. 경호처장이 국방장관으로 가는 ‘기이한 인사’도 지금 보면, 계엄을 준비한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박종준은 경찰 출신이라고 하나, 이미 2011년에 경찰을 떠나 새누리당 후보로 총선에 두번 출마한 ‘첫 정치인 출신 경호처장’이다.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을 거부하며 진지전을 감행하고 있다. 신념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하겠지만 나중에 법적인 처벌을 받더라도 자신의 진영을 떠나지 않는 ‘정치적 선택’을 한 것이다. 겉으론 ‘직무유기’ 운운하며 무슨 대단한 멸사봉공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대통령 지키겠다’며 한남동에 몰려간 대구·경북 출신 위주 국민의힘 의원들과 다를 게 뭔가. 내란 전날인 지난 2일 대통령 마지막 공식 행사가 박 처장이 출마했던 충남 공주 방문(2016년엔 세종 출마)이었다. 그런데 경호처 일반 직원들은 ‘정치인 경호처장의 자기 이권적 선택’에 왜 휩쓸려 들어가야 하는가.



이 사태가 종료되면 근본적인 문제를 검토하게 될 것이다. 현 대통령실 구조는 비서실장-국가안보실장-경호처장 3각 구도다. 대통령 외에는 경호처의 지휘·운영·인사에 권한이 없다. 김용현은 경호처장 시절, 대통령 경호구역 내 군경 지휘권을 경호처가 갖겠다는 초법적 시행령 입법을 시도하기도 했다. 권위주의 국가일수록 경호처의 힘이 세다. 정치권에선 한결같이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고 한다. 그 첫번째가 경호처를 대통령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다. 윤석열 같은 희대의 대통령은 앞으로 나오지 않겠지만, 김용현·박종준 같은 경호처장은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구조다. 무기를 지닌 경호처는 경찰청 산하 등 중첩적인 지휘 아래 둬야 한다.



박종준 경호처장은 지난 5일 “‘경호처가 개인 사병으로 전락했다’ ‘경호처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에 참담하다”고 했다. 경호처를 ‘윤석열 사병’으로 전락시켜 해체를 앞당기는 일등공신이 박종준이다.



논설위원실장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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