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 논설위원 |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한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퇴행적 사건이었다. 계엄령 해제와 탄핵소추로 회복력을 보여줬지만,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다른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핵심 키워드는 반(反)이민, 반엘리트주의, 포퓰리즘으로 요약된다.
지난 14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플로리다 별장 근처에 있는 그의 지지자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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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흐름의 상징적 인물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곧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벌써 3선 얘기가 나온다. 수정헌법 22조에 두 번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됐는데도 그렇다. 헛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법 조문이나 상상만 하던 일이 현실이 되는 것을 지켜보지 않았나. 프랑스는 극좌파가 주도하는 좌파연합, 중도파, 극우 정당이 의회를 삼분하며 교착상태에 빠졌다. 독일에선 다음 달 총선을 앞두고 극우파인 독일대안당(AfD)의 지지율이 2위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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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국면선 불만 해결 어려워
대화와 타협, 균형 감각이 절실
복지와 함께 성장 여력 키워야
파이낸셜타임스(FT)의 수석경제평론가인 마틴 울프는 저서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경제적 실망이 고소득 민주주의 국가에서 좌파 및 우파 포퓰리즘이 부상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FT가 지난해 선거 결과를 분석한 글을 봐도 그렇다. 지난해 선진국 전체에서 집권당의 득표율은 7%포인트 하락했고, 중도파는 좌우 급진 정당에 지지자를 빼앗겼다. 특히 포퓰리스트 우파는 청년층, 특히 청년 남성에게서 지지를 얻으며 부상했다. 이는 기록적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증가하는 이민, 전체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는 게 FT의 분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물가현장점검을 위해 2024년 3월 18일 서울 양재하나로마트 채소코너를 찾아 대파를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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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민만 빼면 한국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총선 직전의 물가 급등과 대파 사건이 이를 상징한다. 보수 정부의 정책인 감세와 성장, 이를 통한 낙수 효과만으로 각종 불만을 해결할 수 없다. 건전 재정은 필요하지만 인기가 없다. 연구개발(R&D) 예산 삭감과 의대 증원은 거칠고 무능하다는 것만 보여줬다. 국민의힘은 계엄 사태와는 별개로 정책적 측면에서도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어떤가. 적폐 청산에 나섰던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과 집값 상승으로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장하준 런던대 교수는 지난해 12월 17일 FT 기고에서 이렇게 밝혔다. “민주당이 될 가능성이 큰 차기 한국 정부는 복지국가 확대, 노동자 권리 확대,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을 포함한 보다 평등주의적인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대중 민주주의 운동이 보수 정부를 퇴진시키고, ‘진보’ 정부의 무능으로 인해 다시 보수 정부가 들어서는 익숙한 사이클에 빠지게 될 것이다. ”
만일 탄핵이 인용되고 조기 대선으로 민주당이 집권한다면 이런 요구가 거세질 것이다. 민생지원금과 양곡관리법 등을 시행하려면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하다. 문제는 저성장과 재정 건전성이다. 지난해 12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예산안이 부결되자 무디스는 프랑스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유로화를 쓰는 프랑스와 달리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대외 변수에 취약하다. 그렇다면 증세를 해야 하는데 조세 저항이 뒤따른다. 지난해 집권한 영국 노동당은 기업과 고소득층 증세에 나섰다. 공공서비스와 투자를 늘리고 규제를 풀어 성장한다는 전략이지만, 공약 위반 논란이 일면서 지지율이 추락했다.
저성장 국면엔 ‘제로섬 사회’가 된다. 내가 이익을 얻으려면 남의 것을 가져와야 한다는 인식이 퍼진다. 화끈한 한 방이나 쉬운 해결책은 없다. 그렇게 말하는 이는 무책임한 선동가일 뿐이다. 누가 대한민국을 이끌더라도 복지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면서 성장 여력도 함께 키워야 한다. 규제 혁파와 제도 개혁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선 대화와 타협, 무엇보다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느리고 비효율적인 것 같지만 합의된 제도는 그만큼 강력하다. 마틴 울프는 책 첫머리에 ‘메덴 아간’이라는 그리스 격언을 적어 놨다. “무엇이든 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과함은 균형을 파괴하고 결국 탈선의 길로 가고 만다.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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