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영 소설가 |
아버지 생전에 내게 한 마지막 부탁은 틀니를 빼서 닦아달라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언제부터 틀니를 끼기 시작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환하고 고른 치열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다시 고기를 뜯어 먹을 수 있어 좋구나! 하던 장면만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런데 틀니는 어떻게 빼는 건가? 잡아빼야 하나 들어올려야 하나 밀어야 하나 당겨야 하나. 어디부터가 가짜이고 어디까지가 진짜인가. 본인의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빼내는 데는 성공했는데, 손안에 든 틀니의 촉감과 따뜻함이 무척 낯설고 기이했다. 그에 반해 아버지 얼굴은 홀가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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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마지막 음식 동그랑땡
친환경 계란으로 부쳤지만
사는 건 결국 타자 죽음 딛는 것
나의 애도는 진정 무엇이었나
김지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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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는 틀니를 쥐고 남은 한 손으로 아버지 손을 잡은 채 얼마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장례 절차나 당부의 말 같은 죽음 이후의 일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런 얘기 뭣 하러 하느냐 타박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이 들으면 좋아할 만한 조카들 근황이나 자랑거리를 들려주었다. 내가 가져다 입은 아버지 코트의 멋짐을 얘기했다. 모두들 근사하다 칭찬하더라고. 어디서 이리 좋은 옷을 사 입었느냐 묻기에 아버지 옷이라 말해주었다고. 그 말에 아버지는 참 잘했다, 참 좋다, 뭐 더 갖다 입을 거 없나 잘 찾아봐라, 하며 웃었다. 나는 기꺼이 그러마 했다.
아버지의 그 멋진 코트는, 어머니의 말을 빌자면, 십여 년 전 종로의 꽤 권위 있는 양복점에서 맞춘 것으로, 차르르 흐르는 윤기에 고급짐이 요즘 그 어떤 비싼 옷도 따라가기 힘든, 캐시미어 중에서도 최고급 캐시미어 원단을 하나하나 손바느질로 공들여 만들었으나, 정작 입고 나갈 데가 없어 두어 번 걸쳐 보고는 옷장에 고이 모셔두게 된 옷이었다. 아까우니 네가 손 좀 봐서 입고 다닐 테냐 묻기에 덥석 받았다. 딱히 고칠 것도 없이 어깨에 든 뽕만 빼고 입었는데, 마침 빅 대디 오버사이즈 블레이저가 유행이라, 얼결에 나는 유행에 꽤 민감한 패셔니스트가 되었다.
틀니를 깨끗이 씻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잠들어 있었다. 잠든 아버지의 귀에 대고 내일은 당신 좋아하는 동그랑땡을 해 올 테니 틀니 끼고 먹자 말했다. 하지만 틀니는 다시 제 위치로 돌아가지 못했다. 사실 그보다 한참 전부터 제 역할을 하지 못한 틀니였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온갖 기계장치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아버지는 음식섭취를 거부했다. 먹지 않는 것 말고는 본인이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 했다. 어르고 달래고 윽박지르고 울며불며 매달려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입술을 앙다물고 입을 벌리려 하지 않았다.
달달한 병어조림 먹고 싶지 않아? 자작자작 황석어 찌개는? 고추장찌개 짜장면 한우불고기버거 육사시미. 그중에 뭐 하나라도 식욕을 자극해주길 바라며. 단팥빵 소보루빵 슈크림빵.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그랑땡 부쳐올까? 고기 많이 안 넣고 두부 많이 넣고 보드랍게 부쳐서? 반응을 보인 것은 그때였다. 동그랑땡? 응 아버지 좋아하잖어, 보들보들한 동그랑땡. 나는 한 번 더 밀어붙였다. 보돌보돌? 응 보들보들. 그래 보돌보돌 부쳐와 봐라.
보돌보돌한 동그랑땡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진 채소와 두부의 물기를 설렁설렁 짜야 하는데, 반죽이 헐렁해서 모양 잡기가 수월하지는 않다. 계란물을 잘 붙게 한답시고 겉면에 밀가루를 잔뜩 묻혔다가는 딱딱해지기 십상이다. 동그랑땡을 부치다가 문득, 이제 더 이상 아버지 계란은 못 먹겠구나 생각했다.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벌레들을 잡아먹고 살던 닭들. 한 알 두 알 찾아내 맛보던 고소한 노른자 맛. 아이쿠야, 죽기를 작정한 아버지를 두고 계란 맛 타령이라니.
보들보들 동그랑땡은 아버지 자의로 그리고 자력으로 먹은 마지막 음식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뭐 좋은 거 없나 잘 살펴보라는 아버지 유언에 따라, 패딩 점퍼와 돋보기를 챙겼다. 각진 형태의 금테 안경은 취향에 맞지는 않았지만, 도수가 놀랍게도 정확히 일치했다. 아버지와 내 시력이 같았다니. 옷 사이즈 역시 원래 내 것인 양 딱 맞았다. 채취 과정을 알게 된 후로 솜털이니 깃털이니 거위니 오리니 하는 패딩을 멀리하던 터에, 구입한 게 아니라 물려받은 것이니 그야말로 지속가능한 친환경적인 소비가 아니더냐, 얼씨구나 받아 입었다. 계란 한 알을 사더라도 난각번호와 농장 상태를 유심히 살피는 것이 아버지의 닭 알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인데도, 동물복지를 위해 올바른 소비를 했다 여기는 것처럼.
나는 지금 아버지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아버지 옷을 물려 입고 우쭐해 하며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버지의 틀니 생각이 났고, 그 틀니는 어디에 있나 궁금해하다가 내 손에 닿던 입술의 감촉이 떠올랐다. 죽고자 앙다문의 입술의 안간힘과 보돌보돌 동그랑땡 소리에 입맛을 다시던 식욕 사이에서. 우리가 먹고 살아간다는 건 결국 다른 존재의 죽음을 밟고 서 있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나의 애도는 진정 무엇이었나.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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