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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2030 플라자] 교과서에서만 봤던 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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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늦은 시간 야근을 하고 있던 같은 법인 변호사들이 난리가 났다. 밤 늦게까지 고객에게 보내줄 서면을 작성하던 나도 어안이 벙벙했다. 급한 서면을 작성하면서도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1991년생인 나로서는 교과서에서만 봤던 바로 그 계엄이었다.

이내 비상계엄 포고령이 언론사를 통해 보도됐고, 오늘은 일찍 잠들기는 글렀다는 생각에 벌어지는 상황을 주시했다. 변호사로서 느끼는 계엄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은 엄청났다. 평상시 같았으면 모두가 잠들었을 시간이었지만 창밖 국회대로는 국회 앞으로 모여든 사람들로 시끄럽고 어수선했다.

그런데 현대사 교과서에서 배웠던 계엄 사태와 2024년 현실에서 마주한 계엄은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계엄’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어두컴컴한 밤 비밀스러운 군부대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되는데, 오히려 현실에서는 국회 앞 현장 상황을 생중계하는 스마트폰과 이를 둘러싼 시민들의 생각과 감정이 온라인 공간을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인, 유튜버, 일반 시민을 막론하고 잠들지 않은 사람들은 서로 자신의 공간에서 계엄과 관련된 소식을 전하고, 영상을 중계하고, 주변의 반응을 전하고 있었다.

여러 매체로 계엄의 현황을 접하며 하던 일을 마저 처리하니 새벽 한 시 반 정도가 됐다. 그새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회에 진입하기 위해 담장을 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비롯해 긴박한 상황이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늦은 밤 아이들을 재운 아내는 계엄 뉴스를 보면서도 계엄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몰라 혼란스러워했다. 내 또래 젊은 사람들이라면 이런 긴급한 상황 중에 계엄이 무엇인지조차 정확히 몰라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기엔 불안한 밤이었기에 상황을 지켜보며 밤을 새우더라도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휴대전화 카메라를 켰다. 내 이름을 딴 작은 유튜브 채널에 계엄이 무엇인지 계엄법의 내용이라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영상을 올릴 셈이었다. 부리나케 영상과 함께 계엄법의 내용을 노트북에 띄우고 7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해 올렸다. 동영상 인코딩을 거쳐 영상이 올라가니 벌써 새벽 네 시가 넘었다.

나는 현장에 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계엄법 영상을 올리며 얼떨결에 계엄 특집 시민 보도와 논평에 동참한 셈이 됐다. 조금 있으면 동이 트는 새벽이었지만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계엄법을 설명해주는 영상을 보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내 영상은 금방 조회 수가 10만이 넘어 하루만에 5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정확히 계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찬찬히 설명해주는 이가 없었던 새벽에 정보가 궁금했던 국민이 많이 시청한 것이었다.

아침이 되어 쪽잠을 자고 일어나 다양한 매체를 살펴보니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간밤에 있었던 일들이 생생히 재구성되고 있었다. 밤새 잠들어 있었던 시민들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었다. 40여년 만의 비상계엄이니만큼 세상이 많이 달라졌는데, 가장 큰 변화는 모든 시민이 계엄의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계엄은 하룻밤 사이에 온 세상이 어두침침해지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비상계엄이 선포되어도 시민들의 눈과 귀는 더 바쁘게 움직인다는 것을 밤새도록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잠들지 않는 시민들의 눈과 귀가 위기에 봉착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 저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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