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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활주로 기준보다 40m 짧은데···설치도 안된 EMAS 기준 충족했다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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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공항 종단안전구역 199m

"90m 넘어 괜찮다" 밝혔지만

EMAS 없을땐 240m 넘어야

"문제 없다"는 정부 해석 '안일'

해외선 72곳 설치···국내는 0곳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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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명의 사망자를 낸 제주항공 무안 참사의 사고 원인 중 하나로 활주로의 ‘짧은 종단안전구역(RESA)’이 지목된 가운데 ‘무안공항의 종단안전구역 길이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최소 기준인 90m보다 길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국토교통부의 해석이 안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ICAO는 ‘착륙제동장치 설치 조건으로 종단안전구역을 권고 기준인 240m보다 짧게 만들 수 있다’고 밝혔는데 무안공항에는 항공기이탈방지시스템(EMAS) 등 안전장치가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토부도 지난해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EMAS 도입 필요성을 강조한 보고서까지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1일 서울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비행장 설치에 대한 국제 기준을 명시한 ICAO의 ‘Annex 14’ 3항 5조는 ‘종단안전구역의 권장 사항은 활주로 끝에서부터 240m이며 착륙제동장치가 설치됐을 경우 줄일 수 있다’고 명시한다. ICAO는 별지A 10조를 통해서도 ‘종단안전구역 설치에 제한이 있을 경우 항공기 오버런에 효과가 있음을 입증한 착륙제동장치를 설치하는 것을 권고한다’고 강조했다.

ICAO를 참고했다는 우리나라 ‘공항·비행장 시설 설계 세부 지침’은 최소 기준만 가져와 작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세부 지침은 종단안전구역의 권고 기준 240m만을 명시했을 뿐 ICAO가 착륙제동장치를 언급한 부분은 쏙 빼놓았다.

또한 ICAO는 “2000m급 활주로는 장거리 대형기의 안전한 이착륙 거리 확보가 어렵다”고 경고하며 착륙제동장치 설치를 권유했다. 무안공항의 활주로 길이는 2800m로 확인됐으며 이마저도 사고 당시 300m는 공사 중이었다.

ICAO는 대표적인 착륙제동장치로 EMAS를 언급했다. 추가 자료에는 ‘EMAS는 활주로 끝에 설치되며 짧은 종단안전구역이 권고 길이와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한다’ ‘EMAS는 수년간 다수의 항공기 오버런을 효과적으로 막은 대표적인 착륙제동장치’라는 설명이 나온다.

EMAS는 부서지기 쉬운 고에너지 흡수 물질로 만들어진 장치로 항공기가 밟으면 무게에 따라 충돌해 완만하게 감속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ICAO가 EMAS를 공식 제안한 것은 2012년으로 이후 전 세계 72개 공항에 설치됐지만 국내 공항에는 한 곳도 도입되지 않았다.

앞서 국토부는 사고 원인으로 짧은 활주로 길이가 언급되자 “무안공항의 종단안전구역 길이는 199m”라며 “국제 기준 등에서는 90m가 최소·의무 기준이며 권고 기준은 240m”라고 일축했다. 무안공항에는 EMAS가 설치되지 않았음에도 국토부는 ICAO 규정을 최소한으로 해석해 해명한 것이다. 미국 연방항공청(FAA) 역시 종단안전구역의 권고 길이를 300m로 설정하고 EMAS 설치 시 180m 이상으로 단축해 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문제는 국토부도 사전에 EMAS의 필요성과 ICAO가 EMAS 설치를 전제로 활주로 단축을 권고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2023년 국토부와 항공안전기술원이 발간한 ‘항공 안전 활주로 관리’ 보고서에는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ICAO 권고 길이 240m를 충족하지 못해 활주로 확장이 제한적인 공항에 부지의 물리적 한계 해결을 위해 EMAS를 설치한다”며 “종단안전구역에 추가적으로 EMAS를 설치할 경우 위험을 더욱 감소시킬 수 있다”고 언급돼 있다. EMAS 설치에 따른 종단안전구역 거리 단축으로 ICAO는 240m→90m, FAA는 305m→183m라는 내용도 나온다.

현재 선진국들은 EMAS 도입을 위한 연구개발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FAA는 지난해 9월 보고서를 통해 허가를 받은 EMAS를 71개 공항, 121개 활주로 종단에 설치했다고 밝혔다. 다른 허가 제품 또한 미국 시카고 미드웨이 활주로 종단에 4개가 설치돼 있다. EMAS로 항공기의 오버런을 막은 사례는 22건이며 해당 항공기에는 총 432명이 탑승해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역시 2017년 3월 국토교통성 항공국이 발간한 ‘활주로 종단안전구역(RESA) 대책에 대한 지침’을 통해 EMAS 도입을 논의했다. 이후 3년 뒤 일본 최초로 도쿄 하네다공항에 폭 84.5m, 길이 62.8m의 EMAS가 설치됐다.

우리나라도 EMAS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 도입은 더디다. 항공안전기술원은 세계 각국의 EMAS 설치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와 산악 지역 등으로 활주로 배치·확장에 어려움이 있어 EMAS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며 “사고 예방을 위한 인프라 도입에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항공안전기술원은 “운영 가능한 기준과 설치에 대한 구체적인 제도가 없으므로 이러한 사항을 면밀히 검토해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활주로 이탈방지 시스템(EMAS)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오버런(Overrun) 등 예상치 못한 사고로 활주로를 이탈하는 경우에 대비해 활주로 밖에 설치되는 장치다. 항공기가 진입하면 블록 형태의 시멘트 등 재료가 부서지며 항공기를 멈춰 세우는 역할을 한다.

채민석 기자 vegemin@sedaily.com박민주 기자 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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