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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사설] 참담한 심정으로 맞은 새해, 87년 체제 극복의 원년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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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정부는 1월 4일까지 7일간의 국가애도기간에 전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들이 조기(弔旗)를 게양하고, 공직자들은 애도 리본을 착용하게 되며 전국 17개 시도에 합동분향소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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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총리 직무정지 상태서 최악의 항공기 참사까지





우리 사회 정쟁의 늪에 빠뜨린 권력 독식 체제 개편 시급





제왕적 대통령 견제하고 의회 폭주 막을 새 질서 불가피



우리는 어느 해보다도 참담한 심정으로 새해를 맞게 됐다. 12·3 계엄사태 여파로 정국이 혼란한 와중에 발생한 무안공항 제주항공기 참변은 온 국민을 비통함에 빠지게 했다. 사고 수습 사령탑이 됐어야 할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 도발로 직무정지에 이어 체포 위기에 몰렸다. 대통령 역할을 대신해야 할 한덕수 국무총리마저 헌법재판관 임명을 회피하다가 탄핵소추를 당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으로서 ‘1인 4역’을 수행해야 하는 실정이다. 민주주의 후진국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정국 혼란이 세계 10위 경제 대국을 자부해 온 대한민국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

한국의 성장이 끝났다는 이른바 ‘피크 코리아(Peak Korea)’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경제 주체들이 안간힘을 썼으나 연말 계엄 사태로 최악의 상황을 맞고 말았다. 오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백악관 재입성을 앞두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경쟁국과 달리 우리 정부는 무기력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혼란의 기저에는 민주화 운동의 결실로 수립된 1987년 헌법 체계의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승자 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역설적으로 대통령 자신에게 가장 큰 불행을 초래했다. 87년 이후 선출된 8명의 대통령 중 세 명이 구속됐고,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명은 이제 체포의 문턱에 섰다. 과도한 권력은 대통령 가족에게까지 흘러넘쳐 부인과 자식이 검찰 수사를 받는 일이 잇따랐다. 대통령 탄핵소추 양상도 갈수록 심각해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위헌·위법의 정도가 파면에 이르지 않는다는 헌재의 판단으로 5년 임기를 채웠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를 1년 정도 남기고 파면당했고, 윤 대통령은 취임 2년7개월 만에 권한 행사가 정지됐다.

반복되는 비극을 막는 길은 권력 분산뿐이다.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불과 0.73%포인트 앞선 윤 대통령이 여야 협치를 무시하고 권력을 독점하면서 비극을 잉태했다. 의회 권력 역시 절제력을 상실했다. 거대 야당은 무차별 탄핵으로 정부를 작동 불능 상태로 몰고 간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87년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고, 유인태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정치 개혁의 요체는 선거법 개정을 통한 다당제 안착”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학계에서도 “비정상의 일상화는 새로운 정치 질서의 태동을 요구한다”(염재호 태재대 총장)거나, “현행 대통령제 및 대통령 개인의 이중 리스크는 한국 공동체의 존망이 걸린 문제”(박명림 연세대 교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반 국민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앙일보-엠브레인퍼블릭 신년 여론조사에서 ‘개헌 방향’을 묻는 항목에 5년 단임제를 유지하자는 의견은 33%에 불과했다. 보수·진보 응답자 모두 빠른 개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나라를 정쟁의 늪에 빠뜨리는 87년 체제의 한계는 선거 때마다 부각됐으나 승자는 제왕적 권력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새로운 질서의 출현이 절실해진 을사년(乙巳年)을 맞아 여야가 정쟁의 악순환을 끊는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 87년 체제 극복의 요체는 권력 분산이다. 대통령이 국회를 짓밟지 못하고, 의회 다수당도 막무가내로 정부를 망가뜨릴 권한이 없는, 민주주의 방어기제를 갖춘 체제의 설계를 더는 늦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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