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 청룡암 주지 |
누군가 찾아와 푸념을 쏟아내던 중 내게 묻는다. 스님은 외롭지 않나요? 라고. 듣는 찰나에 씁쓸한 엷은 웃음이 미간으로 퍼진다. ‘뭐 이런 질문을 하지?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아무래도 출가자는 외로운 사람일 거라는 선입견이 작용한 것 같다. 그래서 답을 하기 전에 물음을 되돌려준다. 당신은 외롭지 않으냐고. 그랬더니 맨날 외롭단다. 바람 소리만 들어도 춥고 옆구리가 시려 오고, 해가 바뀌는 무렵이 되면 더 외롭고 쓸쓸하다면서 자신의 정리되지 못한 감정들을 하소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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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바뀌면 커지는 삶의 욕망들
마음 한번 내려놓으면 사라져
과한 결심보다 목표를 줄여야
김지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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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얘기는 그 누구와도 오래 하고 싶지 않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에도 오한 들 듯 싸늘한 마음을 다지는 게 수행자의 삶이다. 그런데, 굳이 이런 속내까지 드러내면서 상대를 위로해야 하는 게 싫을 때도 있다. 왠지 가련한 나의 생애라도 내놓고 파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쨌든 춥다는 생각은 외로움을 부른다. 그 외로움은 불청객 감기를 불러오고, 감기는 몸을 아프게 하며, 몸이 아프면 다시 혼자라는 생각에 빠져 외로워지게 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리 삶에서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것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니 자신이 일으키는 한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하고 살 수는 없지만, 누구라도 자신이 처한 현실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마음은 대개 비슷할 것이다. 그것이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그러하다. 더욱이 새해 새날이 되면 그런 생각이 더 간절해지기도 할 테니, 길을 모색하려면 몸도 마음도 잘 추슬러야 한다. 특히 외로움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더 두렵게 하고, 새롭게 솟아날 용기를 가로막는다. 때문에, 서둘러 내려놓지 않으면 정작 가야 할 길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고향 집을 떠나올 때,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말씀이 생각난다.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 이별의 순간이었지만 가슴 깊이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비로소 어머니의 말씀이 귀에 와 닿는 순간, 그대로 박혀버려서 지금껏 빼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 말씀 덕분에 살면서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의 위안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외롭고 힘들 때마다 더 크게 내 마음을 흔들어 놓기도 했다. 기댈 곳이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각각 장단점이 있기는 매한가지인 듯하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출가의 길은 건조해진 마음을 유연하게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제약과 금기가 많아서 한시라도 몸가짐이 흐트러지면 안 되기 때문에 고단한 삶에 가깝다. 마음가짐은 곧 몸가짐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하고, 가지고 싶다고 다 갖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들도 마음 한 번 내려놓고 나면 사라지게 마련인 것을.
우리나라에 깊은 애정을 보여주었던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사카모토 류이치가 2023년 봄 아름답게 생을 마감하였다. 특히 인생 후반부에 접어들 무렵부터는 불교의 ‘공(空)’ 사상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나의 고단했던 유학 생활에서 그나마 마음이 각박해지지 않았던 건 그의 음악 덕분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지난해 초여름 출간된 그의 유작 저서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를 읽고 있노라면 화려한 명성과는 달리 여느 보통 사람들과 다름없는 인간적 고뇌를 느낄 수 있다. 또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담담한 화법으로 서술되는 문장에서는 은은한 공감을 표하게 된다. 다음은 그의 문장이다.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시험 삼아 피아노를 마당에 그냥 놔둬 보기로 했습니다. 몇 년의 시간 동안 수차례 비바람을 맞으며 도장도 다 벗겨진 지금은 점점 본래의 나무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어떻게 썩어갈 것인가. 그것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나이 먹어 가야 하는가, 하는 것과도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암 투병 중 깨달았던 그의 사생관도 들여다볼 수 있다.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 나이를 쌓아만 가는 것은 나무가 썩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비유에서 시사하는 메시지가 크다. 결국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이냐는 사카모토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면서, 더불어 우리 모두 답을 찾아야 할 화두이기도 하다.
이제 2025년 새해 첫날이 시작되었다. 과도한 목표나 실현 불가능한 소망, 작심삼일로 끝날 다짐을 정하기보다는 후회나 절망의 늪으로 빠지지 않도록 바람의 크기를 재단하는 것은 어떨까. 올해 을사년에 볼 수 있는 보름달이 아직 열두 번이나 남아있으니까.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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