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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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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의 오마이갓] 사랑 평화 화합...종교계 신년사가 ‘희망사항’에 머물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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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23년 12월 강릉 정동진을 찾은 관광객들이 일출을 보고 있다.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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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첫날입니다. 올해도 종교 지도자들은 신년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대혼란 속에 2024년을 마무리하면서 2011년 이후의 신년 메시지를 찾아봤습니다.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들이 있었습니다. ‘사랑’ ‘자비’ ‘화합’ ‘상생’ ‘평화’…. 각 종교 수장의 얼굴은 바뀌곤 했지만 이들 단어는 거의 매년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단어가 등장하게 된 배경엔 분열, 갈등, 반목이 깔려 있었지요. 결과적으로 보면 매년 종교 지도자들의 소망은 ‘희망사항’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평화’ ‘사랑’ ‘화합’은 그만큼 어려운 모양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주요 선거가 있던 해에는 종교 지도자들은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했지요. 2012년 신년사에서 당시 정진석 추기경은 “지혜로운 삶과 선택은 늘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눈앞의 이익을 보지 않고 영원한 가치를 지향하는 삶이야말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라고 했지요. 당시 원불교 경산 장응철 종법사는 “지도자의 혜안은 이정표가 되고, 공익정신은 한층 넓은 길을 개척하며, 신뢰로 함께 가는 길은 어려움을 헤쳐 나갈 용기를 갖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도자의 중요성은 거의 매년 빠지지 않는 주제였습니다.

2013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영주 목사는 “새해에는 뿌리 깊은 갈등과 분열의 골이 메워지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12년 전 김 목사가 이야기한 ‘뿌리 깊은 갈등과 분열의 골’은 지금 얼마나 메워졌을까요? 더 깊어진 것은 아닐까요? 이 해에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를 말하고 실천하자”고 했지요. 감사하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또 얼마나 확산됐을까요?

세월호 사고를 겪은 이듬해인 2015년엔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누적된 과거의 폐습, 반목과 갈등은 지난해에 잊혀 보내고 국가와 지구촌의 행복한 내일을 모두 다 같이 염원하자”고 했고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은 “상극을 상생으로, 전쟁을 평화로, 물질 만능을 도덕문명으로 만들어 통일의 전기를 마련하자”고 했습니다. ‘누적된 과거의 폐습’은 정리가 됐을까요? ‘물질 만능을 도덕문명으로 만들자’는 바람은 얼마나 실천됐을까요?

2016년에도 화두는 ‘평화’와 ‘화합’이었습니다. 염수정 추기경은 “우리 사회가 더 정직해지고 믿음과 신뢰가 흘러넘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며 “다른 생각을 지난 사람들과도 공존하고 친교를 나누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 공동체는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고, 불행이 행복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기총 이영훈 대표회장(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도 “과거의 반목과 갈등, 불화와 균열을 넘어 이제는 화목과 화합, 연합과 일치를 위해 도약할 때”라고 했지요. 그렇지만 2016년이 저물기 전에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결국 화합도, 연합과 일치도 이루지 못한 채 한 해를 보냈지요.

2018년 신년사에서는 희망과 평화, 사랑이 강조됐습니다. 진각종 회정 총인은 “남의 눈 티끌은 잘도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새해에는 종교와 사상, 지역과 인종을 떠나 지구촌의 모두가 참나[眞我]를 밝히는 참선 수행으로 삼천리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이루고 인류가 화합하는 평화로운 지구촌이 되도록 정진하자”고 했습니다. 이 무렵까지는 종교 지도자들의 신년 메시지에 ‘통일’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후로는 점차 ‘통일’이라는 단어가 드물어진 것도 변화의 한 단면입니다.

2020년 이후는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렸지요. 종교 지도자들의 메시지도 코로나 극복에 집중됐습니다. 염수정 추기경은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 당한 이들을 위해 우선적인 사랑과 배려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했고, 소강석·이철·장종현 당시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단도 “비록 우리가 코로나 19의 사막을 걸어간다고 할지라도 우리 안에 주신 믿음과 소망으로 생명의 꽃씨를 뿌리자”고 호소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우리 종교계는 코로나 극복을 위해 앞장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도 적극 나섰습니다.

지난해에도 종교지도자들은 “대립과 갈등이 자타(自他)가 본래 한 몸임을 자각하면 세상 모두가 참으로 소중한 인연”(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 “작은 선(善)도 포기하지 않는 그 순간 부처님의 미소를 볼 것”(천태종 종정 도용 스님) “하루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좋은 달들이 모여 더 좋은 해가 된다”(태고종 종정 운경 스님)며 화합과 마음공부, 선행을 당부했습니다. 정순택 대주교는 상호 존중과 대화, 평화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지요. “대화는 평화의 필수 조건이요, 상호 존중은 대화의 필수 조건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목격했듯이 지난해 정치권에서 상호 존중과 대화는 거의 실종됐지요. 그 결과 계엄과 탄핵의 여파는 해를 넘겨서 진행될 예정이고요.

올해도 좋은 말씀이 많습니다.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은 ‘삼동 찬바람에도 새봄을 준비하는 보리싹’ 같은 마음을 강조했고, 천태종 종정 도용 스님은 ‘한 자루 촛불이 본래 없던 어둠을 몰아내듯 무명 번뇌 속에 한 조각 착한 마음 그 자리에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다’고 했지요. 정순택 대주교도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지요. 역시 새해의 화두는 절망과 아픔, 혼란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 신년사를 찾다보니 2023년초 진각종 당시 경정 총인의 신년사 마지막 대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올해도 내년에 살아남은 사람이 그토록 진지하게 살아간 작년이 되도록 그렇게 뜻 모아서 살맛이 벅찬 나날을 나누어 봅시다.” 새로 시작된 2025년, ‘살맛이 벅찬 나날을 나누는’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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