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4시18분께 서울 양천구 목동 깨비시장에서 70대 남성이 모는 승용차가 돌진해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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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남성이 몰던 승용차가 재래시장 골목에 돌진, 1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31일 오후 3시 53분쯤 서울 양천구 목동깨비시장에서 김모(74)씨가 운전하던 검은색 에쿠스 차량이 행인과 상점 등을 덮쳐 40대 남성이 사망했다. 3명은 중상을, 9명은 경상을 입었다. 사망자는 이날 사고 직후 이대서울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오후 9시 46분쯤 숨졌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급발진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계엄 사태에 비행기 참사까지 겹쳐 가뜩이나 침통한 연말인데 이런 사고까지 발생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사고 직후 119엔 “시장에서 차량이 사람을 치고 갔다” “인명 피해가 많을 것 같다”는 다급한 신고가 빗발쳤다. 소방은 현장에 차량 20여 대, 인력 60여 명을 투입했다. 경찰·소방 조사와 목격자 진술을 종합하면, 이날 오후 운전자 김씨가 운전하던 검은색 에쿠스 차량은 깨비시장 후문 사거리에서 앞서가던 버스를 앞지르다 가속해 시장 내부로 돌진, 약 40m를 질주했다.
이 사고로 시장 과일 가게 직원과 견과류 상인, 장을 보던 시민들이 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시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차량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시장은 수 초만에 아수라장이 된다. 이날 본지 기자가 찾은 시장 바닥에는 과일 상자가 널브러져 있었고, 딸기·귤 등 과일 수백 개가 바닥에 으깨져 있었다. 여기저기 산산조각 난 플라스틱 박스도 나뒹굴고 있었다.
최초 신고자 황연도(33)씨는 “펑 하는 소리가 나고 과일들이 길바닥에 나뒹굴길래 가게 밖으로 나가봤더니 골목 입구에 있던 과일 가게 직원이 30m 떨어진 정육점 앞까지 날아가 있더라”고 했다. 당시 거리를 지나던 한 여성은 “제가 간호사예요”라고 말하고 응급 처치를 했다고 한다.
반찬 가게를 운영 중인 김강래(47)씨는 “차에 치인 사람이 바닥에 쓰러지고, 온 바닥이 피로 뒤덮이는 등 시장은 삽시간에 아비규환이 됐다”고 말했다. 황모(54)씨는 신발에 묻은 피를 닦으며 “가게 앞에 신발을 진열해 뒀던 게 다 쏟아져 급하게 나와봤더니 사람이 숨도 못 쉬고 길거리에 쓰러져 있어 내가 급하게 응급 처치를 했다”고 했다.
건어물 가게 업주 안영규(66)씨는 “시장 골목에 머리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흩어져 있어 우리 상인들은 차마 비명도 못 지르고 있었다”며 “운전자도 놀랐는지 시동도 안 끄고 있길래 상인들이 나서서 빨리 시동 끄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불 가게 업주 윤재선(57)씨도 “사고가 난 후 약 6분 가까이 운전자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행인들이 나오라 해도 나오지 않다가 경찰이 부르니 나오더라”며 “자신이 저지른 일을 믿을 수 없어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와 이웃이 변을 당하자 상인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과일 가게 직원인 남성 B씨와 견과류 가게를 운영하던 여성 C씨가 골목 근처에서 일을 하다 변을 당했다고 한다. B씨와 10년 동안 함께 일했다는 업주는 B씨가 이송된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으며 “못 깨어났대. 어떡해”라며 오열했다.
B씨가 근무하던 과일 가게 단골이라는 한 60대 여성은 “사고 30분 전에 언니(C씨)와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가게 앞에서 인사를 나눴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평소엔 가게 안에 들어가서 일하더니 왜 그때 길거리에 나와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떡집을 운영하는 김정애(50)씨는 “차가 지나가며 매대에 있던 떡 상자가 땅으로 떨어졌다. 가게 앞에 손님이 서 있었다면 분명 차에 치였을 텐데 아찔했다”며 “바로 옆집에서 장사하던 동료가 사고를 당해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이날 운전자 김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입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사고 당시 김씨가 음주를 하거나 약물 복용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급발진은 없었으며, 차를 오랫동안 주차장에 세워놨던 터라 방전이 걱정돼 오랜만에 끌고 나왔다가 사고가 났다”고 진술했다. “앞서 가던 차량을 피해 가속하던 중 시장 가판대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이후론 잘 기억이 안 난다”고도 말했다. 경찰은 CCTV 영상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지난해 7월 시청역 참사가 발생한 지 5개월 만에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가 발생하자 고령자 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로교통공단 통계를 보면 만 65세 이상 노인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20년 3만1072건에서 2023년 3만9614건으로 3년 새 27.5%(8542건) 증가했다.
[강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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