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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금)

“로컬라이저 정해진 규격 없다” “규정 위반 아니다” 책임 회피 급급한 국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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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주종완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왼쪽)이 3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브리핑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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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오전 181명 중 179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1997년 괌 참사 이후 27년만의 대형 항공 사고로 기록된 ‘제주항공 참사’의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는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주변에 있던 착륙 유도 장치(로컬라이저)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지목된다. 이 와중에 주무 관서인 국토교통부에서는 30일부터 “로컬라이저의 정해진 규격은 없다” “규정을 파악하고 있다” 등 말을 바꾸다가 항공장애물 관리 세부지침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으니 규정 위반은 아니다’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 논란이 되고 있다. 사고를 책임지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할 정부 부처가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30일 오후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는 관련 규정에 맞게 설치됐습니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콘크리트 둔덕이 사고를 키웠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항공장애물 관리 세부지침을 근거로 국내 규정에도 위반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에 대한 해명 자료를 낸 것이다. 해당 보도자료에서 국토부는 “‘공항시설법’에 따른 항공장애물 관리 세부지침 제23조 제3항에 따르면 공항부지에 있고 장애물로 간주되는 모든 장비나 설치물은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에 장착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면서도 “이는 착륙대,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내에 위치하는 경우에만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즉 무안공항 로컬라이저처럼 종단안전구역 외에 설치되는 장비나 장애물엔 해당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국토부 변명은 크게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 국내외에서 이 같은 규정을 둔 이유는 기체이상으로 인한 비상착륙 등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것인데 종단안전구역에 속하는지 아닌지를 두고 불법을 따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한 항공업계 전문가는 “무안공항의 종단안전구역이 착륙대의 종단에서 199m고, 로컬라이저의 위치는 그로부터 50여m 떨어진 251m인데 경계선 바로 바깥에 있었다고 규정 위반이 아니라 하는 것은 주유소 부지 바로 앞에서 담배 피운 사람이 주유소 안에서 피운 것은 아니니 문제가 없다”고 변명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내외 모든 항공 관련 지침엔 “충돌시 항공기에 타격이 없을 만큼 부서지기 쉬운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규정이 있다. 항공장애물 관리세부지침 제25조에 따르면, 로컬라이저 안테나 등 장애물이 될 수 있는 공항장비와 설치물의 종류는 항공기가 충돌했을 때 최소한의 손상만을 입히도록 돼 있다. 미국연방항공청(FAA)에서도 항행안전구역에서 접근지시등과 로컬라이저 안테나를 위해 부러지지 않는 탑(tower)을 쌓아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부러지지 않는 탑은 항공기에 심각한 위험으로 작용하기에 로컬라이저 안테나를 위한 시설을 설치하더라도 견고한 콘크리트가 아닌 부러지거나 저항이 작은 구조물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국토부는 “여수공항이나 청주공항에도 이같은 시설이 있다”고 변명하면서도 해당 공항의 구조물 사이즈에 대해선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심지어 문제의 무안공항 로컬라이저 설계를 묻는 질문에도 “2005년에 설계됐고 현재 설계도면도 없다”며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땅으로 뻗어있다고는 들었는데 얼마나 두꺼운지, 얼마나 깊은지 등은 잘 모른다”고 했다.

국토부의 말바꾸기 논란은 3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무안 여객기 사고 관련 브리핑’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날 브리핑에서 나온 “사고 기체가 동체 착륙 이후 콘크리트 둔덕에 부딪혔는데 (콘크리트 둔덕이) 다른 공항에서도 보편적인 것인지”라는 질문에 대해 국토부는 “여수공항 등에도 콘크리트 구조물 형태로 (방위각이) 있다”고 답했다. 또 ‘콘크리트 방위각이 일반적인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다른 공항들은 어떠한지’를 묻자 국토부는 “방위각 시설은 항공기 이착륙할 때 방위를 계기판으로 확인할 수 있게끔 밑에서 신호를 주는 시설로 항행안전시설의 한 종류”라며 “방위각 시설을 어떤 토대 위에 놓냐는 공항별로 다양한 형태가 있다”라고 했다. 또 “콘크리트 구조물도 그중 하나”라며 “정해진 규격은 없다”고 했다. 로컬라이저 관련한 설치 규정을 묻는 질문에도 “저희가 사실은 지금 근거 규정이나 해외 어떤 내용들을 파악 중에 있고, 파악이 되는 대로 자료를 제공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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