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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목)

[세상 읽기]총구 앞에서의 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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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일 밤, 전화소리에 잠을 깬 뒤 계엄이라는 비현실적 현실을 마주했다. 시민들은 국회로 달려가 장갑차를 막고, 창문을 깨고 난입하는 군인들에 맞서는 등 국회 안에서는 그야말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날 이후 줄곧,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총을 맞고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군사재판에 회부되는 계엄령의 역사가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것은 모욕감이었다. 국가가 내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는 감각, 총구 앞에서 우리가 누리던 일상이 가볍게 증발해 버릴 수 있다는 실감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계엄이 선포됐던 여순사건에서 악명 높던 ‘손가락총’이 떠올랐다. 1948년 10월22일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이 선포되고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반란군’ 협력자 색출이 시작됐다. 군은 시민들을 학교운동장 등에 모은 뒤, 지역 우익인사나 경찰관이 협력자라며 손가락으로 지목한 시민을 끌고 가 즉결처분했다. 근거도 없이 무차별 난사한 손가락총이었다. 손가락이란 생살여탈권 앞에 고개 숙인 채 두려워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인간을 향한 모욕의 극단을 보여준 예다.

이 같은 모욕이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영역 중 하나가 바로 병영이다. 계엄이 일상적인 법의 작용이 정지되는 ‘예외상태’를 선포하는 것이라면, 군대 역시 군의 규율을 이유로 병영을 사회와는 단절된 예외상태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시민과 구분되는 일상의 온갖 규율을 병사에게 강제해 명령에 복종하는 신체를 길렀다. 손가락총처럼 찍히면 불이익받는 공간에서 살아남으려면 고분고분해야 한다. 그 결과 민간인에게 총구를 향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기 어렵게 된다. 복종하는 신체는 총구 너머에 두려워하는 얼굴의 편에 서는 상상력을 제약하기 때문이다.

군은 병사에게 제네바협약이나 부당 명령에 대한 항명할 권리를 알려주지 않는다. 채 상병 사건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도 이것이다. 위계에 복종하는 신체는 자신이 죽게 될 명령도 거부하기 어렵다. 그러나 총을 든 자가 아닌 총구를 마주보는 자의 감각, 총구 앞에서 발가벗겨진 몸뚱어리의 감각으로부터 항명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국회 담장을 뛰어넘어 총구가 겨눠지는 두려움의 체험으로부터 김상욱 의원이 구축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그러하다. 부당 명령으로 동료를 잃고 국가를 향한 믿음을 부정당한 해병대 예비역은 탄핵집회에 참석했다. 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그들이 충성하는 국가란 더 이상 채 상병처럼 억울한 죽음이 없는 나라일 테다.

2024년 한겨울의 광장에는 그 모욕에 대항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항명이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뜻한다면, 민주화의 역사는 국가가 겨눈 총구 앞에서의 항명의 계보로 쓰여 왔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제주 4·3사건을 진압하라는 출동명령을 거부한 여수 14연대의 항명에서 시작됐다. 시민을 죽일 수 없다며 항명한 군인들은 반란군으로 몰렸다. 하지만 2024년 12월3일의 밤은 달랐다.

현재 거대한 항쟁의 중심에 선 젊은 여성들은, 주먹에서 카메라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방조한 숱한 폭력에 존재를 부정당했고 그에 맞서 싸워왔다. 그들은 남태령을 계기로 농민,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과 연대하고 있다. 폭력을 겪어왔던 이들이 서로의 존엄을 지키고자 총구를 겨누는 국가를 향한 집단적 항명을 이어가고 있다.

선은 총구를 겨누는 자와 겨눠지는 자 사이에 그어져 있다. 안하무인으로 일관하는 국민의힘과 국무위원들은 계엄에 동조했거나 적어도 계엄의 총구가 자신의 미간을 겨냥하지 않을 거라 확신한 자들이다. 그 반대편에 무작위의 손가락총을 예감했던 시민들이 있다. 이것은 타인의 존엄을 짓밟아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는 자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존엄에 연대하는 자 사이의 싸움이다.

경향신문

최성용 사회연구자


최성용 사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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