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헌 부동산부장
익명성에 기대어 윤리 한계 넘어
사회갈등 조장 행위 뿌리 뽑아야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휴일이던 29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착륙 중이던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로 탑승객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1997년 이후 최악의 항공사고. 참혹한 사고 소식에 유족은 물론이고 온 국민이 참담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연말을 맞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들뜬 마음으로 여행을 다녀오던 길에서 마주쳤을 죽음의 공포는 감히 떠올리기도 힘들 지경이다. 3세 늦둥이 아들과 첫 해외 여행을 떠난 부부, 크리스마스 여행을 떠난 여섯 자매, 결혼 16일째였던 신혼부부 등 참변을 당한 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전해질 때마다 마음을 짓누르는 무게가 더해진다.
“언제든 사고의 당사자가 내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더해 나라가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런 대형 사고가 발생한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안타깝게도 대형 참사를 수습해야 할 정부 조직은 12·3 계엄사태로 어수선한 상황이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재난 안전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장관도 권한대행 체제다. 경찰과 군대 역시 수장은 공백 상태다.
하지만 그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벌써부터 고개를 들고 있는 조롱과 혐오들이다. 직접 뉴스 댓글을 통해 목격한 글들 역시 ‘사람이라면 이럴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이용객이 적은 것과 묶어 활주로에 고추를 널어 놓던 공항에서 당연히 일어날 사고였다든가, ‘라도(전라도를 지칭하는 비속어)답다’, ‘민주당에서 우겨서 지은 공항에서 사고날 줄 알았다’ 정도의 지역 비하성 발언은 점잖은 편에 가깝다.
무안공항 청사에서 가족의 신원확인을 기다리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가족들의 심경을 다룬 뉴스에는 ‘전라도 토착 인민공산민주공화국’이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보상금 받을 생각에 속으로는 싱글벙글일 듯” 이라는 조롱성 글이 올라왔고, 또 다른 게시물에는 “좌파들이 사람 죽음 이용하는 건 막아야죠”란 기가찬 내용의 글이 게시됐을 뿐 아니라 여기에 달린 추천과 댓글 개수도 십여 개에 달한다. 댓글에는 입에 담기도 어려운 글들이 달렸음은 물론이다.
사고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인 조종사와 승무원들에 대한 비하도 도를 넘고 있다. 방구석 전문가들은 말 그대로 방구석에 앉아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얇디얇은 지식으로 누구보다 진실되고 치열하게 현실과 싸웠을 사람들의 노력을 비하하고 무시하고 있다.
인두겁을 쓰고 저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확증편향의 시대에 서로 다른 미디어를 통해 무너진 바벨탑 아래 선 사람들처럼 각기 다른 말을 할 수 있다지만 최소한의 도리와 윤리라는 것은 여전히 지켜져야 한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본성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그 죽음이 불의의 사고나 폭력으로 발생한 갑작스러운 단절이라면 애도는 더욱 간절하고 애통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혐오와 차별의 말을 멈춰야 한다. 상식적으로,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말들을 익명성에 기대어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된다. 처벌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그래야 한다.
다시 한번 예기치 못한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피해자들의 명복을 빈다. 졸지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또한 정부는 황망함과 항공 사고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사고 원인에 대한 철저한 규명 노력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carlove@
[이투데이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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