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14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일대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 집회에서 시민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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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찬 |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이것은 내전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원래 총칼은 없었다. 대신 말이 날을 세웠고, 이념은 견고한 성벽이 되었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았지만, 다른 세상에 머물렀다. 누군가는 진보를 외쳤고, 누군가는 보수를 외쳤다. 그러나 모든 외침은 하나의 말로 수렴했다. “우리는 무조건 옳다, 너희는 무조건 틀렸다.” 소리는 커져 갔다. 그러나 끝내 서로에게는 귀를 닫았다. 누구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모두 귀가 먹었다. 그것은 마음의 내전이었다.
그런데 이제 군대가 보인다. 총이 보이고, 방아쇠가 보인다. 대통령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군 통제권이 그의 손에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계엄 선포로 그는 마음의 내전을 현실로 끌어들였다. 한 전직 앵커는 총구 앞에 섰다. 그리고 총부리를 손으로 막았다. 마음의 내전이 이제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마음의 내전에서도 사람들은 말로 상대방의 존재를 고꾸라뜨리려 했다. 그러나 손으로 만져지는 내전에서는 다르다. 총알이 발사되면 몸뚱이마저 고꾸라진다.
대통령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미 오래전에 시작한 내전에 참전한 것뿐이라고 변명할 수 없다. 소위 부정선거 같은 내전의 징후들을 없애기 위해 군대를 국회에 보낸 것이라 핑계 댈 수도 없다. 내전이 오래전에 시작되었다는 말은 맞다. 그럼에도 누가 총을 들고 거리로 나올 생각을 하겠는가. 그것은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매우 어리석고 매우 위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대통령은 무거운 법적 책임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계엄은 순식간에 끝났다. 군대는 철수했다. 그러나 내전은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을 탄핵시키고, 감옥에 보내면 내전은 끝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가? 이미 우리가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2016년과 2017년 사이의 촛불,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가능성이었다. 백만의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였다. 촛불을 들고 저항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외쳤다. 정말 바뀔 것 같았다. 박근혜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감옥에 보냈다. 와, 우리가 이런 걸 하다니, 더 위대한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가득했다. 민주주의 역사의 새로운 장이 광화문에서 열리는 것 같았다. 그때 사람들은 생각했다. 내전은 이렇게 끝나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촛불의 힘은 그저 정권 교체에 머물고 말았다. 그리고 한 정파의 장기 집권 욕망 속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촛불의 영광은 그렇게 탈취당했다. 그리고 내전은 말로, 침묵으로, 증오로 계속되었다. 내전은 왜 끝나지 않았을까? 박근혜가 감옥에 갔고, ‘선한 문재인’이 정권을 잡았는데도 말이다.
2017년 촛불이 내전을 끝내지 못한 것은 촛불의 성과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우리’ 안에 가뒀기 때문이다. 그것을 나눴어야 했다. 촛불이 대적했던 사람들, 심지어는 촛불을 대적했던 사람들과도 나눴어야 했다. 촛불을 ‘우리’ 안에만 가둬두었을 때 ‘우리’는 오만해졌다. 눈이 흐려지고, 귀가 어두워졌다. 너무나 옳다고 믿었던 촛불은 어느새 편견과 적대의 향을 피워 올렸다. ‘우리’ 안에서조차 조금의 편차도 의심했고, 배신으로 몰았다. 마음의 내전은 계속됐다.
2024년의 응원봉은 2016년의 촛불처럼 어둠을 몰아내는 빛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우리가 틀릴 수도 있고, 그들이 맞을 수도 있다’라는 역설까지 받아들이는 빛이어야 한다. 힘들어도 그래야만 내전을 끝낼 수 있다. 2024년 12월3일 밤 민중은 용감하게 계엄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닌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촛불이 진화해서 등장한 응원봉을 통해 민주주의의 힘을 다시 보여주어야 하지만, 그것이 성취해낼 것을 나눌 준비도 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광화문에 나가야 한다. 내란을 무섭게 심판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안의 오랜 내전을 끝낼 마음도 갖고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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