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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목)

"당신은 왜 스타트업을 떠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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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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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타업얼라이언스가 발간한 '스타트업 재직자의 생각'이라는 제목의 설문조사 보고서를 읽었다. 기술적이고 건조한 통계 숫자들 사이로 젊은이들의 불안과 희망이 보였다. 흥미로웠다. 마치 현대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았다.

2024년, 스타트업 재직자 2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다. 105명의 남성과 95명의 여성이 참여했다.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은 행복한가? 41.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2022년에는 49.2%가 만족했다고 했는데, 2년 만에 크게 떨어졌다. 반면 대기업 직원들의 만족도는 65%였다. 2022년 50.4%에서 꾸준히 상승해온 수치다.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양가적이다. 한편으로는 혁신과 도전, 자유로운 문화의 상징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정과 과로의 대명사다. 실제로 재직자들의 57%는 기회가 된다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으로 옮기고 싶다고 했다. 다시 스타트업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은 15.5%에 불과했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겁다. 혁신의 상징이었던 스타트업이 이제는 징검다리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말하는 불만족의 이유였다. 표면적으로는 낮은 연봉과 부족한 복리후생을 꼽았다. 당연한 답처럼 보인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다른 그림이 보였다. 직무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본인 교육비 지원과 기기 지원', 그리고 '재택근무'였다. 성장의 기회와 자율성이었다. 이것들이 없으면 만족도가 떨어졌고, 있으면 올라갔다.

식대와 간식 지원, 탄력근무제, 수평적 호칭문화도 중요했다. 다만 이것들은 있다고 해서 만족도가 특별히 오르지는 않았다. 없으면 불만이 쌓이는 정도였다. 이미 기본값이 된 것이다. 마치 스마트폰처럼. 있다고 특별히 기쁘지는 않지만, 없으면 일상이 불편해지는 것들이었다.

세대와 성별에 따른 차이도 흥미로웠다. 40대 이상은 워라밸보다 의사결정 속도와 회사의 비전을 중요하게 여겼다. 대부분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이직해온 이들이었다. 44.1%가 중소기업에서, 17.6%가 대기업에서 왔다. 관료주의에 지쳐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워라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빠른 의사결정과 명확한 비전을 원했다. 이전 직장에서 겪었던 답답함의 반작용일 것이다.

여성은 워라밸을, 남성은 동료의 역량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는 미세한 차이였다. 성별보다는 개인의 가치관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성별의 차이가 실제로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스타트업이 처한 현실도 녹록지 않았다. 61%의 재직자들은 투자 시장이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고 답했다. 그들 중 절반은 이 때문에 회사를 떠날 수도 있다고 했다. 한파가 장기화되면서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실제로 많은 스타트업들이 긴축 경영에 들어갔고, 일부는 문을 닫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희망적인 신호들이 있었다. 스타트업 재직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단순히 돈이나 안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어 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스스로 결정하고, 빠르게 움직이고 싶어 했다. 이는 스타트업의 본질적 가치와 맞닿아 있다.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First Who, Then What"이라는 말을 했다. 무엇을 할지 정하기 전에 누구와 함께 할지를 먼저 결정하라는 뜻이다. 방향을 정하기 전에 버스에 탈 사람을 고르라고 했다. 스타트업은 지금 이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대기업과 달리 스타트업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소수의 인원이 여러 역할을 맡아야 하고, 모든 구성원이 같은 비전을 향해 달려야 한다. 빠른 실행력이 생명이다. 특히 자원이 부족한 초기에는 핵심 인재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그래서 교육과 성장의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교육 지원은 직무만족도를 높이고 이직률을 낮춘다. 특히 중소기업 직원들에게서 그 효과가 두드러진다. 재택근무도 마찬가지다. 자율성을 주니 효율이 올랐고, 삶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변곡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스타트업이 더 이상 열정과 패기만으로 뛰어드는 곳이 아니라, 진지하게 경력을 설계하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교육과 성장의 기회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단순히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개인의 성장을 돕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결국 사람이다. 돈과 복지는 기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너머에는 성장과 자율이라는 더 본질적인 가치가 있다. 스타트업이 계속해서 좋은 일자리가 되려면, 좋은 사람들이 남으려면 이 두 가지를 놓쳐서는 안 된다. 투자 시장은 춥지만, 인재를 키우는 일만큼은 멈출 수 없다.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 조직이다. 하지만 그 불확실성이 개인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것. 그것이 스타트업이 잃지 말아야 할 가치일 것이다.

이제 겨울이다. 하지만 봄은 반드시 온다. 그때 꽃을 피우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른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교육과 자율로 무장한 사람들. 그들이 새로운 봄을 데려올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런 기회를 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글 : 손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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