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가는 소란을
노란 꽃을 받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거룩한 우연을 위해서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소음이 바로 들어오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지게
내 말을 믿으세요 노란 꽃을
못 보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떨리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영원히 떨리면서 빼먹은 모든 꽃잎을 믿으세요
보기 싫은 노란 꽃을
김수영(1921~1968)
시인에게 꽃은 움직이는 영원성이자, “다른 시간”인 듯하다. “꽃을 주세요”로 시작하는 이 시는 꽃을 달라고, 꽃을 받으라고, 꽃을 잊어버리라고, 꽃을 믿으라고 한다. 시인이 꽃을 받으려는 이유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뜻밖의 일을 위해서”, “아까와는 다른 시간” 즉 현재의 시간을 위해서이다. 금이 갔거나, 창백해진 꽃은 “노란 꽃”으로 바뀌고, 더 단단해진 의지로 “넓어져가는 소란”을 직시한다. 시인은 꽃을 주며 함께 “원수를 지우”고, 더는 이전의 “우리가 아닌 것”이 되어 “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 하자 말한다. “꽃의 소음”을 통과한 후에는 “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져도 된다고, “내 말을 믿으”라고, “못 보는 글자”, “떨리는 글자”들을 믿으라고, 그 모든 꽃잎을 믿으라고 한다. 저 “거룩한 우연”이 기필코 노란 꽃을 피우고야 마는 새로운 혁명의 시간을 똑바로 보라고!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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