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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 (월)

얼어붙고 곪고 쪼그라들고…과시했지만 실속 못 차린 2024 미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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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에 전시된 구정아 작가의 설치조형물. ‘강세 에스피에스티’(KANGSE SpSt)란 이름을 지닌 중성적 캐릭터의 인물상인데, 몇분 간격으로 독특한 향을 코에서 발산한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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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잔치들을 치렀다. 무엇이 남았는가.



2024년 한국 미술판의 공과는 ‘허장성세’로 요약된다. 자화자찬과 과시를 위한 전시판과 장터들이 이어졌지만, 실속은 별로 없었다.



외양은 화려했다. 서구 전시 현장과 국제미술제에 전례 없는 규모의 한국 작가들과 화상들이 몰려 큰 전시판을 잇따라 꾸린 건 올해 특징적 현상이었다. 세계 최고의 미술축제이자 미술올림픽인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기간 한국 국가관에 구정아 대표작가를 비롯해 유영국, 이성자, 이배, 이승택 등 10명 넘는 작가들이 출품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광주 비엔날레, 부산 비엔날레가 프리즈+키아프 등 국제미술장터가 열리는 9월 초 전후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펼쳐져 세계 미술계의 시선을 끌어들였다.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주요 작가들의 대형 전시도 역대급으로 펼쳐졌다. 3~9월 프랑스 파리 피노 컬렉션 전시장인 부르스 드 코메르스에서 김수자 작가가 거울로 내부를 온통 채운 특별전을 열었고, 10월엔 이불 작가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건물 외벽 정면에 사이보그 몬스터 연작과 짐승의 형체가 흘러내리는 모양의 신비스러운 조형물 신작을 설치해 상찬을 받았다. 절정은 10월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으로 꼽히는 영국 런던 주요 미술관·갤러리의 전시무대 릴레이였다. 런던현대미술관(ICA)의 정금형 전시를 신호탄으로 테이트모던 터빈(터바인)홀의 이미래 작가 개인전, 헤이워드 갤러리의 양혜규 개인전, 크롬웰 플레이스의 서용선 작가전 등이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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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창원조각비엔날레 본전시에 출품됐던 정서영 작가의 설치조형물 ‘목화밭’.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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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는 미미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개설 30주년 특별전은 좁은 공간 속에 역대 출품작의 복제본, 원작들을 뒤섞어 끼워넣는 수준이었고, 베네치아 현지에서 열린 광주 비엔날레 창립 30주년 특별전은 왜 광주 행사를 베네치아 가서 해야 하느냐는 사대주의 논란에 휩싸였다. 기대 이하의 실패작으로 수십억원대의 세금만 낭비하고 효과는 미미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배, 유영국 등 개별 화랑들이 역시 수십억원대의 비용을 들여 추진한 개별 기획전들도 가성비 있는 성과가 나왔는지 의문스러웠다.



런던으로 진출한 한국 작가들의 전시는 가디언 등 현지 유력 언론이 새롭지 않고 진부하다는 측면을 부각시키면서 이례적일 정도로 혹평을 내려 충격을 안겼다. 이른바 케이(K)아트의 높아진 위상과는 별개로 작품성과 작업 콘텐츠에 대한 성찰과 고민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을 일러준 셈이었다.



시장 측면에서도 극심한 불황의 한파가 계속됐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보고서를 보면, 올해 3분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낙찰 총액은 전년보다 26% 줄어든 237억5025만원을 기록해, 올해 매출액이 약진한 국외 주요 경매사의 성과와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지난 수년간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가을 행사로 자리 잡은 국내 최대 국제미술장터 키아프와 프리즈의 공동 장터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에 본사를 둔 프리즈 서울은 한국 컬렉터의 구매 수준을 어림잡은 다수의 국외 참여 화랑들이 중저가 작품 위주로 궤도 수정을 하고, 한국화랑협회가 함께 주최하는 키아프 아트페어 쪽은 이런 틈을 파고들어 판촉 범위를 확장하는 양상으로 전개됐으나 내용이나 매출 등에서 도드라진 성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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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자수’전이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시장에서 관객이 대작을 감상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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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짓 흥청거리는 듯했던 프리즈·키아프의 분위기는 뒤이은 미술품 거액 사기 판매 사태의 후폭풍으로 곧 꺼지고 하반기 미술시장은 심각한 신뢰 위기에 봉착했다. 보험설계사를 대거 동원해 미술에 문외한인 단골 고객들을 노린 폰지형 사기 수법이 시장 저변을 허물고 들어온 이번 사태는 미술계에 차원이 다른 충격을 안겼다.



전시 측면에서도 질적인 빈곤이 지적된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5~8월 열린 ‘한국근현대자수’전과 부산 기반 재력가들의 특급 고미술 컬렉션을 일별한 4~7월 부산박물관의 ‘수집가’전 등을 빼면 양질의 기획전은 찾기 어려웠다. 니콜라스 파티전에서 보이듯 국외 상업화랑들의 상술에 삼성가 호암미술관 등 상위 미술기관들이 휘둘리고 일부 외국 화랑은 전속 작가의 국립미술관 전시 일정을 미술관 쪽과 협의하지도 않고 발표하는 무례한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작가들의 전시와는 별개로 큐레이터들의 기획에서 눈에 띄는 진전이나 변화의 양상을 볼 수 없었던 것도 그늘을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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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자수’전이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시장에서 관객이 대작을 감상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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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행정에서는 김구림 사태로 대표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무능하고 안일한 작가 관리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연 뒤 도록의 인쇄 상태와 내용 문제로 갈등을 빚은 1960~70년대 실험미술 대가 김구림 작가는 관장을 고소했다 취하하는 극한 갈등 끝에 결국 2쇄를 다시 찍기로 합의했지만 낙심한 채 지난 10월 한국을 떠났다.



지난 2~6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뮤지엄이 한국 고미술품과 이중섭, 박수근 등의 근대미술품 위작 태작들을 전시해 파문을 일으킨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슈였다. 지난 4월 화랑협회와 유족들이 진위 문제를 질의하는 공문을 보내 국내 미술계에서 사태가 공론화됐고, 6월 말 국내 전문가들이 현지 뮤지엄까지 가서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뮤지엄 쪽은 단 한번도 공식 사과와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오만한 자세로 일관해 비판을 받았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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