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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1 (수)

“성탄절 맞아 떠난 여행인데…” 무안공항 사고 현장 ‘통곡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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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동생이 제주항공 항공기를 타고 귀국하던 한 탑승자 가족이 29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에서 울먹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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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장○○, 김○○, 정○○, 박○○…”



세밑 한파 속에 모처럼 따뜻한 남국으로 여행을 떠났던 가족의 이름이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로 불렸다. 5살부터 70대까지 탑승자 181명 대부분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방당국의 설명에, 설렘과 교차의 장소였던 공항 곳곳이 오열로 얼룩졌다.



29일 아침 9시3분께 전남 무안공항에 착륙하던 도중 충돌·폭발한 타이 방콕발 제주항공 비행기에 가족이 탑승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이들은 오전부터 다급한 심정으로 공항으로 몰려들었다. “서울에서 시속 130㎞로 달려왔다”는 가족도 있었다.







어머니 돌보던 동생…결혼 앞둔 딸





“동생이 병이 있어 몸이 안 좋고 추위를 많이 타니까 신랑이 따뜻한 쪽에서 쉬고 오자고 해서 간 여행이었어요.” 이날 오후 탑승자인 40대 중반 여동생 부부를 찾으러 온 오빠 ㄱ씨는 “탑승했다는 명단만 확인했고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확인을 못 했다”며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ㄱ씨는 “우리 4남매가 다 흩어졌는데 동생은 계속 광주에서 어머니 곁에 살며 아들 노릇 딸 노릇 혼자 다 했다. 그런 동생한테 이런 일이 생겨버렸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연결되지 못한 마지막 통화는 사무치는 후회로 남았다. “어젯밤에 전화했는데 안 받는 거예요. 이후에 ‘일이 있어서 전화를 못 받았다’고 카카오톡을 하기에, 제가 ‘부럽다, 여행 잘하고 와라’ 보냈어요. 근데 그게 마지막이… 한번 전화해볼걸.”



오후 늦게까지 사망자 신원 확인은 쉽지 않았다. 사고 발생 5시간여가 지난 오후 2시30분께가 돼서야 신원이 확인된 5명의 사망자 명단이 처음 발표됐다. 뒤이어 30분 단위로 확인된 사망자가 12명, 22명으로 더해졌다. 가족의 이름을 듣지 못한 가족은 “신원이라도 빨리 확인해달라”고 울부짖었다. “대체 어딨냐, 어디에 있느냐”며 공항 로비를 헤매기도 했다.



부산지방항공청의 가족 대상 브리핑에 동행했던 한 경찰은 “경찰 40여명을 투입해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혹시라도 잘못 알려질 경우 혼선을 빚을 수 있어 소지품, 지문 확인 등을 하고 있다”며 “주검 훼손이 심해 지문 확인이 어려운 분들은 유전자 채취 뒤 가족들과 비교 분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늦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32살 조카의 신원 확인을 기다리던 김남종씨는 “가족들이 7~8시간씩 기다리고 있다. 내년 봄 결혼을 앞둔 예쁜 딸이었는데 부모들이 지금 얼마나 아프겠냐”며 “이름이 불리는지 안 불리는지만 목만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한겨레

박아무개(22)씨가 무안제주항공참사 항공기에 탑승하고 있었던 어머니와 사고 직전 나눈 대화를 담은 메신저 화면. 박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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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패키지 여행’ 탑승자 다수





사망자 가운데는 동료, 이웃, 친구끼리 단체 여행을 떠난 경우가 적잖았다. 사고가 난 항공기에는 지난 성탄절 3박5일 패키지 여행을 떠난 이들이 다수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70대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던 ㄴ씨는 “전 직장 동료 모임에서 모은 돈으로 17명이 함께 가셨다. 성탄절이라 인사를 가려 했더니 여행 간다고 하셨다. 막내 손주를 좀 보여달라고 하셔서 동영상 보내드린 게 마지막”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70대 형의 사고 소식을 들은 김병완(68)씨는 “장흥 장평면에서 평생 사신 분인데, 그 동네에서만 5명이 함께 여행을 갔다. 동네도 비상일 것”이라며 “농사만 지은 분이다. 이제야 좀 쓰면서 즐기고 살자고 했는데 이렇게 돌아가셨다”고 했다. 64살 동생을 기다리고 있다는 형 ㄷ씨도 “동생이 친구 11명과 떠난 단체여행이었다. 아침에 뉴스를 보고 놀라서 달려왔다”며 ‘기도해달라’는 지인 메시지로 가득한 메신저 화면을 내보였다.



정확한 사망자 명단과 사고 현장 확인을 요청하기 위해 가족들이 안간힘을 쓰며 직접 나서는 모습도 이어졌다. 한 가족은 수첩을 뜯어 모인 이들의 연락처를 모으며 “저도 형님이 돌아가셨는데 나설 사람이 없다”고 울먹였다. 가족들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정리에 나서야 할 정도로 현장은 혼란스러웠다. 사망자 명단이 작은 소리로 불려 “들리지 않는다”는 아우성이 반복됐고, 정부·지자체·소방과 경찰·항공 당국 등 다양한 관계기관 가운데 소통 창구도 모호했다. 이날 공항을 찾은 정치인과 관계 기관 책임자에게 “컨트롤타워를 마련해달라”는 가족들의 호소와 통곡이 수차례 이어지고서야, 국토교통부 담당자가 소통 창구로 지정됐고 사망자 신원을 확인한 가족을 대상으로 사고 현장 확인이 이뤄졌다.



부모님 두 분이 사고 비행기에 탑승했던 대학생 박아무개(22)씨는 ”친구 분들이랑 다같이 연말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다”고 했다. 사고 직전 박씨가 부모님과 나눈 메신저 대화(사진)는 어머니가 심부름을 시키는 일상적인 내용이다. 순간 어머니가 ‘잠깐 있어’라고 말을 멈춘 뒤, ’착륙 못하는 중’ ’유언해야 하나’라고 말을 이은 뒤 대화는 멎었다. 박씨는 ”처음에 별 일이 아닌 줄 알았다. 뉴스 속보를 보고 나서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나는 형제도 없어서 외동이에요. 천애고아가 되었네요.”



사망자 신원이 조금씩 확인되며 늘어나는 과정은 이날 저녁 늦게까지 반복됐다. 이름을 제대로 듣기 위한 적막, 뒤이어 한 사람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아흑” “어떡해”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터져나오는 가족들의 울음과 참혹한 몸부림도 그치지 않았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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