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
“서울의 한 복지관에서 일했다. 연말 잔치 때 구청장과 구민 500명을 불러놓고 신입직원에게 공연을 시켰다. 기관장과 팀장들에게 ‘이런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얘기했더니 ‘예전부터 내려오던 관습을 네가 왜 바꾸려 하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전체 직원이 함께 합창하거나 즐기면서 행사를 준비할 수 있는 활동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기관장은 ‘재미없다’며 그냥 신입직원 공연을 하자고 했다.”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에 들어온 제보 내용이다. 온라인노조는 3일∼13일 전국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를 대상으로 장기자랑 갑질 제보를 받은 결과, 31건이 접수됐다고 25일 밝혔다. 전남 광양의 한 복지관은 복지관장 취임 축하공연을 시켰고, 부산의 한 복지관은 사회복지 실습생들한테 춤을 추도록 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제보는 복지관뿐 아니라 재활원이나 노인인력개발센터 등 사회복지시설 전반에 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장기자랑은 겉으로는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한 형식이나 실제 참여한 직원들은 마지못해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제보자는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워크숍에서 직원 장기자랑이 진행됐다. 자발적 참여로 진행된 행사였으나 기관에 따라 기관장이 참여를 권장하거나 (참여자가)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제보자는 “복지관에 입사하면 신입직원은 복지관뿐 아니라 기관 소속 법인 행사에서도 장기자랑을 강요받았다. ‘내가 이러려고 복지관에 들어왔나’하는 회의감이 들었으나 시키니깐 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2∼11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를 보면, 직장인의 28.5%가 연말 송년회가 예정돼 있다고 답했고, 27.3%는 “참석이 의무”라고 응답했다. 송년회와 회식 과정에서 겪은 불쾌한 경험을 묻는 말(복수응답)에는 직장인 38.9%가 음주 강요라고 답했고 노래나 춤, 개인기 등 강요(29.4%), 상사·동료의 술주정으로 인한 피해(26.3%)가 뒤를 이었다.
장종수 온라인노조 사무처장(노무사)은 “연차 어린 사회복지 종사자 모두가 참여하는 장기자랑을 거부하면 사회생활 못 하는 사람이나 부적응자로 낙인 찍히는 탓에 사회복지계에 만연한 장기자랑은 강요된 선택으로 봐야 한다”며 “장기자랑 강요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고 해당 시설장은 1000만원 이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