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디(D)홀에서 열린 ‘투란도트’ 개막 공연이 좌석을 배정받지 못한 관객들이 속출하면서 공연이 30분 남짓 지연됐다. 임석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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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등급 좌석의 가격을 100만원으로 책정하고 세계적인 성악가를 불러모아 코엑스 대형 전시장을 특설무대로 꾸민 오페라 ‘어게인 2024 투란도트’ 공연이 파행으로 치달았다. 이탈리아 연출가는 첫 공연을 앞두고 “수준이 떨어지는 투란도트를 내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결별을 선언하고 한국을 떠나버렸다. 첫 공연에서 티켓을 끊고도 좌석을 배정받지 못한 수백 명이 환불을 요구하고, 고성이 오가는 소동도 벌어졌다.
22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디(D)홀에서 열린 ‘투란도트’ 개막 공연은 애초 예정됐던 오후 7시30분이 지나도록 수백 명의 관객이 입장하지 못했다. 티켓을 예매해 좌석까지 배정받았지만, 현장에 도착해보니 자리가 없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 관객들이 많았다. 30대 여성은 “인터넷사이트에서 지(G)블럭 좌석을 구매해 현장에 왔지만, 좌석이 없더라”며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객은 “2층 좌석을 예약했는데 도착해보니 2층 객석이 통째로 없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8시가 가까워도 입장하지 못한 관객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공연장에 들어간 관객들도 주최사의 해명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박현준 예술총감독은 “6800석으로 잡아놓았던 객석을 4000석 규모로 줄이면서 낮은 등급 고객의 좌석을 높여주는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공연 관계자는 “비상계엄 사태로 취소표가 발생해 좌석을 조정했는데, 예매 사이트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며 “공연을 보지 못한 고객에겐 환불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 공연의 연출을 맡은 다비데 리버모어가 보도자료를 통해 “오페라 제작사의 일방적이고 지속된 변경으로 인해 연출 작업이 불가하다.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투란도트’를 내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결별을 선언했다. 리버모어는 지난 6월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에서 ‘투란도트’의 새 프로덕션을 연출한 바 있다. 그는 “제작사가 2003년 ‘투란도트’를 연출한 장이머우 감독의 무대 동선을 강요했다”며 “이는 아마추어 수준의 권위주의적 강요였다”고 결별 사유를 밝혔다. 리버모어는 “이번 공연은 수준이 크게 떨어졌다”며 “나의 예술적 수준이 이 공연과 관련되거나, 내 이름과 얼굴을 이용해 티켓을 판매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 도착 첫날 받기로 했던 개런티도 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어게인 2024 투란도트’ 쪽이 LED(발광 다이오드)를 활용해 ‘황금의 성’으로 구현하겠다고 발표한 오페라 ‘투란도트’ 무대 이미지. ㈜2024투란도트문화산업전문회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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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박현준 감독도 보도자료를 발표해 “한국 공연계 및 오페라계를 우습게 알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며 “한국에 오면 본인들의 유럽 및 현지 개런티의 3배를 요구하는 그들의 습성과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박 감독은 “여러 차례 2003년 상암 (월드컵경기장 야외 공연) 투란도트 버전으로 준비하기를 요구했지만 연출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연출하려고 했다”며 ”한 달간 연습을 약속했지만 단 한 시간도 참석하거나 연출 관련 업무를 하지 않고, 개런티 전액을 요구하는 비상식적 행동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길이 45m와 높이 17m의 무대에 발광다이오드(LED) 화면을 활용해 무대를 꾸민 이번 공연은 출연진도 화려한 편이다. 첫날 공연엔 테너 출신 지휘자 호세 쿠라가 지휘봉을 잡고 최근 세계 주요 오페라극장에서 인기가 높은 소프라노 아스믹 그리고리안과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가 출연했다. 안팎의 소동 탓에 30분 남짓 늦게 시작된 공연에서도 성악가들은 대체로 안정적인 가창력을 보여줬다. 투란도트 공주를 연기한 아스믹 그리고리안과 리우 역할을 맡은 줄리아나 그리고리안은 고음에서도 흔들리지 않았고, 연기력도 빼어났다. 제작사 쪽은 총 제작비를 160억~200억원으로 공개한 바 있다. 공연은 오는 31일까지 모두 10차례 진행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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