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군의날 기념 시가행진 행사에서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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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이 ‘격정의 29분 담화문’을 발표한 다음날, 여론의 평가는 ‘망상’으로 수렴됐다. 담화문 내용이 보도된 13일치 주요 종합일간지(조간) 9곳 중 8곳이 ‘망상’을 제목으로 뽑았다. 경향신문과 동아일보는 사설 제목(‘내란 부정한 윤석열 망상, ‘극우 결집’ 선동하겠다는 건가’, ‘끝없는 망상과 자기부정, 윤 직무배제 한시가 급하다’)에도 이 단어를 썼다.
그럴 만도 하다. 초현실적인 ‘12·3 내란사태’를 설명하는 데 ‘과대망상에 의한 친위 쿠데타’란 말보다 더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 윤 대통령이 발표한 비상계엄 선포 담화문과 12·12 대국민 담화문, 그리고 그가 직접 검토했다는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에서 읽을 수 있는 그의 정신세계는 이렇다.
첫째, 나는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은 반국가 세력임이 분명하다. 일거에 척결해야 한다. 둘째,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옳다. 반대하는 사람은 처단해야 한다. 셋째, 나와 내 추종 세력이 선거에서 질 리가 없다. 그럼에도 졌다면 그건 부정선거 때문이다.(물론 내가 이긴 선거는 예외다) 넷째, 나는 나라만 생각하는 애국자다. 그런데도 지지율이 낮은 이유는 좌파 세력의 가짜뉴스, 여론 조작, 허위 선동 때문이다.
더하고 뺄 것도 없이 딱 망상이다. 그를 이런 망상의 세계로 이끈 것은 도대체 뭘까. 누가 그에게 이런 왜곡된 신념 체계를 심어줬을까. 내란사태 이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듯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극우 유튜브다.
정치권에 윤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에 심취해 있다는 얘기가 돈 지는 꽤 됐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지난 6월 펴낸 회고록에서, 2022년 12월 윤 대통령에게 직접 들었다는 말을 공개했다. 한달여 전 발생한 이태원 참사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김 전 의장은 “극우 유튜버의 방송에서 나오는 음모론적인 말이 대통령의 입에서 술술 나온다는 것이 믿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유튜브는 두 얼굴을 가진 미디어 플랫폼이다. 피시나 휴대폰만 있으면 누구나 방송을 내보낼 수 있는 ‘1인 미디어’ 시대를 활짝 열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공론장 분권화에 톡톡히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개방성에서 비롯된 폐해 또한 만만찮다.
특히 심각한 건 정치·시사 채널이다. 사실상 언론의 지위를 누리면서도, 사실 검증이나 반론 청취와 같은 기초적인 저널리즘 원칙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추정과 예단, 의견이 사실로 둔갑해 ‘보도’된다. 음습한 골방에 머물러야 할 각종 음모론이 ‘뉴스’의 권위를 획득해 공론장을 교란하기도 한다. 유튜브가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불리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맞춤형 콘텐츠 제공’으로 포장된 자동 추천 알고리즘은 유튜브의 폐해를 극대화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용자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최적화한 시스템이다. 알고리즘의 늪에 빠진 이용자들은 점차 자신의 신념 체계와 맞지 않는 정보는 외면하고 ‘믿고 싶은 대로만 믿는’ 경향이 강화된다. 이른바 ‘필터 버블’ ‘확증 편향’ 현상이다.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비춰 보면, 12·3 내란사태는 이런 폐해가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된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어쩌면 윤 대통령은 집권 기간 내내 부정선거 음모론이 메아리치는 반향실(에코 체임버)에 갇혀 지내며 왜곡된 신념을 강화해왔는지도 모른다.
유튜브를 숙주 삼아 허위 조작 정보와 음모론이 독버섯처럼 퍼지는데도 기성 언론은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마냥 무시하기에는 유튜브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졌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해마다 실시하는 ‘언론수용자조사’에서 유튜브는 늘 ‘영향력 있는 언론사’ 10위 안에 든다. 이대로 둔다면 제2, 제3의 광포한 망상가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음모론에 맞설 가장 강력한 해독제는 팩트체크다. 망상을 팩트로 에워싸 골방에 가둬야 한다. 이런 일은 취재 전문성과 저널리즘 규범을 지닌 기성 언론이 응당 짊어져야 할 책무다. 이런 노력과 별개로, 사실상 언론으로 기능하는 정치·시사 유튜브 채널에 대해서는 기성 언론과 마찬가지로 진실 확인 노력을 기울이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비상식이 상식을 압도하는 황폐화된 공론장에 저널리즘이 설 자리는 없다. 언론이 제 역할을 못 하면 민주주의도 위태로워진다. 12·3 내란사태에서 새겨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이다.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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