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급격 증가… 교육 파행 우려
“수시 공석 비워 정시 마감해야”
수시 미등록자 100~200명 예상
“정원 조절 위해 긴급처방 필요”
전국 의사 대표들 “의료농단 처벌” - 22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의료 농단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서 박형욱(앞줄 맨 오른쪽) 의협 비상대책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의대증원 원점 논의’ ‘의료농단 의사처단 책임자 처벌’ 등의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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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학년도 의대 수시 모집에서 최초 합격했지만 등록하지 않은 학생 수가 많이 늘어난 가운데, 정치권과 의료계에서는 수시에서 뽑지 못한 인원을 정시로 이월하지 않는 등의 ‘긴급 처방’으로 내년도 의대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2일 종로학원이 수시 최초 합격 등록 현황을 공개하는 서울 지역 6개 대학(서울대·연세대·고려대·한양대·가톨릭대·이화여대)과 지방 4개 대학(부산대·충북대·제주대·연세대미래) 자료를 분석한 결과, 10곳 의대 수시 모집에 ‘최초 합격’하고 등록하지 않은 학생 수가 올해 249명에 달했다. 작년 162명에서 87명이 늘었다.
전국 39개 의대 신입생 모집 인원은 4610명이다. 이 중 수시 모집 인원이 3118명으로 작년보다 1100명 넘게 늘었다. 모집 인원이 늘다 보니 중복 합격자가 많아져 최초 합격 미등록자가 증가한 것이다. 종로학원 관계자는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나머지 29곳 의대까지 합하면 최초 합격 미등록 수는 1000명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각 대학은 오는 26일까지 수시 모집 추가 합격자를 발표한다. 이때까지 채우지 못한 모집 인원은 31일부터 시작되는 정시로 넘어간다. 올해 의대 수시 정원이 많이 늘어난 만큼 수시에서 정시로 이월되는 정원도 작년(33명)보다 대폭 늘어난 100~200명 정도가 될 것으로 입시 업계는 보고 있다.
정치권과 의료계에서는 정시 이월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의대 정원이 급격하게 늘어난 상황에서 올해 대부분 의대생이 집단 휴학까지 했기 때문에 내년 의대 교육 현장의 큰 혼란은 불가피하다. 이제라도 이 같은 ‘긴급 처방’을 통해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의정 갈등 해소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픽=김의균 |
의대 수시 모집에서 미충원된 인원을 정시로 이월하지 말자는 주장은 각 대학이 지난 6월 2025학년도 입시 계획을 공고한 이후 의대 증원 철회가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의료계가 내놓았던 ‘타협안’이다.
내년 의대 교육은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정상 진행되기 어렵다. 특히 내년은 수업 거부 중인 올해 1학년 3000여 명에 내년 신입생 4500여 명까지 약 7500명이 동시에 수업을 듣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교양 과목 위주로 듣는 의대 예과 1~2학년 때는 교육이 가능은 하지만, 실습이 본격화하는 본과 4년 동안은 교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많다.
의정 갈등이 장기화해 내년에도 의대생이 복귀하지 않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개원의와 봉직의, 교수, 전공의 등 전국 의사 대표자 200여 명은 22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서 결의문을 발표하며 “한 학년 3000명을 가르치던 전국 의대가 최대 7500명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내후년에는 최대 한 학년 1만2500명을 수용해야 하는 교육 불능의 사태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 여야, 의료계가 긴급 협의체를 구성해 2025년 의대 증원 문제부터 논의해야 한다”며 “수시 미등록 인원을 정시로 이월하지 않는 방안 등 가능한 긴급 처방들을 찾아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시 미충원 인원을 정시로 이월하지 않을 경우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이 얼마만큼 줄어들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매년 의대 지원자 수준과 경쟁률에 따라 정시로 이월되는 수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각 대학은 자체적으로 학생부, 논술, 수능 점수 등을 고려한 추가 합격 기준을 세워두고 오는 26일까지 추가 합격자를 선발한다. 작년에는 이월 규모가 33명에 불과했지만, 2019년에는 213명에 달했다.
서울 6개 대학의 수시 최초 합격 미등록자는 2024학년도 105명에서 2025학년도 131명으로 늘었고, 지역 대학 4곳은 57명에서 118명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추가 합격 등록이 있어도 정시 이월 규모는 작년보다 많이 늘어날 전망이다. 의료계는 향후 정시 모집에서도 각 의대가 보통 3배수를 선발하는 정시 1차 서류 합격자를 1.5~2배만 발표하고 추가 모집을 중단하면 내년 의대 모집 인원이 수백 명 줄어들 수 있다고 본다.
정치권에서도 최근 연일 이러한 의료계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가능한 범위에서 ‘미세 조정’이라도 하는 모습을 보여야 의료계와 대화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인 김영호 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국회에 출석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의료계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에 대해) 미세 조정이라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간절하게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교육계 일부에서도 정부가 이러한 타협안을 일부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특히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이 많이 늘어난 지역 국립대 등을 중심으로 수시에서 채우지 못한 인원을 정시로 이월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재량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대를 운영하는 한 지역 대학 총장은 “모집 인원 조정은 소송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사립대는 참여가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정부와 정치권이 합의해 이런 위험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나선다면 의대 정원이 많이 늘어난 국립대는 참여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난 4월에도 국립대 총장들이 의대 정원 증원분의 최대 50%까지 줄이겠다고 건의해서 전체 증원분이 2000명에서 1497명으로 줄었다. ‘이월 제한’ 등 방안을 도입해도 증원분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학 측과 첨예한 대립을 이어온 의대 교수들과 갈등을 해소하고 의대생 복귀를 설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계기는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이미 확정돼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공표된 만큼 조정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 5월 의대 증원을 반영한 2025학년도 입시 계획이 확정·발표됐고 이는 대국민 약속이자 법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바꿀 수가 없다”며 “교육 당국은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이 불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정시 이월
수시 전형을 통해 뽑지 못한 인원만큼 정시 전형으로 넘겨서 뽑는 것. 각 대학은 수시 최초 합격자 발표 후 미등록자가 생기면 지원자의 학생부, 논술, 수능 성적 등을 따져 수차례 추가 합격자를 발표한다. 그래도 뽑지 못한 인원은 정시로 넘긴다.
[표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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