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대략 36∼70% 구간을 넘어서면 성장에 부정적이라고 지적하는데, IMF 자료로 올해 1분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92.1%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추정한 2022년 주택 전세보증금 규모가 1058조3000억원인데, 이를 합하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아마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최고 수준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IMF가 추정한 부채-성장의 선순환 구간을 넘어선 지가 꽤 오래됐다. IMF가 지적하듯이 가계부채는 가계가 주택과 교육에 대한 투자를 가능케 한다. 또한 당장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한 후 향후 소득 증가를 통해 이를 상환함으로써 소비를 원활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선순환이 무제한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이 구간을 넘어서 부채가 과도하면 예기치 못한 소득 충격이나 신용 억제로 빚이 많은 가계는 원리금 상환 부담과 이에 따른 강제 상환, 신규 신용제약, 채무 불이행 등과 같은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겪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소비가 줄어 경기가 위축될 수 있다. 한편 주택 가격 하락으로 가계는 큰 자산 손실을 볼 수 있다. 이에 따른 담보가치 하락과 신용제약이 대규모 채무 불이행으로 이어져 주택 가격이 더 떨어질 수 있다. 즉 가계부채 과잉으로 실물경제는 위축되고 금융 불안정성이 증폭될 수 있다.
가계는 부채를 떠안을 때 경제 전체와 다른 가계에 미칠 이런 영향을 고려치 않으므로,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소득 여력보다 더 많은 대출을 할 수 있다. 이는 바로 경제학자 케인스가 말한 ‘구성의 오류’다. 그렇다면 저축보다 빚을 통해 집 사는 것이 어떤 경우 개인이나 가계의 이익인가?
우선 집값 상승이 근로소득보다 훨씬 커서 저축으로는 집값 오름세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경우다. 대출을 통해 집을 사고 남은 자금을 주식과 같은 금융 투자에 활용하면 자산 다각화와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집세가 대출 원리금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하면 원리금은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다. 주택 구입 시 정부는 각종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 주택 가격 상승률이 주담대 금리보다 높다면 대출을 ‘레버리지’로 활용한 자산 증식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고정금리대출은 시간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대출금의 실질 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 헤징 효과가 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저금리 상황에서 대출을 활용해 집을 사는 것은 가계나 개인에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이런 개인행동이 꼭 합리적이지만은 않다.
경제 전반에 과도한 가계 차입이 금융 시스템에 부과하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내부화하는 수단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과 같은 거시건전성 정책이 많은 국가에서 활용되며, 가계부채 관리에 효과적인 걸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IMF가 추정한 부채-성장 선순환 구간을 훨씬 넘었음에도 가계부채의 질이 양호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정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도입도 갑자기 연기한 바 있다. 또한 전세 대출이나 보증금은 여전히 정책의 사각지대다. 이러한 임기응변적이고 느슨한 제도 운용이 바람직한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에 따른 지정학적 불확실성 및 중국의 과잉생산에 따른 주력 기간산업의 구조조정 또는 자산 가격의 조정으로 중산층에서 예기치 않은 소득 충격이 발생하면, 양호한 가계부채의 질도 한순간에 돌변할 수 있다. 이런 시기에는 회복력을 염두에 둔 ‘위험관리’가 최우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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