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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 (일)

한국경제에 날아온 ‘계엄 청구서’…짙어지는 저성장 ‘먹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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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상권·산업현장, 계엄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 불가피

탄핵정국 혼란, 여·야·정 협의체 구성해 경제전이 줄여야

경향신문

서울 한 음식점에 붙은 송년 예약 안내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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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지난 12월 10일 밤 9시쯤 찾은 서울시 영등포 ‘먹자골목’은 한산했다. ‘해피아워 서비스 개시’, ‘연회석룸 완비’, ‘단체석 할인’ 등의 입간판과 크리스마스트리만 즐비했다. 홀에 손님이 없는 일부 점포는 벌써 문 닫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점주 A씨(65)는 “계엄 사태 이후 지난주 주말을 기점으로 저녁 매출이 30%가량 빠졌다”며 “연말 대목을 맞아 단기 아르바이트 직원도 미리 뽑았는데, 단체예약은 대부분 취소됐다. 코로나19 때처럼 사람들이 지갑을 닫을까 봐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상공인 10명 중 9명가량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매출이 줄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12월 10일부터 사흘간 전국 소상공인 16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88.4%가 지난 12월 3일 계엄 사태 후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이들 중 36%는 매출이 50% 이상 급감했다. 연합회는 “예약 취소와 소비 위축으로 소상공인이 송년 특수 실종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매출 감소가 현실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행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주요국들이 한국을 여행 위험국으로 지정한 후 정부가 여행업계와 상황반을 구성해 ‘한국 관광은 정상’이라고 알리고 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업계 관계자 B씨는 “외신이 국내 상황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하면서, 한국 정치 상황을 잘 모르는 국가들은 내전이 일어난 위험한 곳인 줄 알고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구글이 지난 12월 11일 발표한 ‘검색어로 보는 2024년’ 리스트에 따르면 ‘계엄령’이란 단어가 국내 구글 종합 검색어 순위 2위에 올랐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약 1주일 만이다. B씨는 “기업·공공 행사를 비롯해 스키·눈꽃축제 등 겨울 여행상품은 대부분 취소되고 있다”며 “내년 3월 이후 신규 모객에 대한 문의마저 끊겨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계엄령, 구글 올해의 검색어로 등극

방산업계는 수출 계약에 빨간불이 켜졌다. 차세대 한국형 구축함(KDDX) 사업 입찰이 12월에서 내년으로 미뤄질 전망이다. 방위사업추진위원회가 올해 사업수행업체를 선정할 예정이었는데 위원장인 국방부 장관이 공석이라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주요 기업들은 내년도 투자계획을 세우지 못한 채 긴축경영에 돌입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청구서’가 골목상권은 물론 산업현장 곳곳으로 날아들고 있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정부가 투입한 수천억원대의 자금과 한류 이미지 추락 등 보이지 않는 영향까지 고려하면 한국 경제가 치르는 대가가 적지 않을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계엄 사태에 따른 경제 여파가 장기적으로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지난 12월 11일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해외에서 투자를 꺼리는 부문이 있겠지만, 영향이 제한적이고 외환위기 같은 경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며 “과거 비슷한 탄핵 상황에서도 경제 부문은 큰 흔들림이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해외에서는 이번 탄핵 정국을 둘러싼 경제·외교 환경이 과거와 달라 성장률을 위협하는 하방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지난 12월 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과거 정치적 혼란(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례에서는 중국 경기 호황(2004년)과 반도체 사이클의 강한 상승세(2016년)에 따른 외부 순풍에 힘입어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2025년은 중국 경기 둔화와 미국 무역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외부 역풍에 직면해 있다. 계엄과 탄핵 정국 등 정치적 불안정성으로 인해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하방 리스크가 커졌다”고 짚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을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 킬러’라고 칭했다. 포브스는 “한국이 지난 27년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개발도상국의 부정적인 사례로 남지 않기 위해 노력한 성과가 무너졌다”며 “(계엄은) 한국을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10년으로 몰고 갈 가능성을 높인다. 그 대가는 한국의 5100만 국민이 오랜 시간에 걸쳐 할부로 치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민간연구소인 현대경제연구원도 지난 12월 8일 내년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1.7%로 제시했다. 2% 안팎으로 추정되는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수준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계엄 파문 이후 국내외 주요 기관 가운데 처음 성장률 예상치를 제시했는데 계엄에 따른 향후 불확실성은 반영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달 한국은행도 저성장 고착화 우려로 내년과 내후년 GDP 성장률 전망치를 1.9%와 1.8%로 내렸는데, 하향 요인이 추가로 발생한 것이다. 2% 아래로 성장률이 떨어진 경우는 1956년(0.6%), 1980년(-1.6%), 1998년(-5.1%·외환위기), 2009년(0.8%·금융위기), 2020년(-0.7%·코로나19), 지난해(1.4%) 등 총 6차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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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2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39.61포인트(1.62%) 오른 2482.12에 코스닥은 7.43포인트(1.10%) 오른 683.35에 장을 마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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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는 국회의 탄핵 표결을 주시하며 계엄 사태로 받은 충격을 회복하고 있다. 탄핵안 투표가 한차례 불성립되고 열린 지난 12월 9일 코스피는 2.8%, 코스닥은 5.2% 급락했다. 계엄 선포 이튿날인 12월 4일 이후로 4거래일간 시가총액 144조원이 증발했다. 이후 탄핵정국 불안 속 금융투자소득세가 폐지되고, 국민연금 등의 기관이 매수로 지수를 떠받치면서 상승폭을 이어갔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현재 (탄핵) 정국에 따른 위기가 금융 시스템과 경제로 번지지 않는 상황에서 낙폭 과대 인식에 따른 저가 매수세 유입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원·달러 환율은 1430원대에 머물며 계엄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환율은 계엄령 선포 이후 30원 가까이 올랐다. 최악의 경우 1500원대 환율 시대가 올 수 있다는 불안감마저 나온다. 환율이 저항선을 뚫고 1500원대로 치달으면 외환 당국이 방어를 하면서 외환보유액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 원·달러 환율 1500원대 수준은 외환위기(1997년)와 금융위기(2008년) 외에는 겪어본 적이 없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154억달러로 세계 9위 규모지만, 외국인 자금이 대량으로 빠져나가면 위기로 이어질 수 있어 당국과 시장 모두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재 당국이 환율 방어를 위해 얼마나 외화를 소진하는지 알 수 없지만, 시장에서는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4000억달러 밑으로 떨어지는 건 시간 문제로 보고 있다.

정치 분리해 국가 경쟁력 훼손 막아야

문제는 앞으로다. 대통령 탄핵 소추와 상관없이 한국 경제의 리더십이 복원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탄핵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이른바 ‘데드덕(Dead Duck·레임덕보다 극심한 권력 공백)’ 수렁에 빠진 국내 경제 체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되면 윤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고 국정은 헌법에 따라 한덕수 국무총리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하지만 한 총리는 더불어민주당 등이 내란죄 혐의로 고발된 데다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을 통보해 향후 거취가 불투명하다. 또 윤 대통령의 즉시 하야를 주장하는 정치권과 시민들의 목소리가 강해 정국 혼란은 상당 기간 지속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절차를 앞두고 국론 분열이 심화할 수도 있다. 금융시장에는 모두 악재다.

시장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탄핵정국으로 인한 혼란을 경제 위기로 확산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정치 리스크가 경제를 짓누르는 정국이 길어져 국가 전체의 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당부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앞으로는 이에 따른 리스크를 얼마나 빨리 최소화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우선 내년 1월 출범하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비해 여·야·정이 협의체를 구성해 적극 협상에 나서야 한다. 일방적으로 손해를 입지 않도록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를 믿을 수 있게 협상을 하는데 여야가 보증을 서주며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적인 경기부양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내년 국내 경제는 잠재성장률을 밑돌 정도로 성장세가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통화·재정 정책을 확장적으로 전환하는 등 성장 친화적인 정책 기조를 강화하고 단기 경기부양책 도입으로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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