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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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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천박한 지성, 살기 가득한 태도, 난폭한 언어로 민주주의를 모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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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2.12쿠데타 45돌이 되는 지난 12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통해, 3일 비상계엄 선포는 “입법 폭거를 일삼고 오로지 방탄에만 혈안되어 있는 거대 야당의 의회 독재에 맞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지키려 했던 것”이라며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게 있느냐.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의 병력을 잠시 투입한 게 폭동이냐”며 “국회에 군 병력을 투입한 건 국회를 해산하거나 마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엄 선포 방송을 본 국회 관계자와 시민들이 대거 몰릴 것을 대비한 ‘질서 유지용’이었다”는 궤변을 쏟아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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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12일 친위쿠데타에 실패한 대통령의 네번째 담화가 방송됐다. 역사상 가장 짧은 친위쿠데타의 주역은 여전히 당당하게 국회와 야당에 헌정 질서 파괴의 책임을 떠넘겼다. 절대권력의 독재자를 꿈꿨던 대통령은 역사상 최악의 평판을 놓고 역대 독재자들과 순위를 다투게 될 것이다.



1979년 12월12일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는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로 이어지며 역사상 가장 긴 쿠데타로 기록됐다. 그 결과는 광주의 대참극으로 이어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피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국은 독재자들이 남긴 정치적 폐허 위에서 무명 시민들의 분투로 민주주의의 역사를 써왔다.



정부 수립 이후 우리는 이승만 12년, 박정희 18년, 전두환 8년 등 거의 40년간 독재자들의 폭정에 맞서 싸워야 했다. 철옹성 같던 그 절대권력은 결국엔 학생들과 시민들의 분노에 얇은 유리그릇처럼 산산조각 났다. 이승만은 4·19로, 박정희는 부마항쟁으로, 전두환은 6·10항쟁으로 붕괴됐다. 모든 것을 품어주는 대자연도 어느 한계에 다다르면 자비가 없듯이, 민심이 곧 천심임을 증명했다.



우리가 제도적 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에 합의한 것은 1987년 헌법에 도달해서였다. 1987년 6·10항쟁으로 헌법이 제정된 이래 권력 획득의 유일한 제도적 길은 선거뿐이며, 이제 우익 군사쿠데타나 좌익 폭력혁명이 더는 우리 역사에서 허용되지 않을 듯했다. 투·개표 절차의 형식적 공정성이 완성된 것도 1987년이었다. 그러나 2024년 오늘,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은 제도적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한국 현대사를 1979년 이전으로 되돌리려 했다.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감춰졌던 진실과 숨겨졌던 진심들이 여지없이 분출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이 충격과 공포, 분노와 격정으로 온밤을 지새우고 있다. 위기의 순간 누가 이 나라의 주인인지가 명백히 드러났다. 비상계엄 사태에 재빠르게 대처한 국회의장과 의원들, 무명 시민과 의원 보좌관들의 분투로 가까스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켰다. 헌정을 파괴하고, 국회를 해산하고, 사법부를 장악하고, 정치인들을 체포하고, 언론과 출판을 통제하고, 국민을 체포·구금해서 종북좌익 세력으로 척결하겠다던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가 실행됐다면, 미증유의 대참극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12월7일 탄핵안이 상정되자 여당 의원들은 “질서 있는 퇴진”, “여당과 대통령은 운명 공동체”임을 주장하며 반대했다. 체포 대상이었던 여당 대표는 대통령의 2선 퇴진을 요구했다.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을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이 무력을 동원해 공격한 국회와 야당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사과나 반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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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시민들이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 모여 질서 정연하게 헌법에 따른 탄핵을 요구했지만, 여당 의원들은 김건희 특검법 표결에 참석한 뒤 대통령 탄핵 표결에 집단 퇴장으로 답했다. 우리 모두 핏발 선 눈으로 이를 지켜보았다.



그다음 벌어진 일은 더욱 경악할 만했다. 12월8일 여당 대표와 비상계엄의 조역이던 국무총리가 여당 당사에 나타나 대통령은 2선 후퇴하고, 국무총리가 책임지고 여당 대표와 협의해서 국정을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치가 1979년을 뛰어넘어 아예 봉건왕조로 복귀하려는 순간이었다. 권력이 왕가의 사적 소유물처럼 대통령에게서 황태자로 이양되는 대관식이었다. 그러나 상왕 대통령은 얼마 가지 않아 약속한 바를 지킬 생각이 없다며, 끝까지 투쟁 의지를 밝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군대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대통령은 열병식과 군사 퍼레이드를 즐겼고, 역대 독재자들을 찬양했다. 일제강점 36년, 미군정 3년, 독재 정부 38년을 겪은 한국 사회는 강한 지도자, 강한 국가, 강한 독재 정부의 유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속에서 정부를 수립하고, 전쟁을 이겨내고, 경제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식민지에서 후진국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에 이르는 동안 앞서고 뒤따른 여러 세대가 가지는 자기 시대와 세대에 대한 인식과 반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독재자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자신만은 초월적인 존재다. 현실 정치, 정파, 계급, 계층으로부터 자유롭고 오로지 국가와 민족의 발전과 안위만을 생각한다. 반면 정치와 정치인은 혐오와 낭비의 원천이다. 국가 발전을 위해 고비용 저효율의 정당정치와 의회 민주주의는 규제되고 청산돼야 한다. 나는 언제든 은퇴해 편안한 여생을 누리고 싶지만, 국가의 미래를 맡길 청렴하고 자격 있는 후계자나 정치인이 없다. 나는 자유 헌정 질서, 자유 대한민국, 자유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그 자유가 어떤 것인지는 내가 결정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구 집권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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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 촉구’ 경희학원 구성원 평화행진이 열린 12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청운관 들머리에서 경희대학교·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연구자·학생들이 2차 시국선언을 마치고 청량리역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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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미래와 안위를 외롭게 걱정하던 대통령은 친위쿠데타를 시도했고, 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총선이 선거 부정과 북한 해킹의 결과임을 홀로 걱정한 끝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습격했다. 독재자를 숭배하고 독재자를 망상한 결과였다. 헌법과 법률, 합리적 상식과 절차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천박한 지성, 살기 가득한 태도, 난폭한 언어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될까 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붕괴의 경험을 우려해서, 그의 친위쿠데타를 옹호하고 정권을 넘겨줄 수 없다며 탄핵에 반대하는 여당도 그에 못지않다. 독재자들이 걱정하는 혐오와 낭비의 원천인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우리 당” 국민의힘 당사에 이승만과 박정희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이승만의 자유당과 박정희의 공화당은 한국 현대사에서 완벽하게 공중분해되어 사라졌다. 누구도 그 후예라고 자처하는 이가 없으며, 누구도 그 유산을 기억하지 않는다. 지금 대통령과 여당이 서 있는 위치가 바로 그곳임을 역사는 증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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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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