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열린 컴업2024 '퓨처토크' 세션 패널들. (왼쪽부터) 구태언 변호사 법무법인 린 TMT그룹 총괄, 김종석 한국뉴욕주립대학교 교수(전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장), 홍재의 티타임즈 기자(모더레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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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생각한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혁신을 두려워하는 걸까, 아니면 변화 그 자체를 두려워하는 걸까. 12일 컴업2024 행사장에서 만난 두 전문가의 대화는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했다. 우리는 어쩌면 신뢰의 부재를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은행이 내년과 내후년 국내 경제성장률을 1%대로 예측했다. 1%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이 행사장을 짓눌렀다. 구태언 변호사는 이를 "사실상의 역성장"이라고 표현했다. 혁신 기업을 제때 키워내지 못한 대가다. 마치 씨앗을 뿌릴 때를 놓치고 수확의 계절만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시대에 맞는 시장을 열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가 바로 이 1%대 성장률이다.
"관료 조직의 DNA가 문제입니다." 구태언 변호사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는 우리나라 규제 시스템의 본질을 '막는 규제'라고 표현했다. 행정부가 우위에 서서 소수의 관료들이 규제의 도입을 결정하는 구조. 반면 선진국들은 어떠한가. 새로운 시도가 나타나면 우선 지켜보고, 문제가 생길 때만 핀셋 규제를 하는 방식이다. 혁신을 우선하고 규제는 최소화하는 이런 개방형 시스템을 가진 나라들이, 결국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김종석 전 규제개혁위원장의 2년간의 경험은 이 불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교육 당국은 학교 재단이 다 불안한 거고, 교통 당국은 운수 업계가 다 불안한 거고, 금융 당국은 은행이 다 불안하니까 선제적으로 원칙적으로 안 된다고 하는 문화가 형성된 거죠." 그의 말에는 관료사회의 깊은 한숨이 배어있었다. 1990년대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시작된 규제 개혁의 긴 여정이, 왜 아직도 제자리걸음인지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흔히 규제를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쓴 보약처럼. 하지만 독이 든 보약은 어떨까?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는 독이 든 보약과 다를 바 없다. 리걸테크 스타트업 로톡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서야 겨우 자신들의 서비스가 불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5년. 디지털 시대에 5년이란 얼마나 긴 시간인가. 그 사이 해외의 리걸테크는 성장했고, 이제는 AI 법률 서비스라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또다시 리걸 AI가 변호사법을 위반했다며 중단되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미국의 테슬라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테슬라가 완전 자율주행 시스템(FSD)을 개발할 때, 미국 정부는 '사업을 하면 안 된다'는 식의 규제를 두지 않았다. 대신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꾸준히 자료를 요구하고 사고 차량을 분석했다. 결정적인 위험이 발견되지 않는 한, 혁신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철학이었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새로운 시도는 대부분 "안 된다"로 시작한다. 원격의료는 여전히 금지되어 있고, 타다는 법의 굴레에 갇혔으며, 공유 모빌리티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만 10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는데, 우리는 여전히 20세기의 규제에 발목이 잡혀있다.
구태언 변호사는 중세 시대의 길드를 언급했다. 길드가 산업혁명을 막았듯이, 오늘날의 규제는 새로운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어떻게 했는가? 길드의 면허권을 박탈하고 자유 경쟁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강대국이 되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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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책은 무엇일까? 김종석 전 위원장은 '규제의 품질 관리'를 제시했다. "규제를 없애고 줄이자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불량 규제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과학과 데이터, 증거에 기반한 대화와 타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더 이상 강압적인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년간 규제개혁위원장으로서 가장 어려웠던 건 기존에 이익을 보장받아온 생태계 근간을 흔드는 작업이다 보니 저항이 심했다"는 그의 고백은, 규제 개혁의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구태언 변호사는 더 과감한 제안을 했다. 지방분권형 규제 개혁이다. "우리나라 228개 시군구가 규제 권한을 직접 갖게 되면 228개의 경쟁 시장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처럼 도시나 주 단위로 규제 권한을 나누자는 것이다. 우버를 처음 허용한 것도 샌프란시스코 시장이었고, 완전 자율주행이 처음 허용된 것도 개별 도시들이었다. 우리나라의 시군구에 이런 권한을 준다면 어떨까? 창원시는 타다를, 해남군은 원격의료를, 청양군은 공유숙박을 허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스타트업들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정부의 느린 대응을 극복하고 빠른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70년대, 80년대 대기업 중심의 성장 모델은 한계가 명확하다." 김종석 전 위원장의 말이다. 더 이상 과거의 성공 방정식은 통하지 않는다. 자동차, 조선, 철강 중심의 성장 전략은 이미 한계 생산성에 도달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이제 얼마나 많은 기술과 좋은 기업들이 탄생하느냐에 달려있다. 벤처 창업, 신기술 혁신만이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행사장 청중들은 대부분 규제 완화에 찬성하는 야광봉을 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매일 규제라는 벽에 부딪히며 살아가는 스타트업 관계자들이니까.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벽을 허물 것인가다. 김 전 위원장의 말처럼, 이제는 원칙적 금지에서 원칙적 허용으로, 사전 규제에서 사후 관리로 규제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다.
시계는 22세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규제는 여전히 20세기에 멈춰 있다. 1%대 성장률이라는 절벽 앞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여전히 불신의 시대를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혁신과 신뢰의 시대로 나아갈 것인가. 그 선택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글 : 손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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