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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목)

경주 월지 ‘천년 침묵’ 풀리나…한글 새긴 16세기 백자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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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월지 프로젝트' 첫 성과 공개

반세기 전 출토 자기파편서 '묵서' 다량 확인

"신라 궁궐 연못이던 월지서 용왕제사 지속"

추가 연구 통해 월지 성격 변화 밝혀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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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산디'명 묵서가 쓰인 16세기 백자 파편. 1975~76년 경주 월지(옛 안압지) 출토품 중 하나다.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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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표면에 시간의 침식을 드러내는 백자 파편. 유약이 칠해지지 않아 황토 빛 그대로인 바닥 부위에 ‘산디(혹은 산미)’라는 한글이 뚜렷하다. 이 자기는 경북 경주시 인왕동의 월지(月池·옛 안압지)에 파묻혀 있다 1970년대 발굴됐다. 함께 출토된 신라 유물 수만점에 밀려 그간 주목받지 못하고 수장고에 잠들어 있었다. 반세기 만에 이를 재조명한 연구 결과 ‘산디’가 16세기경 자기를 제작한 도공의 이름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를 비롯해 고려·조선 자기 파편 8200여점이 월지에서 발굴된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1일 “월지에서 출토된 16세기 백자에서 다양한 묵서(墨書·먹으로 쓴 글씨)가 확인됐고, 이를 통해 통일신라 이후 월지의 역사적 성격 변화를 밝힐 수 있게 됐다”고 발표했다. 지난해부터 10년 계획으로 추진 중인 ‘월지 프로젝트’의 첫 성과다. 박물관은 지난 9일 현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산디’ 백자편을 비롯한 수십점의 조선 자기 유물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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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과 월지(연못 전경). 사진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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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과 월지 전경. 사진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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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지는 삼국 통일 후 신라 문무왕 14년(674)무렵 월성(신라의 궁성) 외곽에 만든 연못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곳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한다. ‘임해전’이라는 전각이 있어 나라의 경사 때 연회를 베풀거나 사신 접대를 했다. 경복궁의 경회루 같은 역할이다. 신라 멸망 후 관련 기록이 한동안 없다가 조선시대 들어 경주의 명승지로 회자됐다. ‘안압지(雁鴨池·기러기와 오리가 노니는 연못)’라는 이름은 조선 중종 때인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처음 등장했다. 사적 지정은 1963년, 신라시대 명칭인 ‘월지’로 공식 회귀한 것은 2011년이다. 요즘은 야간 관광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이번에 재조명된 조선 자기 유물은 1975~76년 월지 발굴 때 나온 7만여점(당시엔 3만3000여점으로 집계)의 일부다. 당시 연못 준설 공사 중에 쏟아져 나온 유물의 상당수는 신라 와전(기와·벽돌)이었다. 이밖에 금속 및 칠공예품, 불교미술품, 목간(木簡·글을 적은 나무조각) 등 통일신라기 일상 유물이 다채로웠다. 이 때문에 함께 나온 청자·백자 파편 수천점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월지 프로젝트’가 가동되면서 고려기 200여점 및 조선기 8000여점이 새롭게 분류·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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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龍王)'명 묵서가 쓰인 백자 파편들. 1975~76년 경주 월지(옛 안압지) 출토품 중 일부다.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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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조선 자기편 가운데 130여 점은 유약을 바르지 않은 굽(그릇의 바닥 받침 부분) 등에서 다양한 묵서가 확인됐다. 그 중 눈여겨 볼 게 ‘용왕(龍王)’이라는 한자다. 이날 공개된 파편 곳곳에서 ‘용왕’ 혹은 ‘용’이나 ‘왕’이 확인됐다. 앞서 월지에서 출토된 신라 토기에 ‘신심용왕(辛審龍王)’이란 글씨가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문구는 월지를 조성한 문무왕이 사후에 용왕이 돼 신라를 지키겠다고 한 유언과 관련돼 용왕제사 관점에서 해석돼 왔다.

이현태 학예연구사는 “삼국사기에 따르면 월지를 관장한 동궁관(東宮官) 휘하에 용왕전(龍王典)이 있었고, 그간 ‘신심용왕 토기’는 용왕제와 관련된 제기(祭器)로 여겨져왔다”면서 “16세기 자기에 쓰인 용왕이란 글씨는 신라 멸망 후에도 월지에서 용왕제가 지속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수천점의 자기 파편이 월지에 묻힌 것은 조선시대 제사 후 사용된 제기를 깨뜨리는 풍습과 연관된다는 분석이다. 이 학예사는 “세월이 흐르면서 물을 관장하는 용왕을 달래는 기우제로서 지속됐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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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龍王)'명 묵서가 쓰인 16세기 백자 세부. 1975~76년 경주 월지(옛 안압지) 출토품 중 하나다.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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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은 지난 9일 경주 월지 출토품을 재조사하는 '월지 프로젝트'의 첫 성과로 한글 및 한문 묵서가 포함된 16세기 백자 파편들을 공개했다. 경주=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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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일대에서 발굴된 조선 전기 자기 중 처음으로 한글 묵서가 확인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공개된 유물엔 ‘제쥬’ ‘산디’ 등 2점이 포함됐다. 이 학예사는 “자문 교수진(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명예교수, 이수훈 부산대 사학과 교수, 하시모토 시게루 경북대 인문학술원 HK연구교수)에 따르면 제쥬는 제사의 주재자를 뜻하는 제주(祭主)로 보인다”고 했다. 제주용 그릇을 이렇게 분류했다는 의미다.

반면 ‘산디’는 자기를 제작한 도공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고전 한글 전문가인 백두현 경북대 명예교수는 기자와 통화에서 “세종 때 도자기 품질을 위해 장인 혹은 제작처의 이름을 명시하도록 했고, 훈민정음 창제(1443년) 후 도공이 스스로 한글 이름을 써 넣은 사례가 더러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산디’ 자기가 용왕제와 관련됐는지는 미지수다.

이밖에 조선시대 경주부 기계현(오늘날 포항시 기계면 일대)의 가마였던 ‘기계요(杞溪窯)’ 관련 묵서도 확인됐다. 당시 기계요에서 생산된 자기가 경주 일대까지 쓰인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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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간(內干)'이 새겨진 띠쇠(추정) 장식. 1975~76년 경주 월지(옛 안압지) 출토품 중 하나다.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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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간(內干)'이 새겨진 띠쇠(추정) 장식의 X선 사진. 1975~76년 경주 월지(옛 안압지) 출토품 중 하나다.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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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신라 금동판에서는 ‘의일사지(義壹舍知)’라는 명문이 확인됐다. ‘사지’는 신라의 17관등 가운데 13관등이며 ‘의일’은 동궁과 월지의 창건·중수 공사에 관여한 관리의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금속 장식에선 ‘내간(內干)’이란 글씨가 나왔는데, 통일신라 왕실과 궁궐 사무를 관장한 관원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성과는 2010년대 들어 활발해진 엑스레이·적외선 촬영 등 첨단기술 활용에 힘입었다.

함순섭 경주박물관장은 “월지가 신라 멸망 후엔 폐허로 있다가 일제강점기 때 일대를 개발하면서 새롭게 주목된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이번 조사 성과를 통해 조선 전기에도 월지에서 용왕제가 행해지는 등 꾸준히 활용된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월성 및 월지의 역사적 변화가 규명될 것이란 기대도 내비쳤다.

박물관 측은 ‘월지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출토품을 꾸준히 조사·연구함으로써 내년에 재개관할 박물관 내 월지관 전시에 반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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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과 월지(제3건물). 사진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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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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