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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목)

[박석무의 실학산책] 오늘에 생각해 보는 맹자의 ‘방벌’과 다산의 ‘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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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우석대 석좌교수


동양사회는 고대부터 인의(人義)를 숭상하던 세상이었다. 그래서 지도자는 인의의 정치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라의 주인인 백성들이 일어나 지도자를 쫓아내거나 쳐부수는 수밖에 없었다. 맹자의 방벌론(放伐論)은 그런 정치철학에 근본을 둔 민본사상이었다. 그래서 탕왕(湯王, 은나라 초대왕)과 무왕(武王, 주나라 초대왕)이 걸(桀, 하나라 폭군)과 주(紂, 은나라 폭군)를 방벌(폭군을 쫓아냄)했던 것을 정당한 주권(主權)의 행사로 여겼던 맹자를 공자에 버금가는 아성(亞聖)으로 여기는 이유였다.



지도자는 인의의 정치를 해야

맹자의 철학 더 발전시킨 다산

천자도 민중 협의로 교체 가능

백성 무시 집권자 말로는 비참

중앙일보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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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뒤에 태어나 조선에서 살았던 다산 정약용은 맹자의 방벌론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이를 고대나 중세를 뛰어넘는 정치철학으로 발전시켰다. 탕이나 무왕 같은 성인들만이 아닌 일반 백성들, 곧 민중(民衆)들이 추대하여 임금을 만들어주지만, 임금이 인의의 정치를 하지 못하면 곧바로 민중들이 들고일어나 임금의 자리에서 하야시킬 수 있다는 민중론을 주장하였다. 절대 군주국가의 신하로 있던 사람이 그런 주장을 펼칠 수 있었음은 다산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정확한 날짜야 알 수 없지만 18세기 말의 글이라고 하니 역시 대단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절대군주 시대의 혁신적 주장

다산의 ‘탕론(湯論)’을 읽어보자. “대저 천자(天子:임금)의 지위는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인가. 하늘에서 떨어져 천자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땅에서 솟아나 천자가 되는 것인가. 마을 사람들이 추대하여 이장(里長)이 되듯이 거슬러 올라가 (…) 제후(諸侯)들이 추대하여 천자가 되는 것이니, 천자라는 사람은 민중들이 추대해서 성립되었다(衆推之而成者也).”

무리(衆), 즉 민중들이 추대해서 천자의 지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무릇 민중들이 추대해서 이룩된 천자의 지위이니 또한 민중들이 추대해주지 않으면 이룩될 수가 없다. 이는 마치 마을 사람들이 협의하여 잘못하는 이장을 바꾸는 것처럼 천자도 민중들이 협의하여 바꿔버릴 수 있다”라고 말하여 민중들이 추대하지 않으면 자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 천자의 지위라는 혁신적인 주장을 했다.

200년 전의 다산 주장은 녹두 전봉준 장군의 동학혁명으로 현실화하려던 시도가 외세에 의해서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맹자와 다산의 민본 및 민중론은 실현의 단계에 이르렀고, 마침내 1960년 4·19혁명에 의해서 민중들이 힘으로 대통령을 추방하는 역사적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수많은 민중의 항쟁으로 독재자를 추방하였던 피어린 투쟁으로 5·18과 6·10 항쟁의 위업으로 직선제 개헌을 이뤄내 본격적인 민주국가로의 길을 찾았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무력화하는 반동세력의 힘은 작지 않아 민주주의가 한없이 후퇴하자, 우리 국민은 끝내 촛불 혁명이라는 위대한 투쟁을 통해 대통령을 파면하는 민중의 힘을 보여주고 말았다. 민중이 추대해주지 않는 지도자는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다산의 정치철학이 본격적으로 실현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국민 무시하다 결국 극단 상황까지

오늘 우리는 또 불행한 세상을 만나 인의(人義)의 정치를 하지 못하는 지도자를 만나 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하는 국민적 고민에 빠져 있다. 공정과 상식의 정치를 하겠다고 그처럼 굳게 약속하던 지도자여서 대통령으로 추대했더니, 대통령이 되던 날부터 임기 절반을 넘도록 너무도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인 정치만 하고 있다. 이제는 겨우 20%의 국민을 제외한 74%의 민중들이 자리에서 내려오기를 바라게 되었다. 민중들이 추대해주면 자리를 지킬 수 있으나, 민중들이 추대해주지 않으면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다산의 주장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수 없는 지도자를 겪어보았다.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 독재에 항의하던 백성들을 총칼로 억압했으나 끝내는 제 발로 하야를 선언하고 권좌에서 물러난 대통령, 물러나라고 그렇게 세차게 주장하던 백성들의 뜻을 어기고 끝까지 버티다가 부하의 총에 시해된 대통령이 있었는가 하면,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고 쿠데타로 등극한 독재자는 끝내 내란죄로 감옥에 갇히는 불행을 당하기도 했다. 가장 가까이는 국정 농단과 부정·비리로 분노한 백성들의 촛불에 의해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파면당한 대통령도 있었다. 백성들의 뜻을 따르지 않다가 백성들의 눈밖에 벗어난 집권자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최근 우리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비상계엄령 사태 이후에는 지도자는 내란죄의 범죄자라는 국민들의 외침이 울려 퍼지면서 ‘체포’하자는 주장까지 대세를 이루기에 이르렀다. 소박한 국민들의 외침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이제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고 말았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언론은 ‘내란죄’의 심판대에 올랐다면서 하야냐 탄핵이냐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나도 이제는 선택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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