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을 만드는 로봇의 모습을 그려 달라는 요청에 AI가 그린 그림. DALL·E |
유튜브 등 대형 플랫폼들이 생성형 인공지능(AI) 도입을 본격화하면서 크리에이터 생태계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AI라는 도구를 잘 활용하면 누구나 '킬러 지식재산권(IP)'을 생산할 수 있고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촬영한 것처럼 보이는 화면부터 컴퓨터그래픽(CG), 애니메이션처럼 보이는 영상을 만들기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몇 문장을 입력하는 것이 전부다.
생성형 AI는 사용자와 자연어로 소통하며 완전히 새로운 데이터를 생성할 수 있는 AI를 의미한다. 최근엔 영상 분야에서의 AI 접목이 눈에 띈다. 이르면 내년 AI가 텍스트 기반 채팅을 넘어 음성, 비디오까지 통달하는 멀티모달 모델로 완전히 대중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대해 미국 경제 매체 CNBC는 "챗봇과 이미지 생성기가 소비자, 기업에 진출하고 있는 지금, 비디오는 생성형 AI의 다음 개척지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AI 사용의 진입장벽이 획기적으로 낮아지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별도의 AI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콘텐츠를 제작한 후 유튜브, 틱톡과 같은 플랫폼에 올려야 했다면 앞으로는 이들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지원하는 AI 도구를 활용해 바로 창작물을 생산·유통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콘텐츠 아이디어가 있지만 영상 편집 등에 어려움을 느꼈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콘텐츠 제작자, 인기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성큼 다가온 셈이다.
"검은색 후드 맨투맨을 입은 컴퓨터 해커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컴퓨터 앞에 앉아 매우 빠르게 타이핑을 할 때 개의 얼굴에 화면의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옵니다"라는 프롬프트로 AI가 생성한 영상. 오픈AI 틱톡 캡처 |
'유튜브 쇼츠' 내년부터 AI로 만든다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는 자사 숏폼(짧은 영상) 서비스인 '쇼츠'에 AI로 동영상을 자동 생성할 수 있는 새로운 기능을 도입한다고 공개했다. 내년부터 쇼츠에서 딥마인드의 AI 모델 '비오(Veo)'를 이용해 6초 분량의 동영상 클립을 자동 제작할 수 있게 된다. 비오는 문자열로 된 명령어를 바탕으로 영상을 생성·편집하는 기능을 갖췄다. 사실적 대상뿐 아니라 초현실적 소재도 제작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간단한 텍스트 기반의 편집 명령도 가능하다. 예컨대 해안가를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에 카약 합성을 원하면 관련 문구를 입력하면 된다. 정지 이미지를 영상으로 만드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추억의 사진들을 여러 장 조합해 스토리 라인을 붙여 짧은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쇼츠를 비롯한 영상 제작이 가능해진다. 비오가 유튜브 쇼츠에 통합된다. 이를 통해 크리에이터는 쇼츠에 쓸 수 있는 동영상 배경을 만들 수 있고, 6초 분량의 짧은 클립을 만들 수 있다.
내년엔 메타 '무비젠' 인스타그램에서 사용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을 서비스하는 메타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메타는 지난 10월 동영상 생성형 AI 서비스인 '무비젠(Movie Gen)'을 공개하며 오픈AI가 만든 '소라', 구글이 만든 '비오'와 치열한 경쟁을 예고한 바 있다. 메타가 공개한 동영상 생성형 AI 모델 무비젠은 텍스트를 입력하면 최대 16초 길이의 동영상이 생성된다.
메타는 무비젠을 내년부터 인스타그램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른 비디오 생성형 AI와 무비젠의 차별점은 편집이 가능하고 사용자의 이미지를 넣은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푸들이 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영상이 원본일 경우 텍스트를 입력해 푸들에게 핑크색 옷을 입힐 수 있고, 분수와 석상을 배경에 추가할 수도 있다. 푸들의 털색을 흰색에서 푸른색으로 바꿀 수도 있다.
나의 사진을 넣은 동영상을 만들 수도 있다. 사용자인 여성이 자신의 사진을 입력하고 '흰색 말을 탄 카우보이의 모습을 그려 달라'고 하면, 여성이 말을 타고 있는 동영상이 생성되는 식이다. 영상에 배경음악이나 효과음을 넣는 것도 가능하다. 불꽃놀이에는 불꽃이 터지는 소리를 넣을 수 있고, 오케스트라나 기타 등의 효과음도 넣을 수 있다.
무비젠은 현재 영화 제작자를 포함한 소수의 외부 파트너에게만 우선 제공된다. 내년부터는 인스타그램과 와츠앱, 메신저 등 자사 소셜미디어 앱에 탑재할 계획이다. 소셜미디어에서 동영상 생성 서비스가 가장 활발하게 사용될 것으로 예상하고 이에 맞춤형 서비스를 만든 것이라는 분석이다.
숏폼 시장 점령한 中기업, 기세 올려
메타와 구글의 가장 큰 강점은 이미 수십억 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존재다. 다만 획기적인 성능을 가진 외부 서비스가 나온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크리에이터 입장에서는 테크 기업들이 막대한 돈을 들여 가면서 '무기'를 개발해주는 것이 반가울 따름이다.
오픈AI의 비디오 AI인 '소라'는 일반인 공개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소라는 텍스트를 입력하면 최대 1분 길이 동영상을 만들어주는 AI다. 지난 2월 공개했지만 현재는 소수의 창작자만 사용해볼 수 있다. 오픈AI는 품질, 응용, 오용 가능성 등을 탐구하며 관련 기능 업그레이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숏폼을 점령한 중국 기업들은 무서운 기세로 영상 AI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중국 숏폼 플랫폼 콰이서우는 지난 6월 동영상 생성형 AI인 클링(Kling)을 공개했다. 콰이서우는 틱톡의 중국 버전인 '더우인'과 경쟁하는 플랫폼이다.
콰이서우는 '한 중국 남성이 테이블에 앉아 젓가락으로 국수를 먹는다'는 프롬프트에 대한 영상 제작 시연을 했는데, 놀라운 퀄리티로 화제가 됐다. 영상 속 AI 캐릭터가 흡사 사람과 같았고 손가락, 면발 등에 대한 오류가 보이지 않았다. 클링은 1080p 해상도에 초당 30프레임으로 단 하나의 프롬프트로 2분 분량의 비디오를 생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픈AI 소라를 능가했다는 평가도 일각에서 나왔다. 다만 공개한 영상은 모두 5초짜리였다.
관건은 사용자 수다. 사용자가 많을수록 기술 고도화에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클링 AI는 빠른 속도로 사용자를 모으고 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출시 3개월 만에 이미 160만명이 클링 AI를 사용해 1600만개 이상의 영상을 생성했다. 콰이서우의 월평균사용자수(MAU)는 6억9200만명(2분기 기준)에 달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빅테크 알리바바는 AI 모델을 기반으로 한 텍스트-비디오 생성 도구를 출시했다. 이 역시 사용자가 텍스트로 상황을 설명하면 AI가 이를 기반으로 비디오를 만드는 방식이다.
생성형 AI가 바꾸는 창작자 지형
AI가 침범하기 어려운 분야로 여겨졌던 콘텐츠 창작 영역의 경계도 무너지고 있다.
웹툰, 캐릭터 등 이미지 생성 관련 분야에서도 AI 활용도가 높다. 전 세계적으로 만화 시장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여서 진입장벽이 낮고 단기간 내 다양한 콘텐츠 생산이 가능한 이들 분야에 대한 활용도는 앞으로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생성형 AI는 게임업계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글로벌 3D 엔진 플랫폼인 유니티의 마크 휘튼 수석부사장은 생성형 AI가 게임 산업 생산성을 최대 100배 가까이 높일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생성형 인공지능은 크리에이터와 아티스트가 5배, 10배, 100배 이상의 생산성을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령 그동안 인간과 꼭 닮은 디지털 휴먼을 만드는 데 6명에 달하는 아티스트가 4~5개월 동안 밤낮없이 작업해야 했다면,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할 경우 수분 만에 작업을 끝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AI를 통해 콘텐츠의 언어장벽도 더 빠르게 무너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튜브는 AI가 자동으로 더빙을 해주는 자동 더빙 기능을 늘려 갈 예정이다.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로 시작해 여러 언어로 확대될 계획이다. 유튜브는 어조, 억양, 주변 소리 등을 더빙된 오디오에 반영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기능도 테스트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대세로 떠오른 '숏폼' 시장에서도 AI 활용도가 높다. 카카오벤처스는 "해외에 콘텐츠를 수출할 경우 딥페이크를 이용해 배우들의 생김새를 현지에 맞게 바꿀 수도 있다"며 "현재 숏폼 드라마 시장이 가장 발전한 중국에서는 AI 기술을 내년 안에 상용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창작자 르네상스' 시대 온다
벌써부터 AI는 크리에이터 생태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유튜브, 틱톡 등에서는 이미 AI를 활용해 콘텐츠 생산을 자동화해 돈을 벌고 있는 인플루언서들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누구나 가지고 있는 '몽상'을 콘텐츠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유튜브가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면, 생성형 AI는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길을 열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일부 크리에이터들은 AI 기능이 확대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1500만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글로벌 유튜버 토머스 시먼스는 "이 모든 AI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AI가 기존 작품의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히 상존한다. 최근 대형 SNS로 인한 부작용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AI와 딥페이크발 '가짜 정보'에 대한 위기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다만 분명한 건 기술은 흐르고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인플루언서'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 활동하며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인플루언서들을 발굴·소개하고 크리에이터 생태계 변화를 조명하는 코너다. 2021년 2월부터 이사배, 이연, 잠뜰, 온오빠, 허니제이, 이과장, 생각노트 등 주요 인플루언서 60여 명을 인터뷰했다. 크리에이터의 전문성, 성장 잠재력, 선한 영향력 등을 다각도로 평가·선별해 미래의 별들을 매경 독자들에게 우선 소개할 방침이다.
[황순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