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법무법인 K&L게이츠 변호사. /홍콩=민서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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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정부 부처인 재경사무국(FSTB)에서 가상자산업계와 자주 소통하고 있고 금융관리국(HKMA)과 증권선물위원회(SFC)도 업계 행사에 자주 참여해서 직접 발표하고 강연도 합니다. 활발한 소통 덕분에 감독 당국은 새로운 법규 체계를 만들 때 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실효성 있고 적절한 규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홍콩의 비즈니스 중심가 센트럴역 랜드마크 사무실에서 지난달 22일 만난 이재호 법무법인 K&L게이츠 변호사는 홍콩의 가상자산 관련 규제 체계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홍콩은 지난 4월 아시아 최초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세계 최초로 이더리움 현물 ETF를 승인하면서 전 세계 가상자산 정책을 선도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미국의 상위 14개 로스쿨 중 하나인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 라이선스를 받아 뉴욕에서 일했다. 이 변호사는 평소 기술에 관심이 많아 블록체인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홍콩 지사에서 블록체인 관련 전문 변호사를 요청해 이곳으로 오게 됐다. 그는 영어와 중국어가 모두 가능해 두 언어를 사용하는 홍콩에서 장점을 살릴 수 있었다. 최근에는 웹3와 가상자산 관련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아시아의 금융허브이자 글로벌 무역의 중심지로 꼽히던 홍콩의 다음 목표는 ‘글로벌 가상자산 허브’다. 홍콩 정부는 몇 년 새 중국 본토의 입김으로 정치·경제 자유도가 떨어지면서 빛이 바랜 금융 중심지 위상을 가상자산 분야에서 회복한다는 구상을 세웠다. 실제로 홍콩은 가상자산 서비스 제공자(VASP) 라이선스 제도, 투자자보호 조치 등을 일찍이 도입했으며 최근에는 각종 자산의 토큰화,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CBDC)를 활용한 은행 간 결제 등 블록체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연구를 진행 중이다.
덕분에 중국의 입김에도 홍콩은 가상자산 분야에서만큼은 과거의 높은 경제 자유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더리움 ETF 외에도 미국이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해 현금 상환만 허용하고 있을 당시, 홍콩은 현금에 더해 가상자산 현물로도 상환을 가능하게 하면서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상환 시 현물을 현금으로 바꿔야 하는 번거로운 중간 과정을 없애 거래를 간소화한 것이다. 가상자산 투자와 거래를 법적으로 금지한 중국 본토와 정반대다.
이 변호사가 최근 맡고 있는 사건들은 대부분 웹3와 관련되어 있는데, 특히 실재하는 자산을 토큰화하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요즘 비상장 주식을 토큰화하는 케이스를 살펴보고 있는데, 비교적 규제가 잘 자리 잡은 홍콩에서도 RWA(Real World Asset)가 생각보다 현실화되기 쉽지 않고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재호 법무법인 K&L게이츠 변호사. /홍콩=민서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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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호사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전통 강국들이 여전히 비트코인의 스케일과 확장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고 평가했다. 홍콩은 한국의 기획재정부 장관급이 블록체인 산업 육성의 중요성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러 번 언급할 정도로, 가상자산에 대한 정부 차원의 인식 변화가 있다고 했다.
일례로 이 변호사는 홍콩이 정부 차원에서 블록체인 산업을 육성하려고 하고 실제로 프로젝트팀들을 직접 컨설팅하고 자주 만나 대화하는 등 굉장히 친화적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가상자산 생태계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규제안을 먼저 만들어 놓아서 오히려 투자자 보호도 쉽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홍콩의 다양한 가상자산 제도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제도로 홍콩의 거래소 가이드라인인 VASP를 꼽았다. 국내에도 VASP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홍콩의 경우 고객 자산의 98% 이상을 콜드월렛에 보관한다든지, 거래소 운영위원회의 구성과 토큰 상장 기준을 명확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등 훨씬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글로벌 거래소 FTX가 망가졌을 때, 여러 지사 중 FTX 일본의 이용자들은 거의 피해를 받지 않았다.”며 “일본의 금융감독청에서 가상자산 거래소 법규를 만들어놨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어 “파산 시 고객에게 우선권을 줘서 최대한 자산을 돌려받을 수 있게, 또 거래소 전체 자산의 90% 이상을 콜드월렛에 보관해 놓도록 하는 규제 덕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빗썸라운지 시황판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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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가상자산 과세에 관한 설명도 언급됐다. 홍콩의 경우에는 주식에 대한 세금도 부과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상자산을 매수하고 매도해 얻은 이익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하고 있지 않다는 게 이 변호사의 설명이다. 이 변호사는 “홍콩에서는 가상자산을 증권과는 별개의 자산으로 인식하되, 가상자산 중 증권의 특성을 띤 토큰들에 대해서는 증권법을 따르도록 만들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국내 가상자산 관련 정책들도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홍콩 정부의 추진력을 지켜보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그는 “(홍콩 정부는) 블록체인이 가져올 수 있는 금융과 산업계에서의 큰 효과와 장점을 인지하고 함께 투자해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며 “여러 가지 예시가 있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발행해 오던 녹색 채권을 토큰화하고 이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블록체인의 장점을 다른 업계들이 참조하도록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또한 홍콩 증권거래소 역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지금까지 해오던 증권의 결제체계에 대해 좀 더 효율적인 체계를 만들 수 있도록 테스트하고 있다”며 “이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있으면 정부가 현재 금융 산업 체계에 기술을 어떻게 도입할 것인지 고민하고 적절한 도입을 위해 법규 정비를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재호 변호사는
▲미국 컬럼비아대 학사 ▲미국 뉴욕대 법학대학원 석사 ▲미국 스카덴 아프스 변호사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부채자본시장 아시아 총괄 ▲영국 시몬스앤시몬스 파트너 변호사 ▲글로벌 로펌 K&L게이츠 파트너 변호사
민서연 기자(mins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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