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서울 중구는 대형마트 휴업일을 매월 둘째, 넷째 일요일에서 둘째, 넷째 수요일로 변경했다. 서울에서는 서초구, 동대문구에 이어 세 번째다. 덕분에 주말마다 헛걸음을 피하고자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휴무일을 확인하던 동네 주민들은 수고를 덜게 됐다. 그러나 탄핵 정국에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은 속도가 더뎌지는 양상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규제 완화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 당시부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규제개혁 1호’ 과제다. 내수 활성화를 위해 의무휴업일을 월 2회 공휴일로 정하던 원칙을 폐지하고, 영업 제한 시간(0~10시)과 의무휴업일에도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2013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에 따라 시행된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마련된 ‘상생’ 정책이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통시장을 살리긴커녕, 대형마트의 휴점으로 인해 주변 상권의 매출이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그런 만큼 새로이 추진된 유통법 개정은 시장과 국민의 공감을 샀다.
하지만 갑작스레 맞닥뜨린 탄핵 정국에 정책은 제동이 걸렸다. 오히려 규제는 더 강화될 태세다. 탄핵 정국의 주도권을 쥔 야당이 규제 강화에 무게를 두고 있어서다. 송재봉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 등이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지정할 수 없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현행 대형마트에만 적용되는 의무휴업을 백화점과 면세점, 복합쇼핑몰 등으로 확대하는 법안을 내놨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2016년 출범한 제20대 국회는 탄핵 정국이 본격화한 10월부터 조기 대선 전인 이듬해 4월까지 총 12개의 유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시 개정안에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4일로 확대, 편의점 심야 영업 금지 등 규제안이 담겼다. 결과적으로 모두 폐기됐지만, 가뜩이나 불안한 정세에 유통업계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돌아온 탄핵 정국에서 과거의 상황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정치권이 시장의 변화를 무시한 채 여전히 ‘전통시장이 대기업(대형마트)으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는 과거의 잣대만 앞세우고 있는 탓이다.
지난 12년간 대형마트의 주말 영업을 제한했지만, 이는 전통시장도, 대형마트도 살리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유통 시장의 주도권은 온라인으로 이동했다. 전통 유통 강자로 꼽히는 이마트는 지난해 영업손실 469억원으로 창사 31년 만에 첫 적자를 봤고, 같은 기간 ‘로켓배송’으로 온라인 시장을 평정한 쿠팡은 영업이익 6174억원을 내며 처음 흑자를 달성했다. 급기야 이마트는 올해 사상 처음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두 번이나 받았다.
탄핵 정국으로 우려되는 건 유통법만이 아니다. ‘티메프(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 재발방지법’으로 통하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은 여야 대립과 탄핵정국의 여파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합성 니코틴 규제’를 목표로 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도 연내 통과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해당 안들은 규제 공백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추진되는 것들인 만큼 필요성과 시급성이 크다.
정치적 불확실성 속 내년 유통 업황은 더 어려워질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내년 국내 소매유통시장이 내년 0.4%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그런 만큼 정치적 이슈와 무관하게 입법의 목표는 민생이 우선이어야 한다. 국회는 정쟁의 수단이 아닌, 나라 살림과 민생에 도움 되는 정책을 펼치길 바란다.
김은영 기자(key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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