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지난 3일 밤 국회 상공에 군 병력을 태운 헬기가 나타났다. 김성룡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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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10시 25분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서울 여의도 국회는 하나의 거대한 요새로 변했다. 국회를 빙 둘러싼 도로 위엔 군용차·장갑차와 경찰버스 여러 대가 줄지어 에워쌌다. 교통경찰이 일반 차량 통행을 제한하면서 국회 일대의 도로는 곧바로 마비됐다. 국회 정문을 포함한 주요 출입구 앞엔 이미 경찰 기동대가 2열 횡대로 가로막고 있었다. 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국회 안으로 들어가려는 수백 명의 시민과 국회의원들 앞을 막아섰다. 인도 위는 시민 통제를 위해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방패를 든 경찰 경력이 빼곡했다.
깊은 밤 영하의 날씨였지만, 분노한 시민들이 내뿜는 열기는 뜨거웠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이 나라의 주인은 대체 누구인가”라고 외쳤다. 시민들과 경찰이 뒤엉키면서 1시간 넘게 실랑이가 벌어졌고 욕설과 고성이 오갔다. 최모(49)씨는 “군인 투입은 막 나가자는 거 아니냐”며 “군사 독재정권으로 회귀하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휴대전화 카메라를 치켜들고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생중계 영상을 통해 매 순간을 송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다음 날인 4일 새벽 국회로 진입하려는 군인들을 국회 보좌진과 시민들이 막고 있다. 김성룡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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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무렵부터 제1공수특전여단 특공대원 등 계엄군은 굉음을 내는 군용 헬리콥터를 타고 국회 안으로 속속 투입됐다. 이들은 SCAR-L 돌격용 소총과 야간투시경 등 장비로 무장한 채 국민의힘 당대표실 유리창 등을 깨고 국회 본관 진입을 시도했다. 현장에 투입된 군인들에겐 공포탄 10여발씩 배포됐다고 한다. 이에 본관 입구 근처에서 대기하던 국회 직원 및 국회의원 보좌진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본회의장 로텐더홀로 이어진 본관 현관과 복도 진입문 앞에 책상, 의자 등 손에 잡히는 대로 기물을 황급히 쌓아 바리케이트를 쳤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뒤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계엄군이 본청 출입구를 봉쇄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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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진입하려는 계엄군과 막으려는 국회 측 사이 육탄전이 벌어졌다. 곳곳에서 “막아 막아” “여기 국회야. 어딜 들어와” 등 고성과 탄식이 흘렀다. 4일 0시 30분쯤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본회의 표결 직전 무장한 계엄군이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본관 유리창을 깨며 우회로 진입을 시도했다. 유리 파편이 건물 내부에 흩어지고, 의자 등으로 쌓아 올린 바리케이드는 부서졌으며 본관 현관 문짝이 종잇장처럼 찢겼다. 국회 보좌진들이 소화기를 뿌리며 계엄군을 막아섰다. 매캐한 냄새가 진동한 로텐더홀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국회 정문 앞에서도 집결한 시민들과 계엄군 사이 대치 상황도 이어졌다. 한 시민은 “군인은 국민과 나라를 지켜야 하는데 왜 국회로 들어가려 하는가”라며 언성을 높였다. 또 다른 시민이 “개XX들. 정권의 하수인”이라며 욕을 하자 한 군인은 “욕과 반말은 하지 마라. 니가 뭔데 그딴 말을 하냐”고 맞섰다. 이에 다른 시민들이 “저 군인들도 하고 싶어서 여기 와 있겠는가,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 아니냐”며 화를 낸 시민을 말렸다.
분위기가 고조하면서 진보·보수 진영 지지자 사이의 충돌도 벌어졌다. 한 여당 지지자가 “여기 종북좌파가 우글거린다”고 외치자, 야당 지지자 10여명이 그를 둘러싸고 “윤석열 하야하라”라고 되받아치는 등 고성이 오갔다.
4일 오전 계엄군이 국회 본관으로 강제 진입을 시도하면서 문짝을 찢어냈다. 이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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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계엄 선포 이후, 일부 시민들이 국회 진입을 위해 경찰과 충돌했다. 그 과정에서 국회 울타리 일부가 무너졌다. 이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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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국회 본관 앞에 모인 시민들은 1980년처럼 “계엄 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다. 이들 사이에서 가끔 통곡과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일부 시민은 경찰의 빈틈을 노려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국회 울타리 안에 있던 보좌진 등도 시민들의 팔다리를 잡아 월담을 도왔다. 월담한 한 시민은 국회 경내에 있던 경찰의 무전기를 빼앗아들기도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경찰에 의해 국회 출입이 막히자 “당신들이 하는 건 내란”이라고 외쳤다. 이를 지켜보던 송모(34)씨는 “국회의원이 국회를 못 들어가게 하는 게 말이 되냐”며 경악했다. 일부 시민들은 울타리를 넘어가고 했고, 경찰과의 충돌로 울타리가 무너지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가 6시간 만에 최종 해제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출동한 장갑차를 가로 막으며 항의하고 있다. 노유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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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1시쯤 국회는 본회의에서 재석 190명, 찬성 190명으로 계엄령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다. 이에 국회 정문 앞에 모인 시민들은 일제히 “만세”를 외쳤다. 곧장 구호는 “문 열어”로 바뀌었다. 군인과 경찰들은 철수하기 시작했지만, 국회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시민들은 여의도를 빠져나가려는 군 장갑차를 가로막으며 항의했다. 박모(59)씨는 “밤사이 ‘서울의 봄’ 영화에서 보던 일이 벌어졌다. 이게 대한민국이 맞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비상계엄 후 국회 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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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여가 지난 오전 4시 30분쯤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비상계엄령이 최종 해제됐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45년 만에 선포된 계엄령은 6시간 만에 끝이 났다. 일순간 국회 앞 도로는 4000명 시민이 내지르는 “와!”하는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바로 “윤석열은 하야해라” “윤석열을 체포해라” “윤석열을 탄핵해라” 구호들이 메아리처럼 이어졌다.
계엄령 해제 뒤에도 인파는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국회 정문 앞에 설치된 간이 단상에 선 40대 임모씨는 “(계엄령을) 해제하겠다 했지만, 대통령 말을 못 믿겠다”며 “아침 출근길로 도로가 막힐 때까지, 탱크가 못 들어올 때까지 국회를 지키자”고 말했다. 임씨 뒤로 20여명이 줄지어 발언 순서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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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트기 시작하면서 국회 앞으로 시민들이 다시 삼삼오오 모였다. 이들은 ‘윤석열은 물러나라’는 손팻말을 들고 국회의사당역 1번 출구 앞 도로에 일렬로 앉아 ‘인간 바리케이드’를 쳤다. 강모(29)씨는 “출근을 해야 하지만, 혹시 장갑차 등이 다시 올 수 있기 때문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내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밤새 시민들은 일상을 뒤로 한 채 국회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비상계엄의 밤은 탄핵과 하야 요구의 아침으로 바뀌었다. 대학생 성진영(23)씨는 “시민들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켰다. 아직 민주주의는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달려갔다.
김서원·이찬규·이수민·박종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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