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구 한 아파트에 '1억 이상 파격 할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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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건설사 A사는 경기도 외곽에 대단지 아파트 분양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분양한 아파트에 미분양이 대거 발생하는 등 사업 성공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고심하고 있다. 그동안 시행사가 분양 시기를 최대한 미뤄봤지만, 토지 매입 당시 맺은 토지 사용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다. A 건설사 관계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분양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 많다”며 “미분양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건설·행사들이 계약 조건 등에 따라 연말 밀어내기 분양에 나서고 있지만, 서울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분양 시장 상황이 심각한 수준이다. 아예 미분양이 날 것을 염두에 두고 분양에 나서는 건설·시행사도 늘고 있다.
4일 중앙일보가 한국부동산원이 운영하는 청약홈에 등록된 올해 9월 이후 일반 분양 아파트 73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체의 34.2%(25곳)가 1·2순위 분양에서 모집인원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9월 이후 분양 단지는 수도권이 42곳, 지방이 31곳인데 청약경쟁률 0점대 단지는 수도권이 8곳(28.6%), 지방이 17곳(41.9%)이다. 미분양이 우려되는 청약경쟁률 5대1 미만 단지는 전국에 42곳(57.5%)이나 된다.
아예 청약 인원이 '0명'인 곳도 있다. 강원 인제군에서 10월 초 분양한 '인제 라포레 아파트'는 120가구 모집에 단 한명도 접수하지 않았다. 지난달 중순 분양한 충남 공주시 '유구CITY아파트'도 44가구 모집에 경쟁률이 '0'이었다. 수도권에선 양주시에서 9월 분양한 '양주 백석 모아엘가 그랑데'가 924가구 모집에 35명이 청약해 0.04대1 경쟁률 기록하기도 했다.
청약에서 모집인원조차 채우지 못한 지역은 인제·공주·남원·가평 등 지방 소도시가 대부분이다. 중소형 건설사가 시공한 소규모 단지 위주다. 하지만 대구(상인푸르지오센터파크, 0.05대1)·울산(무거 비스타동원, 0.13대1) 등 지방 광역시와 수도권의 양주·파주·평택·이천·의정부 등의 미분양도 심각한 수준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지난해 12월 이후 6만 가구 이상(10월 6만5836가구)을 유지 중이다.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계속해서 늘고 있다. 10월 말 전국 준공 후 미분양은 1만8307가구로, 한 달 새 1045가구(6.1%) 증가했다. 이는 2020년 7월(1만8560가구) 이후 4년 3개월 만에 가장 많은 수치다. 9월 이후 대출규제가 시행된 여파로 악성 미분양이 더 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말 밀어내기 분양도 예년보다 주춤하다. 이날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12월 분양 예정 물량은 2만8070가구로, 권역별로 수도권 1만2995가구, 지방 1만5075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 이번 달 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2만9011가구)과 비교해 3% 적은 물량이고, 12월 기준으로 2020년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일부 건설·시행사들은 어쩔 수 없이 분양에 나서고 있다. 향후 주택 시장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후분양을 했다가 준공이 임박하자 서둘러 분양에 돌입한 단지도 있고, 계약 조건을 이행하기 위해 분양에 나서는 단지도 있다. 분양업계의 한 관계자는 “애초에 미분양이 날 걸로 예상해 초기 마케팅 활동을 최소화한 뒤 분양가를 낮춰 할인분양 하거나, 시행사가 미분양분을 임대하는 사례, 인근 중개업소 등을 통해 판매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주택 매입 시 이를 주택 수에서 제외하고, CR리츠(기업구조조정리츠), LH(한국토지주택공사) 미분양 주택 매입 확약 등 지방 미분양 대책을 내놓았지만 아직 효과가 미미하다는 평가다. 특히 전문가들은 지방 부동산 시장 맞춤형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익명을 요청한 한 부동산개발업계 관계자는 “서울 집값 잡기 위해 시행한 대출규제가 지방에도 똑같이 적용되면서 지방 부동산 시장은 그야말로 초토화된 상황”이라며 “지방 아파트 매매에 대한 취득세·양도세 완화 등 좀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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