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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무장해제 당한 장병 ‘軍生 예산’ 5000억… 野 감액안 여파로 없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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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제13차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내년도 감액 예산안 의결에 반발하며 퇴장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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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4조1000억원을 삭감한 초유의 감액 예산안을 밀어붙이면서 군 장병들의 처우·복지 개선을 위한 이른바 ‘군생(軍生)’ 예산 5000억원이 반영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연구·개발(R&D) 예산도 815억원이 줄어들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국가 안보와 미래를 저당 잡히면서 정쟁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국방부와 국회 국방위 등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단독 처리한 감액 예산안이 본회의를 최종 통과하면 군 장교·부사관 처우 개선은 물론 병사들 급식료 인상 등을 위해 증액하기로 했던 관련 예산 4872억원은 없던 일이 된다. 30만명이 넘는 병사 급식비를 현행 하루 1만30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인상하기 위한 예산 2203억원이 대표적이다. 한 끼당 4366원인 병사 급식비를 현실화하기 위한 증액 예산이었는데 이것이 사라지는 것이다.

군 간부 당직 근무비를 평일 5만원, 주말 10만원(현행 각각 2만원·5만원)으로 현실화하기 위한 예산 883억원, 간부가 작전·훈련 기간 자기 돈을 내고 밥을 먹지 않도록 하기 위한 간부 급식비 695억원 등도 빠지게 됐다. 이사가 잦은 군 간부를 위한 이사비·입주 청소비 관련 예산, 부사관 단기 복무 장려 수당 지급 및 학군 후보생 생활 지원금 인상 예산도 한 푼도 반영되지 않게 됐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국방부는 당초 무기 구매를 위한 예산 등에서 3400억원가량을 감액하고, 장병 처우 개선 및 복지를 위한 증액 예산 5000억원을 확보하기 위해 국회 국방위와 소통해왔다고 한다. 정부 예산안에서 처우 개선 관련 예산이 빠지자 국회 예결위를 통해 이를 확보하려 한 것이다.

조선일보

그래픽=정인성


여야 국방위원들은 장병 처우 개선의 시급성에 공감대를 이뤄 큰 이견 없이 증·감액 합의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민주당이 증액분은 1원도 반영하지 않은 감액 예산안을 예결위에서 강행 처리하면서 처우 개선 예산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군 관계자는 “군 간부 모집·유지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처우 개선 예산도 확보 못 하면 군 인력 획득은 더 어려워질 전망”이라고 했다. 지난해 군을 떠난 경력 5년 이상 장교·부사관은 9481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은 “증액하기로 한 예산은 속수무책으로 떠나가고 있는 간부들을 붙잡기 위한 최소한의 유인책”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이번 감액 예산안에서 차세대 원전·양자·반도체·바이오 등 R&D 예산도 815억원 삭감했다. 민주당이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의 올해 R&D 예산 삭감을 내세우며 과학·기술 유권자들에게 ‘정권 심판론’을 부각했던 것과 모순된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올해 새롭게 출범시킨 ‘글로벌 톱(TOP) 전략 연구단’이 내년부터 사업 선정과 진행에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이 사업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 간 협력을 통해 국가 미래 먹거리를 발굴할 대형 연구·개발(R&D) 성과를 내겠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올해 이차전지, 유전자·세포 치료, 가상 원자로, 반도체, 수소 등 5개 연구단이 선정돼 총 1000억원의 예산을 받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 사업의 내년 예산을 1833억원에서 312억5000만원(17%) 감액했다. 정부 관계자는 “신규 사업 선정은 물론 진행 중인 R&D 예산 집행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민주당은 차세대 원전 기술인 소듐 냉각 고속로(SFR) 예산을 70억원에서 7억원으로 90% 삭감했다. 이 사업은 민관 공동으로 소형 모듈 원전(SMR)용 SFR의 기본 설계안을 개발하는 것이다. 물이 아닌 소듐(나트륨) 기반 냉각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경제성, 안전성을 갖췄을 뿐 아니라 방사성 폐기물을 덜 배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SFR은 해외에서는 원전이 나아갈 방향 중 하나로 중요하게 보고 있는 사안인데, SFR 연구 예산이 삭감되면 글로벌 원전 경쟁력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고 했다.

국내 연구자들이 해외 연구자와 협력해 성과를 내는 ‘글로벌 매칭형 기초 연구 사업’ 역시 예산이 절반 이상 깎였다. 이 사업은 영국과 스웨덴, 독일 등을 대상으로 양국이 각자 연구자에 대한 연구비를 1대1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글로벌 R&D 확대를 추진해왔는데, 민주당은 R&D 사업명에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일괄 삭감했다”고 했다. 이 밖에도 민주당은 디지털 바이오 육성, 인공지능(AI) 일상화, 양자 관련 글로벌 협력 사업, AI 반도체를 활용한 클라우드 사업 등의 R&D 예산을 삭감했다.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R&D 예산 삭감을 비판해왔던 민주당이 다시금 R&D 예산을 줄인 것은, 과학기술을 정쟁의 도구로 봤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했다.

[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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