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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어떤 K팝 아이돌도 안전하지 않아… 경쟁보다 보호가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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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케이팝 아이돌 글로벌 팬덤은 딥페이크 성범죄로부터 여성 아이돌을 보호하자는 활동을 하고 있다. X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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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젠더팀은 딥페이크 성범죄의 구체적인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4조의2(허위영상물 반포 등)가 시행된 2020년 6월25일부터 올해 6월까지 해당 법 위반 혐의가 포함된 105건의 1·2심 판결문을 살폈다. 미성년자를 비롯한 거의 모든 여성 아이돌이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우리사회가 오랫동안 묵인한 피해다. 이번 편에서는 엑스(옛 트위터)를 기반으로 ‘케이팝 걸그룹 지키기’에 나선 팬덤 인터뷰를 전한다.


인도계 미국인인 헤이즐(20)은 2023년 데뷔한 케이팝 걸그룹 ㄱ의 팬이다. 그는 지난 8월30일 엑스(옛 트위터)에서 ㄱ의 멤버인 ㄴ의 “민감한” 콘텐츠가 포함된 게시물을 발견했다. ㄴ은 2007년생이었다. 헤이즐은 문제의 콘텐츠가 올라온 계정에서 ‘이런 부류의 콘텐츠를 더 볼 수 있다’며 특정 웹사이트를 홍보하는 한국어 계정을 발견했다. “그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아이돌 한 명을 놓고 딥페이크 성범죄물 수만개가 있어 충격을 받았어요, 신인 미성년자 아이돌조차 이런 성범죄에 안전하지 않다면 누구도 안전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는 곧장 이 사이트 화면을 갈무리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해시태그를 달아 ‘아이돌을 보호하라’는 게시물을 작성했다. 수많은 케이팝 팬덤이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했다. 맨 처음 올린 게시물의 누적 조회수는 360만회를 넘겼다.



한겨레는 엑스를 기반으로 ‘케이팝 걸그룹 지키기’에 나선 글로벌 팬 계정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에 응한 글로벌 팬 계정 3곳은 딥페이크 성범죄의 심각성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엑스 팔로어가 122만여명인 ‘블랙핑크 글로벌 팬베이스’(@BLACKPINKGLOBAL) 관리자는 “우리를 포함한 많은 팬들은 이 범죄가 사생활 침해를 넘어 괴롭힘과 학대의 한 형태라고 보기에 더 강력한 대응책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명인의 이미지를 이렇게 악용하는 사이트들은 모두에게 해롭고 안전하지 않은 환경을 조장할 뿐입니다.”



한겨레

‘문제 계정’이나 ‘문제 링크’를 신고해달라고 요청하는 팬덤 게시물 일부. X 갈무리


남아시아 출신 블랙핑크 팬 3명이 관리자로 운영 중인 팬베이스 계정 ‘프로텍트 블랙핑크’(@PROTECTBLACKPNK)도 “이렇게 딥페이크 성범죄가 심각한 상황에서는 우리가 팬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모든 여성 아이돌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다른 팬덤과 연락망을 구축해 ‘문제 계정’을 엑스에 신고하고, 아이돌이 소속된 회사에 대응 조치를 요구하는 이메일을 보내는 등 딥페이크 성범죄물 확산을 막기 위한 연대 활동을 하고 있다. “팬덤 간 경쟁보다는 (여성 아이돌들의) 보호가 우선입니다.”



글로벌 팬덤의 요청이 잇따르자 엔터테인먼트 회사들도 움직였다. 지난 8~9월 블랙핑크와 베이비몬스터 등이 소속된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 (여자)아이들 소속사 큐브엔터테인먼트, 스테이씨 소속사 하이업엔터테인먼트 등이 공식 에스엔에스 등으로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해 “강력한 법적 대응”을 공표하는 입장문이나 공지를 냈다.



한겨레가 접촉한 여러 엔터테인먼트 회사 관계자는 공지·입장문을 내게 된 계기로 “팬들 제보로 인해”, “팬덤 요구가 컸다”는 점을 꼽았다. ㄷ엔터사 관계자는 “요즘엔 (디지털 성범죄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범죄라고 인식되는 게 커져서 팬분들도 제보해주고 심각성을 (엔터사도) 함께 알아가는 단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ㄱ엔터사 관계자도 “이런(팬들 요청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건 너무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회사에 (강력 대응 공지 게시를)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팬들은 지금의 대처가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회사가 (문제를) 인식하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진전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법적 틀이 디지털 환경의 복잡성이나 유해 콘텐츠가 퍼지는 속도를 완전히 반영하지 못합니다.”(블랙핑크 글로벌 팬베이스)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있으며, 이제는 회사(소속사)에 달려 있습니다. 이 문제는 한국 언론에서도 더 주목받아야 합니다.”(헤이즐) “회사가 경고성 입장문을 발표하고 신고 채널을 구축하는 것은 단기적 조치에 해당합니다. 딥페이크 성범죄물 감소를 성공 지표로 삼아 중장기 대응 전략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원 및 아티스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엔터)업계 전반의 기준을 설정해 정부, 플랫폼 기업과 함께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프로텍트 블랙핑크)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강력한 법적 대응’ 방침을 공개적으로 내걸고 나서긴 했지만, 피해 당사자인 연예인을 포함해 소속사조차도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언급 자체를 극도로 꺼리는 상황이다. “소속 연예인이 아무리 ‘피해자’라도 부정적인 이슈, 특히 범죄 행위에 얽혀 이름이 단 한 차례라도 더 언급되는 것 자체가 이미지 훼손”이라는 이유에서다. “관련 기사가 나면 팬들이 걱정한다”는 이유를 덧붙이기도 했다.



한겨레

딥페이크 성범죄 등에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YG의 공지문. YG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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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팬덤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팬들의 우려”를 이유로 문제를 회피하기보다는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길 원한다”고 했다. “아티스트들이 부정적인 주제와 연결되는 것을 피하고 싶어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침묵한다고 (아티스트가) 보호되는 게 아니며, 오히려 취약해집니다. 불편한 문제를 다룬다고 해도 팬들은 이미 이러한 범죄를 걱정하고 있기 때문에, 소속사가 선제적 조치를 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팬들은 신뢰를 느낄 겁니다. 우리는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가 아티스트를 보호하고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취하는 모든 조치를 전적으로 지지합니다.”(블랙핑크 글로벌 팬베이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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