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개봉하는 국내 최초 배구 영화 ‘1승’
경기에서도 인생에서도 백전백패를 기록 중인 배구 감독 김우진(송강호·맨 오른쪽)이 해체 직전의 여자배구단을 이끌고 1승에 도전한다. 송강호는 ‘YMCA 야구단’ 이후로 22년 만에 스포츠 영화에 출연했다. /키다리스튜디오·아티스트유나이티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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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축구, 마라톤, 양궁.... 종목을 가릴 것 없이 최근 한국 스포츠 영화는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박서준·아이유라는 스타 캐스팅에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의 조합으로 주목받았던 축구 영화 ‘드림’은 관객 112만명, 제작비 200억원 이상을 들여 추석 극장가를 겨냥했던 마라톤 영화 ‘1947 보스톤’도 102만명에 그쳤다. 지난해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일으킨 농구 열풍에도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실화를 각색한 영화 ‘리바운드’ 역시 69만명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브라질 아마존 활의 명수들과 양궁에 도전한다는 코믹한 설정의 영화 ‘아마존 활명수’도 최종 관객 60만명으로 씁쓸하게 퇴장했다.
4일엔 국내 최초의 배구 영화 ‘1승’이 출격한다. 지도자 생활 평균 승률 10% 미만, 실패를 거듭해온 배구 감독 우진(송강호)이 해체 직전의 프로 여자 배구단 ‘핑크 스톰’의 감독을 맡아 1승을 노리는 이야기. 김연경·신진식·김세진 등 배구계 스타들까지 깜짝 출연해 힘을 실어줬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국가대표’(2009) 이후로 이렇다 할 성공작이 없었던 한국 스포츠 영화의 연패 행진을 끝낼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1947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 서윤복과 감독 손기정의 실화를 극화한 '1947 보스톤'. /롯데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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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없고 드라마만 있다
스포츠 영화의 서사는 단순하다. 열 번 쓰러져도 다시 또 일어나는 투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언더도그’(약자)의 반란으로 감동을 준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스포츠와 달리, 최근 국내 스포츠 영화들은 누구나 예측 가능한 전개로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임정식 영화 평론가는 “스포츠 영화의 서사나 주제가 비슷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해도 관객의 예상을 벗어나는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면서 “실화의 사건들만 짜깁기하고 스포츠는 배경으로 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평했다.
홈리스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참가한 노숙인들의 도전기 '드림'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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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은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한 노숙자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소개하다 축구 경기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리바운드’는 최약체였던 부산중앙고 농구부가 전국 고교 농구 대회에서 어떻게 준우승까지 차지했는지 변화 과정을 설득하지 못해 아쉬움을 낳았다. ‘1947 보스톤’ 역시 관객에게 익숙한 스포츠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며 실화가 주는 뜨거운 감동마저 미지근해져 버렸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스포츠 영화인데 스포츠는 없고 드라마에 치우친 영화가 많았다”면서 “많은 스포츠 영화가 교본처럼 삼는 ‘머니볼’처럼 종목에 대한 이해와 치밀한 전술이 있어야지 ‘열심히 하면 돼’ 수준에 그쳐선 요즘 관객을 설득할 수 없다”고 했다.
영화 '1승' /키다리스튜디오·아티스트유나이티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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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승은 할 수 있을까
국내 최초로 배구를 소재로 한 영화 ‘1승’은 기존의 스포츠 영화들과는 다른 전략을 취했다. 어설픈 신파는 걷어내고 “0.5초에 목숨을 거는” 배구의 속도와 쾌감에 집중했다. 특히 공이 수차례 오가는 ‘메가 랠리’ 장면은 카메라 7대가 총알처럼 내리꽂히는 공을 따라가며 경기를 입체적으로 담아냈다. 속이 뻥 뚫리는 듯한 스파이크의 쾌감도 잘 살렸다. ‘왜 여자 배구였냐’는 질문에 신연식 감독은 “남들이 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배구는 서로의 공간을 존중해주면서도, 살을 부대끼는 경기 못지않게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특히 여자 배구는 긴 랠리가 나오기 때문에 영화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고 봤다.”
재벌 구단주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도 차별점이다. 우승엔 관심이 없는 괴짜 구단주 정원(박정민)은 핑크 스톰이 1승을 거두면 시즌권 회원들에게 상금 20억을 뿌리겠다는 공약을 내건다. 임정식 평론가는 “기존의 스포츠 영화들은 꿈, 열정만을 강조해왔는데, ‘1승’은 프로스포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돈 문제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잘 녹여냈다”면서 “비인기 종목, 여성 서사라는 2000년대 이후 스포츠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산업적인 요소를 가미해 새로움을 줬다”고 했다.
코트에서 이 악물고 뛰는 선수들이 기능적으로 소비된다는 점은 아쉽다. 감독이 주연, 선수들이 조연이라는 것도 최근 나온 스포츠 영화들의 공통점. 영화감독·주연배우의 고령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윤성은 평론가는 “선수 생명이 짧은 스포츠의 특성상,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를 주연으로 하려다 보면 감독을 주인공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면서 “대신 선수 시절 이루지 못했던 꿈에 다시 한번 도전하는 절박함이나 사제 관계의 끈끈함을 드러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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