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시절 도덕성 평가 尹 58점, 李 53점
지금은 선거 개입 의혹에 방탄 입법까지
도덕성 기준 낮추는 보수 진보 일탈 경쟁
되는 일 없는 정치 위기는 도덕성의 위기
이진영 논설위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불법 총기 소지와 탈세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은 둘째 아들을 임기 말에 사면했다.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며 “아들을 사면하지 않겠다”는 말을 여섯 번 했던 바이든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아니었다면 소신을 꺾고 공약을 깰 용기를 냈을까. 트럼프는 탈세 전과가 있는 사돈을 사면하고 프랑스 대사 자리까지 내주었다. 바이든으로선 전 부인과 큰딸, 큰아들을 교통사고와 병으로 잃은 뒤 눈물로 키운 차남 사면쯤은 “미국인들이 이해해 주리라” 기대했을지 모른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쉬운 법이다. 금기를 깨는 일도 그렇다. 에밀 뒤르켐은 ‘성인들만 사는 곳에도 종류가 다를 뿐 범죄는 있기 마련’이라고 했다. 사회가 허용하는 행위에 대한 선을 그어놓고 처벌해야 공동체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후 사회학자들은 뒤르켐의 이론을 토대로 한 사회의 범죄율이 작은 등락은 있어도 장기간에 걸쳐 일정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일탈 행위가 증가하면 일일이 엄벌하기보다 기준을 낮춰 일탈 행위의 총량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경향도 발견했다. 일탈이 익숙한 일상이 되면 더 이상 일탈이 아닌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1호 인사로 미성년자 성매매 의혹을 받는 맷 게이츠를 법무부 장관에 지명한 이유도 후속 인사의 도덕성에 대한 기대 수준을 바닥까지 낮추기 위해서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직무 경험도 일천한 데다 성매매, 마약 복용, 선거자금 유용 의혹까지 받는 사람이 법무부 장관이 될 수 있다면 누구를 무슨 자리에 앉힌들 놀라겠나. 실제로 게이츠는 낙마했지만 백신 음모론자가 보건복지부 장관, 친러 인사가 국가정보국 국장, 성 학대 방치 의혹을 받는 사람이 교육부 장관에 지명됐다.
한국의 경우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인선이 ‘게이츠 모멘트’로 정치인의 후안무치 경쟁의 계기가 됐다고 본다. 자녀 입시비리 의혹에 사퇴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싸우겠다”며 정치적 피해자임을 강변한 그가 없었다면, 위안부 할머니 후원금 횡령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도 의원 임기 다 채운 윤미향도, 울산시장 선거 개입으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도 “불의한 검찰 권력과 싸웠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해하며 당을 바꿔 연임한 황운하 의원도, 돈봉투 의혹으로 구속되면서 “조작 수사 중단하라” 큰소리친 송영길도 없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도덕성 면에선 ‘막하막하’의 경쟁을 하는 사이다.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인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 연구팀은 정치인의 도덕성 결핍이 나라를 위태롭게 할 지경임을 한탄하며 동서양의 고전과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 항목을 검토하고 전직 국회의원과 일반 시민 등의 의견을 수렴해 도덕성 평가 항목 6가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2022년 대선 직전 성인 남녀 1000명에게 유력 대선 후보였던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도덕성 점수를 매기게 했는데 윤 대통령이 100점 만점에 평균 58점, 이 대표가 53점으로 둘 다 낙제점을 받았다.
2년 반이 지난 지금 다시 평가하면 어떤 점수가 나올까.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높은 점수를 받았던 항목이 ‘뇌물, 청탁, 특혜나 부당한 정치자금을 받지 않는다’와 ‘직무상 비밀을 이용해 재물을 취득하지 않는다’였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봐주기 수사 의혹, 김 여사와 윤 대통령의 공천 개입 의혹이 제기된 지금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이 대표가 6개 항목 중 유일하게 윤 대통령을 앞선 평가 항목이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였다. ‘헌법을 수호하고 법률을 준수한다’는 항목도 다른 항목보다는 점수가 높았다. 자기를 수사한 검사는 탄핵하고, 자기를 변호한 변호사들은 국회의원 배지 달아주고, 자신의 사법 리스크에 대비해 방탄 입법까지 마다하지 않는 이 대표에게 지금은 어떤 점수를 줄까.
보수는 유능하고 진보는 도덕적이라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보수가 유능하다는 신화는 박근혜 정부, 진보가 도덕적이란 믿음은 문재인 정부를 겪으며 깨졌다. 권력을 사유화하고도 당당한 이 대표와 윤 대통령의 일탈 경쟁을 보면 진보와 보수 가릴 것 없이 도덕성이 추락할 대로 추락했음을 절감한다. ‘그래도 일은 잘하지 않느냐’는 말을 어느 쪽도 꺼낼 수 없이 되는 일 하나 없는 꽉 막힌 정국이다. 정치의 위기가 아니라 도덕성의 위기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정치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덤덤하게 봐 내는 도덕 불감증으론 극복할 수 없는 위기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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