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막히자 전세보다 월세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월세 가격 상승세가 가파르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에 월세 매물이 붙어 있는 모습. (윤관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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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5호선 행당역 1번 출구로 나와 고개를 돌리면 거대한 아파트 단지 한 곳이 눈에 들어온다. 한눈에 봐도 대단지인 이곳은 행당대림아파트. 행당역 도보 1분 거리 초역세권 단지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2000년 준공했으며 총 3404가구로 구성됐다.
단지 입구에 약간의 오르막길이 있기는 하지만 입지가 워낙 좋다. 지하철까지 가장 가까운 동은 도보 1~2분 거리, 가장 먼 곳에 위치해도 도보 7~8분이면 지하철 이용이 가능하다. 직장인 이용이 잦은 5호선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끄는 단지다. 가장 최근 거래는 올해 11월 전용 84㎡가 12억7000만원에 거래됐다.
요즘 수도권 부동산 시장에서 이 단지가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다름 아닌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월세 때문이다. KB부동산시세에 따르면 1년 전인 지난해 11월(11월 10일 기준) 행당대림아파트 전용 84㎡ 월세 시세는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165만~200만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부터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해 올해 11월 4주(11월 22일) 기준으로 보증금 5000만원, 월세 230만~250만원 수준으로 올랐다. 불과 1년 만에 20% 이상 상승했다.
현재 나온 매물도 호가가 계속 오르고 있다. 동호수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보증금 1억원, 월세 210만~240만원에 호가가 형성됐다.
행당역을 가운데 두고 맞은편에 위치한 행당한진타운(2123가구) 또한 월세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추세다.
KB부동산시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전용 84㎡ 기준 행당한진타운 월세 시세는 보증금 1억원, 월세 192만~208만원 수준이었다. 지금은 보증금 1억원, 월세 218만~230만원으로 약 10%가량 올랐다. 현재 나온 매물은 보증금 5000만원 기준으로 월세 약 270만원, 보증금 1억원 기준으로 월세 약 250만원을 내야 입주 가능하다.
행당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행당대림과 행당한진타운은 2000년 입주한 구축 아파트지만 도심에 위치한 초역세권 단지라는 점에서 신혼부부나 직장인으로부터 인기가 많다”며 “올해 하반기부터 대출 규제 여파로 매매는 물론 전세 대출이 어려워지면서 월세를 구하는 사람이 늘었지만 매물은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한다.
수도권 아파트 월세 시장이 심상찮다.
전반적인 매매 시장은 안정화를 보이는 반면 월세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월세가격지수는 매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가운데 역세권을 중심으로 중소형 아파트 월세 매물은 ‘귀하신 몸’이 되고 있다.
정부 대출 규제로 상대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실수요자들이 매매나 전세 대신 월세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월세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
통계 작성 후 10년 만에 최고치
KB부동산 월간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올해 11월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는 119.3으로 10월 대비 1.3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KB부동산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5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해 11월(111.6)과 비교하면 무려 7.7포인트 올랐다.
지난 1년 동안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는 지난해 12월 111.2를 기록한 후 한동안 상승이 주춤했다. 올해 1월은 112.1, 2월은 112로 소폭 낮아졌지만 3월 112.6으로 상승했다. 이후 꾸준히 상승하더니 올해 7월부터 급등했다. 전월(6월) 113.6에서 7월 114.7로 한 달 만에 1.1포인트 상승했다. 8월에도 116.1로 전월 대비 1.4포인트 오르는 등 올해 하반기 들어 급등하고 있다. 11월 역시 119.3으로 10월(118) 대비 1.3포인트 올랐다.
서울뿐 아니라 수도권으로 눈을 돌려도 월세 상승은 눈에 띈다. 올해 11월 수도권 아파트 월세지수는 120.6으로 1년 전(113.9) 대비 6.7포인트 올랐다. KB부동산 월세지수 집계는 중형(전용면적 95.86㎡) 이하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다.
즉, 전용 59㎡나 전용 84㎡ 등 일반적으로 수요가 가장 많은 면적의 아파트 월세가 급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8월 35.9%(1만7656건 중 6339건)에서 9월에는 41.9%(1만3470건 중 5644건)로 증가했다.
단지별로 살펴보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84㎡는 지난 10월 보증금 1억원, 월세 300만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지난해 11월과 12월에는 보증금 1억원 기준 월세는 200만~210만원에 거래됐지만 1년 만에 약 30% 상승했다.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전용 84㎡, 9층) 역시 올해 11월 보증금 8억원, 월세 510만원에 계약됐다. 지난해 11월 보증금 8억원, 월세 310만원(25층)에 거래된 것을 감안하면 큰 폭으로 올랐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 또한 올해 10월 보증금 1억원, 월세 360만원(21층)에 거래가 체결됐다. 올해 초만 해도 보증금 1억원에 월세 약 300만원 전후로 시세가 형성됐지만 연초 대비 약 20% 오른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아현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상반기만 해도 매수자들이 주로 전세 매물을 살펴봤지만 최근에는 혹시나 전세대출이 나오지 않을 것을 대비해 플랜B로 월세를 알아보는 수요가 늘었다”며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집 중 상당수는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는 경우도 꽤 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월 1000만원이 넘는 초고가 월세 거래도 늘어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을 보면 올 11월 기준 서울에서 1000만원 이상 초고가 월세 거래는 142건으로 집계됐다. 2000만원 넘는 월세 거래도 15건에 달한다.
월세 급등 이유는?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
올해 하반기 이후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다소 침체된 상황에서 유독 월세 가격만 상승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대출 규제다. 지난 9월부터 스트레스 DSR 2단계가 시행됐다. 스트레스 DSR 2단계는 늘어나는 가계부채를 관리하기 위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 금리에 각각 가산금리 0.75%포인트를 적용하는 규제다. 2단계 규제에서는 은행권의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가산금리 1.2%포인트를 적용한다. 전반적인 대출 금리 자체가 높아졌고 대출 조건도 까다로워졌다. 대출 규제로 인해 매매는 물론 전세로 집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월세로 눈을 돌린 수요자가 늘어났다.
아파트를 제외한 주택 공급 감소도 월세 상승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 9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비아파트 인허가는 2만7671가구, 착공은 2만5278가구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31.3%, 23.5% 감소한 수치다. 다세대주택이나 오피스텔 등 아파트를 일부 대체할 수 있는 주택 공급량이 줄면서 아파트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전세사기 공포에 따른 월세 선호 현상,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대출 이자 부담 가중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 역시 월세 수요가 늘어난 원인으로 풀이할 수 있다.
향후 전망은 엇갈린다.
임대차 시장에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월세 부담이 커질 경우 주택 시장에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월세가 오르면 다시 전셋값을 밀어 올리고, 전셋값 상승은 장기적으로 집값 상승 압력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계속되면 장기적으로 아파트 역시 ‘전세’ 비중이 줄고 ‘월세’가 보편화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2022년 하반기 금리 인상 영향으로 전세대출 이자와 월세 부담이 비슷해지면서 굳이 전세가 아닌 월세를 선택하는 임차인이 많아졌다”며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전세대출도 규제하면서 임차인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월세 혹은 반전세밖에 없게 됐다. 중장기적으로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승태 감정평가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7호 (2024.12.04~2024.12.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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