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가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박정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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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은 단독 감액안 철회 없이는 증액 협상도 없다고 윽박지릅니다. 정부가 민생 예산 증액에 동의하지 않으니까 부득불 국회 예결위가 감액 예산안을 처리한 것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3일 이렇게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중재로 예산안 처리가 미뤄져 10일까지 협상의 말미를 얻었는데도 정부·여당이 ‘야당 예산안 철회·사과’만을 고집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이날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예산 날치기 처리에 대해 대국민 사죄하고 감액 예산안을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야의 예산안 갈등은 지난달 29일 민주당이 정부안인 677조4천억원에서 4조1천억원을 깎아낸 감액 예산안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단독 처리하며 불거졌다. ‘민생 예산 확보’를 줄기차게 외쳐온 민주당이 정부안보다 되레 감액한 예산안을 집어든 것이다.
정치권에선 야당의 감액 예산안을 ‘증액의 지렛대’로 보고 있다. 헌법 57조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 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야당은 예산 심사 때마다 감액을 통해 증액의 여지를 마련한 뒤, 여야 원내 지도부와 예결위 간사가 참여하는 ‘소소위’라는 이름의 비공개회의에서 속기록도 남기지 않고 민생 예산이나 지역구 예산을 두고 ‘패키지 딜’을 해왔다. 밀실 담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예산철마다 여야는 주로 이런 막판 담판으로 정국을 타개해 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런 관행마저 깨졌다. 협상의 출발점은 서로의 패를 열어보고 타협 가능한 선을 타진하는 것인데, 여당을 만나고 온 야당 원내 지도부는 3년 내내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저 사람들(여당)은 원하는 게 없다.” 국정과제를 실현해야 하는 정부·여당이 제시하는 요구 목록도, 반드시 관철해야 할 대통령의 관심 사업도 없다는 것이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노무현 정부(참여정부)의 행정수도 이전처럼 집권 세력에 목표가 있으면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 핵심 의제가 없기 때문에 여야가 교착 상태에 놓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의 선택지는 사실상 두가지다. ‘준예산’(전년에 준해 편성하는 예산)을 각오하고 연말까지 버티거나, 감액 예산안을 놓고 증액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벼랑 끝 전술’인 단독 감액안을 택한 건 이재명 대표의 전략이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인 2013년 새누리당 시의회의 몽니로 준예산 사태를 경험한 적이 있다. 당시 민생 피해가 현실화되자 시의회가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러니, 야당이 비판을 받을 준예산의 위험을 무릅쓰느니 단독 예산안 처리를 무기로 여당을 압박하고 추후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가 당을 이끈 2022년부터 야당 단독 수정 예산안 처리 가능성을 협상 카드로 써왔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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