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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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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통계 없는 ‘홈리스’ 사망률…“불평등한 죽음에 이름 붙여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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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42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2024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이 2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에서 ‘2024 홈리스 추모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개최한 가운데, 올해 사망한 홈리스·무연고자의 이름과 장미가 광장 계단 위에 놓여 있다. 고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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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6월6일 새벽, 서울역 지하보도에서 잠을 자던 조민수(가명·63)씨가 일면식 없는 30대 남성에게 피습돼 숨졌다. 30대 남성은 미리 장소를 검색하고 사전 답사한 후 범행을 저질렀다. 조씨를 기억하는 홈리스들은 그가 마치 ‘붙박이’처럼 오랫동안 타인과의 교류 없이 한 장소에 가만히 머물렀다고, 그래서 범죄에 더 취약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 지난 7월20일 서울 영등포구 고시원에서 김정철(가명·54)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김씨는 졸업과 동시에 건설사에 취직했지만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계약직에서 해고까지 되는 일을 겪었다. 2016년부터 서울역에서 노숙을 시작했고 3년 전 고시원에 입주했지만 가족들이 자신과 더 이상 연락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돼 작은 방에 스스로를 가뒀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11월25일까지 조씨와 김씨를 포함한 홈리스·무연고자 463명이 서울의 거리, 쪽방, 고시원 등에서 생을 마감했다. 삶의 흔적은 있었으나 기록은 남지 않았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거나 홈리스 사망 통계를 집계하지 않고, 시민단체 등이 매년 사망자를 추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2016년부터 5년마다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를 벌여 홈리스의 건강 상태, 경제적 여건 등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 안에 죽음은 빠져 있다. 거리에서 피습으로, 쪽방과 고시원에서 건강 악화로, 원인 추적과 대책 마련 없이 매년 비슷한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한겨레

42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2024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이 2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에서 ‘2024 홈리스 추모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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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2024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추모제기획단)’은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일부터 오는 20일까지를 ‘2024 홈리스 추모행동’ 기간으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이날 광장 계단에 깔린 레드카펫 위로 열악한 거처에서 생을 마감한 이들의 이름과 장미꽃이 놓였다. 이름이 써진 하얀 책자마다 ‘오늘 당신과 만난 서울의 홈리스·무연고 사망자’라는 문구가 적혔다.



추모제기획단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근 한국역학회의 연구 결과를 보면 홈리스의 사망률이 비홈리스에 비해 1.3배(2005년) 높았던 것이 1.8배(2020년)로 격차가 더욱 벌어지며 홈리스의 사망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망불평등은 한국 사회의 열악한 홈리스 복지와 인권의 현실을 드러낸다”고 밝혔다. 발언에 나선 황성철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홈리스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빈곤과 방치의 결과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무연고 사망자의 죽음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이해하는 데 부족한 상태에 놓여 있다”면서 “죽음에 이름을 붙이고 원인을 분석해 체계적인 사망 통계를 구축하는 것은 추모뿐만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필수적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무연고·홈리스 사망자의 애도 받을 권리와 애도할 권리를 보장하고, △홈리스 주거권 보장을 위한 법과 제도를 개선하며, △홈리스가 사회에서 공존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추모제기획단은 2001년부터 밤이 가장 길어 홈리스에게 더욱 혹독한 매년 동짓날을 즈음해 홈리스 당사자를 추모하고 홈리스의 복지 향상 및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오는 12일과 17일에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다크투어, 18일에는 청소년홈리스 낭독 공연, 20일에는 2024홈리스추모제 등이 열린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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