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자본시장법 개정방향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은 구상엽 법무부 법무실장, 오른쪽은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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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 대신 상장사의 일부 재무적 거래 과정에서 주주이익 보호 노력을 명시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한다. 전문가들은 자본시장법 개정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의 근본 원인으로 꼽히는 지배구조(거버넌스) 개선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평가했다.
금융위원회 등이 2일 발표한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은 상장사가 합병, 분할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일반주주 보호에 방점이 찍혀 있다. 현재 자본시장법 제165조의 4에 합병, 중요한 영업·자산의 양수도,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분할·분할합병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여기에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함’을 명시하겠다는 것이다. 이 외에 계열사 간 합병가액 산정기준을 폐지하고 공정가액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 합병 등에 외부평가기관의 평가·공시를 의무화하는 방안 등도 함께 내놨다. 정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의원 입법’ 형태로 이번 주 중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해 온 상법 개정이 이사 충실 의무(제382조의 3) 대상에 주주를 추가해 새로운 대원칙을 제시하는 방안이라면,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엘지(LG)화학 배터리사업부 물적분할(현 엘지에너지솔루션), 두산 지배구조 개편 등 일반주주 이익 침해 논란이 다수 일었던 사안의 재발을 막는 ‘핀셋’ 개정에 가깝다. 법 개정에 따른 영향 범위도 다르다. 상법은 전체 법인 100만여개에 적용되는 반면, 자본시장법 개정은 상장법인 2600여개로 대상이 확 좁혀진다.
정부 안은 상법 개정으로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를 일부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적용대상 행위를 한정해 일상적 경영활동의 불확실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는 이사 충실 의무를 주주까지 확대하면 이사를 상대로 한 대표소송 등이 남발할 것이라고 우려해 왔다. 삼성, 에스케이(SK) 등 주요기업 사장단과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달 상법 개정으로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며 긴급 성명을 내기도 했다.
정부는 개정 방향을 발표하면서 주주이익 보호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의 조치 등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우선 주주 보호 노력에 관한 지침(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경영진의 행동 규범을 구체화한다는 계획이다. 제재 수준은 국회 논의와 시행령 등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확정될 전망이다.
주주 보호 노력의 범위를 합병·분할 등으로 한정한 탓에, 이미 문제가 된 사안조차 막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예를 들어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 중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해 주주 반발에 직면하고 계획을 철회했는데, 이번에 나온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이러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어렵다. 자사주를 재단에 무상으로 출연해 대주주 지배력을 강화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계획을 철회했던 에이치엘(HL)홀딩스의 사례 역시 이번 개정안으로는 막을 수 없는 영역이다.
전문가들은 상법 개정 없이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것으로 본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대표는 “교통 법규를 (국도나 지방도가 아니라) 고속도로에서만 지켜도 된다고 하는 꼴”이라며 “현재 이사들에게 주주 충실 의무가 없다 보니 회사가 주는 안건 그대로 이사회가 승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사는 주주가 선임해주는 자리고 주주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 이사회가 주주 충실 의무를 지지 않으면 지배구조가 개선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경영학)도 “정부 개정안에는 자사주 처분 등 빠진 게 많아 ‘핀셋’ 규제로 보기도 어렵다. 일반주주에게 피해를 주는 자본적 거래를 우리가 다 경험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일반 조항을 두는 상법 개정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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